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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 soore Oct 24. 2020

생일날엔 초콜릿 조각을 만들자


한국에 두고   친구의 말이 기억이 났다.

 

“스물 한 해를 살았는데, 내가 가진 행복한 기억이 스물 하나가 안 되는 것 같아.”     


네 달 빠른 생일만큼 늘 나보다 한 뼘 더 어른스러운  친구의 말이 문득 떠오른 , 웁살라에서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생일은  겨울방학의 한가운데였다. 학기 중간에 생일을 맞는 친구들은   학급이 들썩이게 축하해줬는데,  생일은 깜빡하면 건너뛰기 십상이었다. 그마저도 혼자인 날이 많았다. 생일이 평일인 날엔 엄마 아빠가 회사에  저녁이 되어서야 생일이 시작됐다. 가족이 돌아오기 전엔 생일을 기념한답시고 혼자 영화를 보고 쇼핑몰을  시간이나 돌아다녔다.  생일은  그랬다.


올해엔 외로운 영화도, 대형 쇼핑몰을 하염없이 걷는 시간낭비도 없었다. 국적이 다른 7명이 각자가 만든 음식을 들고 flogsta 6동 720호에 모였다. 서프라이즈를 기다리다 맞는 쓸쓸한 생일 대신, 내가 먼저 생일파티를 열어버렸다.


이름하여, birthday *potluck party.



생일 선물로 잡채를 받을 줄이야


웁살라 친구 7명이 모두 모였다. 이곳에서 만든 친구들은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Potluck party 답게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뷔페처럼 나란히 늘어놓고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경제사 수업에서 만나 친해진 한국인 민선이는 비건 잡채를, 규리 언니는 토마토 카프레제를 만들어왔다. 수업이 끝나고 후다닥 뛰어온 티나 Tina   1 피자집에서 파인애플 피자를  왔다. 나는 김치볶음밥과 깻잎 주먹밥을 만들었다.


다니엘 Daniel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통조림 깻잎으로 만든 주먹밥을 끔찍하게 좋아해 줬다. 원래 살던 독일에서도 이곳 스웨덴에서도  번도 깻잎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무도 깻잎 통조림을 수입하지 않는 거냐고 화를 던 그는 결국  접시를 혼자  먹었다. 그가 깻잎에 보여준 예상외의 열렬한 반응에, ‘네가 한국에 오면 깻잎 통조림  박스를 사주겠노라’ 약속했다. 한국이라니, 한국이 까마득했다.


우연한 기회로 나와 친해진 친구들이었기에 서로서로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민선이가 와인을, 함께 웁살라에 파견  파키스탄 유학생 쿠드랏 Qudrat 과일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와인과 가져온 음식을 함께 먹었다. 웁살라에서 석사학위를 준비하는 다니엘을 제외하고는 모두 웁살라 교환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다. 떠들썩했다. 시끌벅적했다. 언제 어색했냐는   같이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  스물한 개가  되는  ‘행복한 기억 리스트 하나가 추가됐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떠들썩한 생일파티.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깻잎 통조림을 좀 더 가져오는 건데.


언젠가 나이 들면 박물관 관장을 하고 싶다는 사회학과 친구가 말했다. 철학을 했으면 꼭 잘 맞았을 친구다.      


“생각해봐. 네가 나이가 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나이가 들면 뭐가 행복한데”

“지금도 행복한 기억이 한두 개가 아닌데, 네가 할머니가 되면 얼마나 많겠냐? 행복한 기억들이.”     


속 깊은 그의 말마따나 살다가 아주 가끔, 이따금씩 행복한 일이 생긴다면 인생이 온통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상자에서 초콜릿을 하나씩 하나씩 까먹듯 그 기억들을 열어보며 살 수 있다면,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생일파티가 끝나고 하나 둘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며 한 명 한 명과 포옹을 했다. 그리고 마음으로 말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러, 할머니가 되어서도 
꺼내  초콜릿 상자가 되어줘서 
고마워.’     



*[potluck]
여러 사람이 조금씩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먹는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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