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으로 간다고? 그럼 오로라 보고 오겠네!”
이제 막 교환학생에 지원했을 무렵부터 친구들의 단골 질문은 오로라였다.
오로라의 나라답게, 겨우내 기숙사동 1층 게시판엔 스웨덴 북단에 있는 도시 키루나 Kiruna 투어 광고 포스터가 붙었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키루나에 가 온하늘에 펼쳐진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투어였다. 주위 교환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키루나로 떠나기 시작했다. 같이 가자는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웃으며 거절했다.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어 일정과 수업이 겹치는 건 아주 좋은 핑계였다. 평생 본 적도 없는데 앞으로 안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잘 다녀와! 하고 보내 준 것만 수십 번이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주변에서 오로라를 봤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카메라 용량이 터지도록 오로라를 담아왔다. 하얀 눈 위에 초록색 신기루가 요란한 모양을 그리며 떠다녔다. ‘스웨덴까지 왔는데, 뭐 언젠가 보겠지. 아님 말고!’ 안일하게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오로라를 볼 마지막 기회라는 2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2월 28일은 오로라를 보기에 완벽한 날이었다. 웁살라는 세로로 길쭉한 스웨덴에서도 남쪽에 있어 오로라를 보기가 힘든데, 오늘따라 웁살라의 *KP지수가 유난히 높았다. 오로라의 최대 적수인 구름량조차 완벽했다.
사람들을 모았다. 이름하여, 웁살라 오로라 원정대. 우리가 할 일은 오로라를 보기에 가장 최적이라는 밤 11시까지 기다린 뒤 주위에 빛이 많이 없는 공터로 가 하늘에 펼쳐진 오로라를 보면 되는 것이었다. KP지수, 구름, 그리고 오로라 원정대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패딩을 단단히 껴입고 집을 나섰다. 우르르 모여 공터로 가 질퍽이는 땅을 밟고 들어가 빛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였다. 까만 하늘을 물들이는 초록빛은커녕 별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구름의 눈치를 보고 제대로 된 뜻을 알지도 못하는 KP지수라는 걸 그렇게나 신봉하며 기다렸는데. 이 순간만을 기다렸는데.
"아무래도 틀렸어, 이제 가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오늘만큼 KP지수가 높은 날은 또 없을 걸 알잖아. 오늘을 이렇게 보내기는 너무 아쉽잖아.”
고개를 젖히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를 십 분째, 구름은 점점 많아져 곧 비를 뿌릴 듯이 험악해져 갔다.
하늘을 보며 눈을 흘겼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입꼬리가 내려갔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뿐이었다. 원정대는 곧 흩어져 하나 둘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애타게 기다려볼까, 그냥 잊어버릴까.
그것도 아니면, 이곳에 돌아와야 할 핑계로 삼아볼까.
오로라, 너를 어쩌면 좋을까.
*[KP지수]
오로라 지수라고도 하며 수치가 높을수록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