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레 soore Oct 31. 2020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너는 모르겠지만.


파견 6개월 전, 웁살라 대학교로의 파견이 결정되고 며칠 후 교환학생 설명회가 열렸다. 학교의 배려로 같은 대학에 파견된 사람들끼리 함께 앉도록 자리배치가 되어있었는데, 내 옆엔 파키스탄 유학생이 앉아 있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비자 신청을 준비하고 기숙사를 알아보는데 나에겐 동료가 없었다. 쿠드랏 Qudrat은 파키스탄 국적에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자 신청 절차 자체가 달랐다. 기숙사도 그랬다. 고민의 여지없이 국제학생이 많은 기숙사를 고른 나와는 달리 쿠드랏은 하숙을 택했다. 조용한 주택가에서의 삶이 여기저기 파티가 난무하는 기숙사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기숙사에서 종종 같은 학교 사람들끼리 모여 북적북적 떡국을 끓여먹을 때면 괜히 혼자가 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고는 했다.  



쿠드랏은 조용하고 차분한 것을 좋아했다. 스웨덴 웁살라 외곽, 한적한 주택가의 볕 잘 드는 반지하방에 사는 게 그에겐 꼭 맞는 것 같았다. 0.5층과 1.5층이 계단으로 이어진 커다란 주택에는 중년의 커플과 다른 웁살라대학교 하숙생이 살았다. 집주인과 다른 하숙생은 주로 밖에 나가 있어 큰 집을 쿠드랏 혼자 쓸 때가 많았다. 햇볕이 똑바로 내리쬐는 주방엔 정원이 연결되어 있었다. 조용한 동네에서, 조용한 식탁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쿠드랏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북적이는 떡국 파티는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감성이 있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출출해지면 직접 만든 난 naan 반죽 덩어리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반죽을 직접 롤러로 펴 판판하게 만든 다음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노릇하게 구워내면 집안 전통 레시피의 수제 난이 완성됐다. 한국에서 유학하던 시절부터 꿋꿋하게 인도 요리를 스스로 해 먹던 실력이 어디 안 가, 스웨덴에서도 넓은 주방을 혼자 쓰며 각종 커리 curry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가 만든 시금치-치킨 커리를 제일 좋아했다.


볕이 잘 들던 주방


나는 어딘가 한국이 그리울 땐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한참을 나가 그를 찾아갔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쿠드랏을 위해 종종 시내에 있는 아시아 식료품점에 들러 떡과 고추장을 사 가져갔다. 대학로 떡볶이 맛집을 섭렵하던 그의 입맛에는 내 떡볶이가 어린이 장난 같았겠지만, 면은 덜 익고 떡은 다 퍼져버린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줬다. 같은 나이였지만 그는 꼭 선배 같았다. 목표가 명확하고 노력은 넘쳤다. 비즈니스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께 직접 연구를 도와드리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함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가 만들어준 파키스탄 전통차를 앞에 두고 한참을 떠들다가 깜빡 잠이 들면 조용히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줬다. 멀고 먼 타지에서 그렇게 오빠처럼 선배처럼 나를 챙겨줬다.      


그랬던 쿠드랏이 떠났다.     


남들보다 종강이 이른 그는 곧장 스웨덴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날은 평소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스웨덴에서 마지막이 될 인도음식을 먹었고, 늘 만들어주던 전통차를 앞에 두고 한참을 깔깔깔 웃으며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차피 한국에서 다시 볼 테니 아쉬워하지 말자고, 남은 여름방학 잘 보내라고, 그렇게 인사하고 작별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니 따뜻한   잔이 간절했다. 금방 다시 볼 사람 슬퍼하지 않으려 했는데 전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홀로 주방에 우두커니  있었다. 코리도 복도  방에 사는 도리안 Dorian 점심 도시락을 만들러 오다가 나를 발견하곤 안부를 물었다.  흔한 how are you 미소로 답할 수가 없었다.      


“친구 하나가 떠났어. 안녕을 몇 번이나 더해야 하는 걸까. 난 그 모든 안녕에도 괜찮을 수 있을까”     


“스웨덴의 겨울을 견뎌냈잖아. 넌 이제 뭐든 견딜 수 있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웨덴의 겨울이 지독하긴 했지.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도리안에게도 이별이 괜찮을 리가 없었다. 당장 이틀 전에도 친구 하나를 떠나보냈다고 했으니까.   반째 그는 이곳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교환학생 친구들은 언제나 오고, 언제나 떠나야 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우린 스웨덴에서 겨울을 났으니까, 뭐든 괜찮아”     


그의 말을 믿어볼까. 난 뭐든 견딜 수 있다는 그 말을 붙잡아볼까.



이전 18화 웁살라에도 봄이 올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