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빈조 May 02. 2024

독대

소설 <PART-TWO> #지형⑦

랄라는 동물실험동 앞마당에서 열린 2016창의테크서밋 폐막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문짱을 곁눈질로 힐끔 흘겨보았다. 문짱의 시선은 검은색 도포를 둘러쓴 무용수의 꿈틀거리는 몸에 내내 박혀있다. 자신이 총괄책임자로 있는 창의혁신국 주최 행사가 막바지에 다다러서야 그는 처음으로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동물실험동 앞마당에는 전 생애가 죽음의 항해와도 같았던 실험동물들의 영혼을 기리는 위령제가 한창이었다. 검은 무용수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소리 없이 비틀거렸다. 표정이 없는 열댓명이 뜨문뜨문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위령제는 벌써 두번째 열리는 것이다. 그건 지난 6월 문짱의 제안에 따라 창의테크밸리의 공식 운영을 알리는 센터 개소식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미 한 차례 치러진 것이었다. 첫번째 위령제는 흙바닥 가득 벚나무 잎사귀의 그늘무더기가 내내 쏟아져내리던 단지 내 야외공원에서 진행되었다. 초여름이었음에도 나무그늘 밑이 선선했던 기억이 어렴풋했다. 센터 개소를 축하하는 손님들로 야외공원이 하루종일 붐볐다. 운집한 사람들 가운데서 한번씩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와 간간한 박수소리가 파도치듯 밀려나왔다. 신임시장이 다녀갈 때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가듯 흘러다녔다. 그 모습이 흡사 바닥의 나무그늘이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것 같았다. 지역 인형극단의 도움을 받아 치뤄진 그 날의 위령제에는 거대한 동물 인형이 녹음이 우거진 머리 위를 알록달록하게 채웠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랄라는 밝게 웃던 그 날의 청중들을 까무룩하게 기억했다. 문짱은 뭐가 못마땅한 것인지 센터 개소 행사가 끝나고 얼마 후 시에서 직접 용역을 발주해 별도의 기념 행사를 하겠다고 센터에 통보했다. 이 내용은 담당주무관이 행사 진행을 위해 창의테크밸리 내 공간 몇 곳의 대관 신청을 처리하면서 알려졌다. 그래서 센터의 공식 개소 이후 6개월여만에 다시 치뤄지는 이 날의 위령제는 문짱과 산하기관장 K간의 갈등이 회복불능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표식처럼 흐리고 으스스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행사를 다시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그의 얼굴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웃는 낯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 문짱의 얼굴은 사실 매번 화가 난 사람 같아 보이긴 했다. 오른쪽에 비해 왼쪽 쌍꺼풀이 크게 진대다 윗 턱 불거진 덧니 때문인지 입술이 평형을 이루지 못한 비대칭의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험상궂어 보였다. 그러나 랄라는 기분 탓이라고 넘겨버리지 못한다. 더 나아가 그가 자신에게로 얼굴을 돌렸을 때 그의 각각의 옆 얼굴이 극명한 반전을 이루는 상상을 한다. 그러곤 이 모든 게 날씨 때문이라고 체념했다.     

   

창의테크밸리 운영센터의 사무위탁단체를 ‘씽’으로 정한 뒤 문짱은 관련 업무를 보고 받거나 논의할 때 자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꼭 자신의 의지에 반해 어거지로 결정한 일 같이 굴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다들 그의 신경질적 반응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그의 심기를 살피는 꼴이 되었는데 근래 들어서 그는 체념한 듯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를 결단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갈피를 잡았다기 보다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모두 다함께 한 곳을 바라보고 섰지만 온통 신경은 한 곳으로 흘렀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그의 심기가 불쑥 떠올라 그녀의 감상을 방해했다. 무용수의 검은 몸통이 부스러지듯 무너져내렸다. 


랄라는 지난 수개월동안 페이퍼 라는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연초에 있을 최종보고를 앞두고 문짱은 시장을 매료시킬 필승 전략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센터장 K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연쇄반응처럼 센터직원들은 개소 이후 불승인 사유도 알 수 없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새로 보완하고 수정하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시의회에서 승인이 안 나는 경우는 보았지만 담당부서의 국장에게 막혀 진도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참 드문 일이었다. 랄라는 모니터를 열어 굵직한 제목과 몇 개의 키워드를 교체하는 일을 수없이 했고, 어떤 챕터는 갈아엎고 새로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꼭 벌을 받는 기분이 되었다. 모니터를 열면 작성해야할 문서창이 끝 없이 겹쳐져 보였고 사실 이 건 어느 날의 꿈이었는데 이게 꿈이었는지 진짜였는지 헷갈려질 무렵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이 일방적 랠리도 종결되었다. 이 날의 폐막행사가 있기 불과 몇 시간 전 문짱의 체념과 함께 이 긴 랠리도 결국 끝을 맺은 것이었다. 창의테크밸리의 5개년 운영 전략 문건은 신년 사업 계획 수준에서 보고하는 것으로 쪼그라든 상태였다. 


“시급하게 풀어야할 행정 이슈가 있다 하고 이번 보고는 신년 센터운영계획 수준으로 간략하게 브리핑하신 답니다. 다들 인지하고 계시는 행정이슈들은 시장님과 독대로 풀어보시겠답니다”


센터장 K는 폐막행사가 있는 날 아침 실팀장을 급히 모아놓고 이와 같이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제출된 센터 신년 사업계획서에는 ver.22를 지운 자리에 2017년 1월 이라는 날짜가 박혔다. 


웅크려 있던 무용수의 상체 전체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사지가 찢겨져 나갈 듯 무용수의 몸이 사방으로 포효했다. 랄라는 눈 앞의 장면에서 벗어나고자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몸이 부르르하고 떨렸다. 희뿌연 초겨울 하늘 아래로 검은색 도포가락이 펄럭였다. 그에 앞서 자신의 몸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축축한 입김이 먼저였다. 시야가 반투명으로 흐려졌다. 이윽고 눈이 스르르 감기고 이 모노톤의 세계로부터 도망치듯 빠져나온 랄라는 흙바닥에 일렁이던 나무 그늘 아래에 서있다. 그 날이 이 날보다 한참 전인 것처럼 까마득했다. 귓구멍을 후비듯 요란하게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며 뒤로 묶은 머리채에서 흘러나온 머리가닥이 얼굴을 때렸다. 랄라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로에 놓이게 될까 생각하면 도망치고 싶어졌다. 이순간 유일하고 맹렬하게 몸부림 치고 있는 무용수와 반대로 뛰쳐나가고 싶어지고 있었다. 


창의테크밸리가 텅 빈 부지로 세상 밖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지난 반세기 시간의 반작용 처럼 시민의 공간으로 개방하라는 얼굴 없는 웅성거림 같은 것이 여기저기서 폭발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시대 라는 이름의 요구같은 거였다. 그러나 그 운영방식을 두고는 시와 시민사회진영 간의 입장이 엇갈렸다. 행정은 관리 책임이 분명한 시 직접 운영이나 절차상의 잡음을 줄이는 대형 민간 기업이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는 날로 다양해지는 시민의 니즈에 차별없이 대응하는 한편 시민들이 서비스를 받는 주체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춘 공유지의 운영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하는 시민사회그룹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택의 순간 신임시장은 중간치의 결과가 보장되는 선택이 아니라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결단을 단행했다. 이 선택의 뒤로 무수히 많은 숙제와 또다른 선택지들이 사방으로 투척되었다. 이 낯선 방식에 대하여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주무 행정기관과 지역사회를 설득하고 그들에게도 인정받는 다른 의미의 성공사례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업이 문짱에게 주어졌다. 실험과 도전정신이 요구될수록 판에 박힌 듯 성실하고 부지런히 반복해내야 하는 과정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생략된 채 전개되었다. 행정절차상 쉽지 않은 과제들은 이 마법과도 같은 비법으로 하나씩 풀려져 나갔다. 어떤 건 썩 괜찮은 것처럼 보였고 어떤 건 안 한만 못한 것으로 결과물은 가위바위보로 승부가 결정나는 것처럼 금세 드러나보였다. 애초의 거대하게 포장된 운영 취지가 무색하게도 창의테크밸리의 운영은 일개 시민단체가 사무를 위탁하는 것으로 축소되었고 그래도 잔존가치가 있는 건축물들은 전면철거의 개발방식에서 조성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것으로 엉성하게 남겨졌다. 비대해진 언어에 비하여 실제의 것들은 맥없이 초라했다. 그리고 그의 레이다망 내 사람들은 회오리 바람의 정중앙에 앉아 방향을 잃고 침잠해가며 이 결정타에 쉬이 무감해졌다. 그리고 랄라는 이 속도의 비결이 “시장 독대”라는 사실을 오늘 아침 센터장 K에게 전해들은 것이다. 문짱의 강단과 독단 사이, 아니 그것은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라고도 보기 힘든, 초인적 힘에 의한 선택의 순간이 앞으로 몇 번이고 더 남아있었다. 공사 비용 위주로 짜여진 하드웨어 예산을 사업비 또는 운영비와 같은 성격의 소프트웨어 예산으로 일부 변경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행정을 설득하는 일 아니 시장과 결판 짓는 그런 것들이었다. 


드디어 목 끝까지 숨이 찬 듯 검은 모시모자 바깥으로 입김이 쉴 새 쏟아져 나왔다. 무용수의 얼굴은 머리 위 끝이 뾰족하고 새하얀색 단을 단 검은색 모시모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랄라는 또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각자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이로운 방향을 향해 멈춤 없이 성찰하고 사유한다는 직업의식은 저만치 두고 업무에 임한지 오래 되었지만 도전적인 과제 앞에 자주 놓이며 다만 밥벌이라고 퉁치는 것도 무책임한 것이었다. 무엇을 돌파하며 돌진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이토록 장렬하게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음에도 왜 쭉 역동적 정지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것인지 꽉 막힌 인식의 벽에 틈을 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켜야할 것 최저한계선까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나만 부서지고 마는 것인지 모른 채 였다. 가치중립적이다 못해 지켜야할 가치마저 탈선되고 비효율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이 행정시스템을 개혁하겠다고 무엇과 최선을 다해 경쟁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이 실험의 지난한 과정과 그 결과를 용인하고 감당할 정도로 성숙되었는지. 그저 한쪽 진영의 실패로 끝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얀색 명주끈이 팽팽해지며 무용수의 몸을 사방으로 잡아끌었다. 바닥의 주차구획선까지 더해져 하얀색 선들이 눈 앞에 어지러웠다. 직선에 의해 만들어낸 면 안으로 검은 물체가 휘감겼다. 그때마다 검은 몸체가 힘겹게 펄럭거렸다. 이 장면이 꼭 유리관에 갇힌 검은 실험쥐 같다는 생각을 하며 랄라는 놀랐다. 랄라는 유리관의 허술한 여닫이 문을 열어 후루룩 그 쥐를 풀어주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유리관이 산산히 부서지는 상상을 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앞으로만 돌진하는 무쏘의 뿔과 같은 저 가부장의 얼굴, 오늘따라 유독 일그러진 문짱의 얼굴도 함께 부서졌다. 추위도 잊고 랄라는 마음이 조금 대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펄럭이는 무용수의 몸짓인지 도포자락인지를 오랜만에 집중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커버사진: UnsplashLoic Leray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이전 26화 청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