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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06. 2024

굿바이 동물실험동

소설<PART-TWO> #지형⑧ : 두번째 파트 마지막편

시멘트 바닥 넓은 마당 위에 세워진 단층건물의 외관은 노란빛이 감도는 아이보리색 페인트로 꽤 오래전 덧칠해졌다. 외벽은 벗겨진 페인트 위로 여러 번 덧바른 티가 나도록 불균등한 아이보리색을 띄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벽 안쪽에서 흘러나온 물기가 겉면까지 스며들며 생긴 탁한 물 띠가 수평의 콘크리트 처마에서부터 바닥까지 흘러내려 흡사 곰팡이가 피어난 듯 외벽에 도드라졌다. 그래서 이 건물은 한 눈에 보아도 음산한 기운을 뿜었다. 오래토록 용도를 잃은 이 단층건물은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 창문이 일자지붕 아래 일정 간격으로 수직배열 되어 꽤 구조적인 형상을 띄었다. 창문은 보통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긴 높이에 나 있어 사람이 안과 밖을 들여다볼 용도로 낸 것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유리창에도 외벽의 색과 같은 색의 아이보리 페인트가 의도적으로 칠해져 있다. 단지의 메인도로 보다 사람 머리키 보다 한참 위로 단차 진 터에 지어진대다가 마당의 구배 때문인지 이 건물은 보이지 않도록 애써 숨겨진 곳처럼 보였다. 건물 앞마당 바닥에는 하얀색 주차선이 그려져 있고 주차선에서 한보반 앞에 건물 출입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진다. 출입문은 하늘색 철문으로 먼지가 겹겹이 쌓이고 부식을 이기지 못한 듯 울퉁불퉁하게 빛바랬다. 이 철문은 깊은 호기심으로 둘러보지 않으면 유일한 출입구처럼 보이며 수평 지붕과 수직 창문의 배열을 깨고 바닥으로부터 수직으로 뻗어있다. 양쪽으로 열리는 양문형의 출입문은 한 쪽 문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쪽은 항상 잠겨있다. 햇볕이 가득 내리쬐는 한낮이었음에도 회색 철 손잡이는 서늘했고 건물 외관과 대비되게 꼭 새 것 같다. 이 양문형 철문은 바깥쪽으로 열도록 되어 있었다. 잠겨있지 않은 왼편의 문을 열기 위하여 처음에는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돌리다가 아귀의 힘이 부족하자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잡고 왼쪽으로 돌려 몸쪽으로 문을 열어야 했으므로 행동이 몹시 부자연스러워졌다. 철문은 열릴 때 요란한 소리를 냈고 틀과 문을 잇는 경첩은 망가진 채 였다. 철문 안쪽 안내문이 붙었던 자리는 검회색 먼지로 덮여 네모진 자국이 선명했다. 자국만 남은 안내문에는 출입을 금하는 경고 메시지가 적혔을 것이다. 무엇때문에 출입을 금하는 것일지 쉽게 추측할 수 없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게 소름이 올라왔다. 철문 위 외벽으로 파란색 플라스틱 팻말은 그대로 남겨져있다. 팻말에는 ‘동물실험동’ 이라고 적혀있다. 철문이 뒤쪽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쿵하고 닫힌다.


출입문 안쪽은 예상 밖으로 사방이 막힌 꽤 넓은 방이다. 가정집으로 보면 현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인듯 보였다. 밖보다 안의 공기가 더 서늘했다. 이 넓은 방 안 바닥 경계를 표식이라도 하듯 노란 알전구 조명기기가 제법 질서 있게 방의 테두리면을 따라 사각으로 놓여있다. 그리고 저쪽의 어둠 속에서 원목의 문이 그림자처럼 바닥에서 올라서있다. 자연스럽게 텅빈 공간을 가로지르며 문을 열고 바깥을 본다. 밖으로는 그림자 진 어둠이 길게 놓여있다. 언뜻 방과 방 사이 복도처럼 보이는 이 긴 통로 바닥에는 방안의 조명기기와 같은 알전구가 깔렸다. 이 알전구들은 어둡고 긴 통로에서 어딘가로 안내하고 있다. 이 사각의 어둠 속에서 오로지 의지할 곳이라고는 둥근 빛과 음영이 진 사각의 각들 뿐이다. 무의식적으로 긴 통로 깊은 안쪽을 슬쩍 훔쳐보았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망설이는 사이 통로 저 쪽으로 노란 빛이 눈에 들어온다. 현관에서 통로로 이어지는 중문을 닫고 통로에 한 발 앞에 서자 노란 빛의 시작과 끝이 앞뒤로 반짝였다. 통로에 진입한 후에는 동물적 감각으로 앞만 보며 걷는다. 두 팔을 뻗어도 벽이 손에 닿지 않는다. 바닥의 조명빛에 의지해 가는 것이 나을지 벽에 손을 대고 걷는 것이 나을지 고민하다 다시 한 발을 디뎠다. 바닥에서 빈 울림이 올라온다. 어둠 속에서 낯선 발이 다른 질감의 검고 일정한 규칙을 가진 선 위에 놓여있다. ‘하수구’ 가슴 어디선가 덜컹 소리를 내며 무언가 내려앉는다. 왼편의 벽에 기대다시피 하며 걷는다. 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노란 빛의 끝이 어느 덧 다가왔다. 통로를 다 건너왔음에도 여전히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속해있다. 통로의 끝 공간은 어떤 형태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알전구들이 동그란 형태를 만들었다. 프로포즈라도 받을 사람 처럼 동그란 원 가운데 가만히 선다. 시선은 한쪽 바닥에 놓여 위쪽으로 헤드라이트를 비추고있는 조명기기가 보인다. 마음이 빛을 따른다. 따뜻한 한줄기 빛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긴다. 이 한줄기 빛은 일그러진 타원형으로 벽을 밝힌다. 빛의 출처는 알길이 없는 검은 어둠 속이다. 낯익은 하얀색 명조체 글자가 노오란 원형 빛이 만들어낸 면적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안녕, K동


이 건물은 긴 통로를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8개의 독립된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에 마련된 전실은 외부와 경계를 나누는 역할을 한다. 전실에는 탈의실과 샤워실이 딸렸다. 이 공간은 연구원들이 입출입시 내외부의 흔적을 지우던 곳으로 이용되었다. 통로 양쪽으로 마주보고 난 8개의 방에서는 마우스, 랫드, 토끼, 개 등의 척추동물실험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통로를 지나면 큰 로비가 있으며 동물사체를 처리했던 경사로가 건물 뒤편으로 나있다.   


이 부지에서 한 해 3~4천 마리의 동물실험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커버 사진: UnsplashBen Wicks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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