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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06. 2023

환대와 경고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5)

내가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고 이튿날쯤 남편이 이 동네의 마을활동가가 쓴 것이라며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보라고 전해준 책을, 한동안 '젊은작가수상집'을 읽느라 저만치 두었다가 3일 전 드디어 젊작을 끝내고 짐들 속 대충 놓아둔 걸 꺼내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두어시간 만에 다 읽은 이 책의 제목은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이고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등 5개 지역 출판사가 함께 기획한 '지역' 테마의, 일명 '어딘가에는...' 시리즈 중 하나로 뒷표지에 소개되어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서는 포도밭출판사의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를 사서 읽어볼 생각을 했다) 지은이 장성해 작가(별칭은 성게 라고)는 순천에서 자라(아마도 부모님의 고향이 순천인 것으로 짐작) 대학을 중퇴하고 순천의 문화기획사에서 일하며 순천정원박람회의 자원활동가 및 해설사로 활동하다가 저전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사무국장을 맡아 3년간 이곳의 지역재생활동을 했다는, 이 지역 토박이다. 현재는 이곳 재생지를 관리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라고 한다.(이 건 남편이 알려준 사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두어시간 만에 후루룩 읽었다. 잠자기 직전, 재미없으면 당장 덮고 잘 요량으로 요에 누워 심상하게 읽다가 벌떡 일어나기를 여러 차례,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벌떡 벌떡 몸을 일으킬 때마다 근처에서 역시나 심상한 얼굴로 휴식 중인 남편에게 혼잣말인지 감탄사인지를 내뱉으면서 였는데, 그 말은 "순천만이 없어질 뻔 했었대~", "국가정원이 순천만으로의 도시 팽창을 막을려고 시가 40만평을 매입한거래~",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인줄도 모르고 어느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들이 10년간 키웠대~", "철새인 흑두루미를 보호하려고 전봇대 282개를 뽑았대~",  "요 앞 정원이 닥나무정원이래" 등과 같은 난데없는 것이었다. 뿌리 내리기 보다 경계인 특유의 자세로 그동안 지역 주민들이 일궈놓은, 좋은 것들만 쏙쏙 뽑아 누리고 있는 간헐적 순천살이러인 나는 책과 발품으로 천천히 그러나 대중없이 불쑥불쑥 이곳을 알아가고 있는 중인 까닭에, 일상의 산책길로 오가는 공간과 발품 팔아 찾아낸 장소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재확인하는 재미가 쏠찮했다.           


이 책은 "두루뭉수레하고 실체가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지역성이란 개념을,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순천시민들이 오랜시간에 걸쳐 축적해낸 구체적인 결과물들과 그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 지역성이란 개념은 딱 한 줄로 설명되기 어려운 것인데, 나는 나의 30초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거주공간을 중심으로한 주민공동체를 지원하는 일을 했음에도 여전히 지역성이 도시화의 반정립된 개념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익명성과 개인화, 편의와 효율, 관리와 다중감시, 형식미와 허무 등의 도시적 미학과 모든 다른 개념으로써의 지역성. 그래서 지역성은 외부인의 시선과 자극이 생길 때 그 본색을 더 드러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현대 순천시민사회 활동사를 일부 소개하는데, 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러 순천시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고, 순천만이 충남 서천/전북 고창/전남 신안과 함께 한국의 갯벌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는 지난한 여정의 관한 것이다. 나는 30년동안 지속된 순천만 보존을 위한 순천시민들의 집념에 가까운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고, 그 과정에 대하여 감명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것은 잘 알지 못해온 것, 그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빚을 진 느낌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지역성이란 장소성의 집합과 그 시간의 총체 같은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하면서도 한편 이 책을 읽고는 지역성이란 외견 잘 드러나지 않다가 경보음 처럼 울리는 것 이란 생각도 해봤다. 외지인의 눈에 그저 골재나 파 쓰기 좋아보이는 "자질구레한 폐기물이 군데군데 쌓인, 갈대만 무성한 버려진 땅(동 책 20P)"의 그 생태적 가치를, 단 한 번의 생태조사가 없이도 알아보고야 마는 시민들의 제3의 눈과 같은. -건설사와 당국이 이 땅에 대한 모래 채취 사업을 본격화하자 잠잠했던 시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시민들의 반대운동 5년 후 종합생태조사가 실시 되고 연안습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2년 뒤 골재 채취 사업이 취소되고 이 땅으로의 도시 팽창을 저지하는 차원으로 시가 국가정원을 만들고, 정원박람회가 개최되기까지의 서사가 꽤 자세히 소개되었다. 자칫 사라질 뻔한 순천만 습지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다 순천만을 매년 찾는 흑두루미를 보존하기 위해 전봇대(논에 물을 대기 위한 관정 펌프 작동을 위해 설치하여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했던) 282개를 뽑았다는 스토리도 놀라웠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시민들 안에 있던 경보음이 울렸다"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는 내가 이 동네 짧게 머무르며 동네 곳곳에서 보았던 장소성의 표식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의 장소들이 도시 곳곳 수평적으로 놓여진 동네에서 수직적으로 누적된 시간 속에 끼어있는 느낌이 보통 들고 있던 차였다. 영겁의 시간 속 꼭 멈춘 시간과도 같이 찰나의 시간에 끼어있는 느낌 같은. 그러나 그곳에 현재 생동하는 것이라면 내륙과 해양이 만나는 도시적 미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공동의 노력과 성취한 시민들의 자부심 같은 것이고. 현재진행형의 서사이며. 이건 나같은 외지인들에게 주는 환대와 더불어 경고(잘 누리고 또한 지켜달라는) 같기도 하다. 지역성이란 것은.           

(맨왼) 죽도봉에서 내려다 본 순천 시내 모습 (가운데) 남초등학교 자리에 있는 역사기록물 (맨오른) 죽도봉 공원에 있는 팔마기념탑


한편, 나는 그 밖에도 정원을 매개로한 도시재생사례를 재밌게 읽었다. 국가정원(순천만정원박람회의 장소) 조성 이후 마을마다 공공정원과 개인마당과 경계부에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업이 일단락 되고 최근 4~5년 동안 진행된 도시재생 사례에 대한 것이고, 이 책에는 그 중에서도 내가 머무르고 있는 저전동이란 마을의 도시재생 사례가 중점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동네 빈집을 개조해 마을호텔과 쉐어하우스로 개조하고 이를 마을의 사회적협동조합에서 관리 운영하는 것도 그렇지만, 나는 남초등학교 공간재구성 사례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마을활동의 경험이 있는 나에겐 꼭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그곳의 주요 주체는 저전히어로즈) 학생수가 급감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운동장을 재구성한 것인데,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이고 교육청, 주민자치회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함께 공간 구성을 하고 운동장을 반으로 나눠 한쪽을 생태놀이터로 바꾸었다. 무엇보다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모래로 언덕을 쌓고 그 위에 워터파크에나 있을 법한 미끄럼틀 하나를 설치한 것이 시각적으로 압권이었다. 본래 글로 볼 때 보다 실제 공간은 별 볼 일 없기 마련인데, 전문가와 함께 공간감까지 고민한 것 같았다. 단연 압도적! 인접한 성당 관계자를 2년간 설득해 복잡한 통학로를 정비하며 한전(도로 정비와 CCTV 설치)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동선과 공간 구분을 위한 수단으로 정원이 활용되었다.              

                  

순천남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야외교실과 생태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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