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쌈밥집 아들

중편소설 - 대자연 ⑪

by 수빈조

정어리쌈밥 개시. 대문이나 들보 등에 써 붙여 절기의 시작을 알리고 복을 기원하는 입춘첩처럼 유리문 바깥으로 나붙은 제철 메뉴 개시 소식에 경건해진 마음 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지만 의자를 빼 앉으려던 수인은 메뉴판에 시선을 꽂아둔 채 주춤거렸다. 쌈밥집 메뉴판에는 전 메뉴 2인분 이상 주문 가능이라고 적혀있었다. 예상가능한 변수였지만 미처 헤어려보지 못한 수인은 자리에 앉아서야 여러모로 망설여지고 있었다. 국밥이나 한그릇 말아먹고 말 걸 그랬나. 수인은 조금 전 시장 입구 국밥집 앞에서 문이 열린 안쪽을 기웃거리며 봤던 좁고 길게 마련된 테이블에 벽을 보고 나란히 앉아 한 손은 손수레 손잡이를 잡은 채 꼭꼭 씹어가며 부지런히 국밥을 떠먹던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그곳은 미진이 추천한 국밥집이었다. 수인은 할머니들이 심상한 얼굴로 국밥을 말아먹던 풍경을 뒤로 하고 어제 아랫집 여자가 오뉴월 한 철 이 잠깐의 간절기에만 맛볼 수 있다고 추천해준 정어리쌈밥을 먹어보겠다고 무진시장에서 도보로 8분 거리의 이 식당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몇 개의 리뷰를 훑어본 후 가장 성의껏 씌여진 것으로 보이는, 그 중에서도 정어리 철을 3월부터 7월까지로 폭넓게 산정해 메뉴로 내는 식당이 아니라 4월부터 6월까지로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한정메뉴로 선보이는 식당이라는 블로거의 후기에 낚여 이곳까지 왔지만 수인은 4인용 식탁 한 구석에 어정쩡하게 앉으면서는 2인분 이상 주문 가능이라는 문턱에 한 번 턱하고 걸렸고, 주춤거리다 결국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후엔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고등어, 제육 등의 다른 메뉴 등 익숙한 메뉴에 마음이 빼앗겨 주문을 망설였다. 그러고보니 정어리쌈밥은 영 낯선 음식이었다. 그와 관련한 정보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이 때 아니면 챙겨먹기 힘들다는 이웃의 추천에 마음만 앞선 탓이다. 입맛에 안맞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 속에 여전히 식당을 박차고 나가 다른 식당을 찾는 옵션을 대안으로 품은 채 낯설은 정어리쌈밥을 2인분이나 시켜 먹을 자신이 있는지와 차라리 고등어나 제육쌈밥을 시키는 안 중에서 수인은 고민했다. 사실상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채로 앉아 수인은 마음이 조급해졌는데, 식당 안은 평일인데다가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았고 홀을 살피던 서버 역시 예약된 손님이 있는지 8인 자리를 세팅하느라 분주해보였지만 4인용 식탁에 덜렁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면구한 까닭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사장님. 정어리쌈밥 2인분 주세요. 혹시 남은 건 포장 될까요?”

“그러세요”


8인용 자리를 세팅하던 남자가 홀에 정어리 두울이라고 부엌 안쪽으로 소리를 내지르더니 계산대로 가 섰다가 부엌 입구 쇼케이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과 함께 내왔다. 수인은 홀 내부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내내 지켜보다가 어깨에 어정쩡하게 두르고 있던 에코백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가장 안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당 내부가 한 눈에 조망되었다. 혼밥을 하면서 어디 한 곳 의지할 데 없이 개방된 태세였다. 넓은 홀을 등을 지고 벽과 창을 보고 앉을 걸 잘못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자리를 바꿔 앉을 실천력까지는 발휘하지 못한 수인은 계산대 뒷 벽에 액자처럼 걸려있는 쌈채소 사진과 함께 각각의 효능이 적힌 설명문을 꼼꼼히 읽는 것처럼 눈길을 두었다. 실제 꼼꼼히 읽는 건 아니어서 비타민 A, B1, 2, C 등의 알파벳들과 혈관 질환, 당뇨 환자에게 특히 좋다는 등의 문자들이 산발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금방 사라졌다. 그래도 케일, 비트, 로메인, 적겨자, 레드치커리, 쑥갓 등의 쌈채소 이미지들을 볼 때는 입으로 채소의 명칭을 조용히 중얼거리며 눈에 읽혀두려 노력했다. 예약된 좌석을 제외하고 빈 테이블은 세네개쯤 되어보였다. 수인의 왼편으로 남자 셋이 한 테이블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른 점심으로 택한 메뉴는 제육 셋으로 보였다. 2인 이상 주문 가능하니 네 개를 시킬 요량이 아니고서야 셋이 와도 별 수 없이 한 가지 메뉴로 통일해야 했던 모양이었다. 수인은 테이블 위에 놓아둔 핸드폰을 들어 검색창을 열었다. 정어리. 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함께 보면 좋은 항목으로 꽁치와, 양미리 등이 함께 검색되었다. 블로그에는 멸치 대신 정어리로 액젓을 담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었다. 유럽 등에서는 통조림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도. 테이블 위 올려둔 오른팔 뒤꿈치 부근이 뜨거운 조명기기에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은 것처럼 뜨끈했다. 우드색 테이블 위엔 뒤틀린 삼각형 모양으로 창을 투과한 볕이 물기 남은 유리병의 표면처럼 점점이 일렁거렸다.


“혹시나 해서 와 봤더니만 역시 있네”

“장날이자녀. 으짠 일로 가냐?”

“과장님 댁네 일손 부족으로 대타 뛰러 가시고 오늘은 내가 시장에 교육 나간다”

“점심은?”


도통 먼저 물을 줄 모르고 오로지 일거리를 해치울 목적으로 홀에서 바삐 움직이던 남자가 꼿꼿하게 몸을 멈춰선 채로 빼꼼히 열린 문으로 얼굴과 상체를 들이밀고 말을 걸어오던 여자와 말을 주고 받았다. 정겨워 보이지 않았고 간헐적으로 있는 일처럼 예사로웠다. 왼편의 남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파묻고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수인과 가장 먼쪽으로 앉은 남자가 다리를 달달 떨 때마다 테이블 다리가 덜덜거렸다. 수인은 고개를 들어 환기된 주위를 살피곤 이내 무관심한 듯 핸드폰에 시선을 꽂아두었지만 아까부터 이 작은 식당 안 움직이는 것들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있다. 창 밖으로 드물게 지나가며 식당 안으로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들의 움직임까지도. 그러나 여자가 등장한 순간부터는 저 두 사람의 대화에 몰두되었다. 심상한 놀이 중에 우연히 발견한 흙빛의 작은 조각에서 어느 시대에 살았을 누군가의 생활상을 유추해보는 것처럼 수인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단서를 수집하고 퍼즐을 맞추어보고 있었다. 덤이라곤 없는 초지일관 무표정 했던 남자의 사연이라거나 빛나는 보상 따위 기대할 수 없는 비자발적이다 못해 의무복무와 같은 노동의 속내라거나 장날이면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식들이 여지없이 가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퍼즐조각.


“먹어야지”

“자리 있어. 먹고 가”

“그르까. 나 그럼…. 제육! 손님들 하드끼 줘. 온상 쓸거야”


계산대 뒤 벽시계의 초침이 요란하게 흔들거리며 11시 43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유니폼을 단정하게 위아래로 맞춰 입은 여자가 체구에 맞지 않는 커다란 노트북 가방을 손에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와 수인 앞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앉고 보니 의자 두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되었고 그렇게 수인과 눈이 마주친 여자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하필 홀로 앉은 수인과 마주앉게 된 것을 퍽 공교롭게 생각하는 모양이었으나,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르고 수인은 피크타임에 걸려 홀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게 영 마뜩지않게 느껴져 자꾸 조급을 떨게 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들썩거리던 엉덩이가 의자에 착하고 붙었다. 마주앉은 이의 인사를 건네받은 수인은 눈썹과 함께 머리를 까딱거리면서 옅은 미소도 잊지 않았다. 그때 무표정의 식당집 아들이 다가와 이것저것 찬들과 버너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배추김치와 무생채, 오이무침, 콩나물무침, 참나물무침, 버섯나물, 샐러드와 함께 삶은 양배추와 쌈장에다가 갖가지 쌈채소들이 차례로 놓여졌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소박하게 나온 쌈채소들은 깻잎과 상추, 배추, 적근대, 청겨자, 치콘, 치커리 그리고 고추 등 이었다. 주인집 아들이 무신경하게 찬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을 때마다 수인의 눈이 점점 동그랗게 커졌다. 혼자 올 곳이 아니었다.


“혹시 반찬도 남으면 싸주실 수 있나요?”


초지일관 심드렁한 태도를 유지중인 이 집 아들에게 수인은 자꾸 세심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했다. 별다른 기대도 없이.


“반찬은 안되는데”

“아…”

“근데 해드릴게요”


수인이 무심하게 그릇을 내려놓는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을 때 그가 처음으로 수인의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넓은 혜량을 베푸는 듯 뜸을 한번 들였으나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그리고 곧바로 주방에서 선반에서 김이 지글거리는 냄비를 숟가락에 받쳐들고 돌아와 버너 위에 올려놓고 재빠르게 다이얼을 올려 신중하게 중불에 맞춰 놓으며 바로 드시면 된다고 말을 할 때는 수인을 쳐다보지 않았다. 절도 있다 말할 순 없었지만 한 치의 비효율도 허용치 않겠다는 듯 그는 군더더기 없이 서빙을 마치고 뒤를 돌아 다음 손님을 맞았다.

수인은 고개를 빼고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한 생선 두마리가 파, 마늘 등과 함께 뻘건 국물에 반쯤 잠겨있었다. 국물이 자박자박 하니 찌개나 조림에 가까워 보였다. 쌈을 싸먹기엔 국물이 좀 많아보였다. 비주얼은 흔히 먹던 맛들을 연상케 했다. 앞접시와 국자를 한 손씩 나눠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기 보다 코를 박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앞자리 여자의 정수리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수인은 냄비 안에서 생선 한마리를 건져올렸다. 작은 생선의 꼬리가 국자 밖으로 솟아나왔다. 국물을 가만히 떠먹은 수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했던 맛을 뒤집는 낯선 맛, 이국적인 향이었다. 산초인가. 다시 한모금. 또 한모금. 알 수 없었고 좋다 싫다 말하기 어려웠다. 소쿠리 가장 앞자리에 놓인 쌈채소 하나를 들어 앞접시에 놓인 생선을 통째로 손아귀에 쥐듯 감싸 입 안에 가득 넣었다. 입 안에 쌈을 넣을 때 살짝 고개를 숙였음에도 국물이 주르륵 손바닥으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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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된 사진은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로, 대체로 특정 기간 한 지역에 머물며 오가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삽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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