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여행자

중편소설 - 대자연 ⑨

by 수빈조

승준이 물었다.

엄마는 왜 살아. 내가 엄마에게 묻지 못한 말이었다.

결국 그 말은 되돌이처럼 나에게 왔다.

가슴이 내려앉다 얼굴이 서늘해졌다.

엄마에게 별소리를 다 한다. 너 때매 살지.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 목구멍 아래에서 넘실거렸다. 결국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침만 꼴깍 삼키며 맥없이 앉았는데

이 놈이 한 술 더 떠 죽지 못해 사는 거 말고 라고 한다. 그 얼굴이 엄히 꾸짖는 것 같다.

살려고 살아. 라는. 고1 아들의 고언.

나는 영영 답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온 몸이 굳어버렸다.

2017. 8. 7.


거실바닥을 가로질러 검회색의 그림자 하나가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의 아랫부분의 경계면이 기포처럼 일렁거렸다. 바위에 반쯤 꽂힌 인형과 같은 형상을 한 그림자의 상단부는 무력해보였다. 부엌등 하나만 밝힌 집안에는 명과 암 그리고 회색지대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둥근 식탁과 빗살 무늬 등받이 의자가 한껏 과장된 1차원의 평면으로 부엌과 거실 사이 바닥에 회색빛 반투명 카페트처럼 납작하게 깔렸다. 주인 없는 집 현관에는 서로에게 낯이 설은 두 사람이 빛의 후면에서 마주섰다.


아. 네. 무슨 일로.

아. 여기 언니, 미진 언니한테 부탁 받았어요. 좀 챙겨주라고..

아… 잠시만요.

아. 저…

아… 들어오세요.


마주서기 전까지 문을 사이에 두고 암호처럼 ‘아’를 붙여 말을 주고 받았음에도 어떤 연유에서인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 기어코 집 안으로 들어선 축도, 문을 열어 주인 없는 집에 들어오시라 불러들인 축도 모두 말문이 막힌다. 서울집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던 무진의 집이 반대편 전혀 다른 세상의 문을 연 것처럼 수인은 완전히 새롭게 환기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미진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천일염 한봉지 나눠줄터이니 자신의 집으로 넘어오라는 미진의 말에 눈이 번뜩여 불이 나게 건너온 것임에도 그날 수인은 미진의 현관에 들어서다 말고 주춤 거렸다. 천일염은 미진이 생협 설립 초기 생산자 발굴 및 확보 차원으로 발품 팔며 지역을 돌 때 알게 된 지인에게 빌려줬던 현금 5백만원이 되돌아온 것으로 회사에 일부 기부하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빗장을 풀고 경보하듯 미진의 집으로 넘어온 수인은 아무일 없다는 듯 밝게 웃으며 맞이하는 미진의 얼굴을 보고 그만 겸연쩍어졌다. 1년 전이나 한 달 전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처럼 한결 같은 폼으로 미진은 부산하게 손님을 맞았다. 대신 그 외 모든 것은 달라져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던 자연광은 누군가 일부러 비추는 밝은 조명광처럼 눈이 부셨다. 이 집에 단 하나뿐인 식물 몬스테라는 만개한 꽃처럼 노련한 자태를 뽐내고, 이 집을 가득 매우고 있는 온갖 무생물들에게선 무표정의 표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진 빼고 모든 게 달라져보였다. 고백과 사과를 해야할 순간에 수인은 망연해졌다. 한 달도 넘은 일이 어제 일처럼 화끈거렸다. 그와의 간극의 사유가 공기 속에 버젓했다. 아무일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액체 속에 용해되어 사라졌다 생각한 설탕가루가 다 마신 커피잔 아래 얇은 막처럼 응고돼 바닥에 늘러붙은 것처럼 부득불 남아있었다. 무의식의 매커니즘에 따라 흔들린 감정선을 타고 관계의 기류는 표류했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이윽고 고요해진 수면 위 난파를 면한 뱃머리 구석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던 동승자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그것이 꼭 자연스런 기상현상인 것처럼 별 일 아니라는 듯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별스러운 일 아니라는 듯.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변화 같은 것이라는 듯. 수인은 오랜만에 마주한 미진이 불현듯 한참 어른인 것 처럼 생경했다. 그에게서 콩기름 먹여가며 오랜시간 용도를 다해온 오래된 고가구처럼 강직한 노련미가 엿보였다.


“천일염이 이렇게 귀해질 줄 알았으면 그 분한테 받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넙죽 받을 걸 그랬어. 괜히 속좁은 티만 났지 뭐니. 안 들어오고 뭐해? 왜 그러고 섰어?”

“아니… 그 사이 집이 좀 정돈된 거 같네”

“무슨~ 그대론데. 얼른 들어와”


수인은 허리를 숙여 에코백을 현관 앞에 내려놓으며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고개를 들었을 땐 미진이 거실과 부엌 사이 경계부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랫집 사람이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애쓰는 태가 역력한 만면의 미소를 띄우고 섰다. 먼 동네까지 찾아온 이 낯선 이웃을 역으로 코 앞까지 마중 나온 호스트처럼. 그러나 초인종을 누르던 기백에 비하면 수줍어보이는 자태였다. 그는 미진 보다 한참 어려보였다. 30대 중반쯤? 한 올 내려올 일 없이 머리띠로 반듯하게 앞머리를 밀어올려 드러난 이마가 어스름 속에서도 입체감있게 도드라져보였다. 하얗게 보이는 옅은 색 내의 위에 남색 계열의 짙은 색 원피스를 덧대입은 그의 용모에서 깔끔하고 쿨한 면모가 풍겼다. 수인의 눈에 그는 외지에서 건너와 새로 정착한 이주민처럼 보였는데, 그의 행색때문이 아니라 타성에 젖지 않은 듯한 가벼운 몸짓과 선선한 표정 때문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난데도, 그러니까 하루 아침에 세상이 180도 뒤바뀐대도 하루 세 번 밥 챙겨먹는 일 만큼이나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일처럼 새삼 심드렁하기만 했을 친할머니댁 여자들의 그것과의 명백한 대비였다. 수인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을 의지에 반하게 헤 벌리고 서서 찾아온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일시적 호스트의 자격으로 자신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온 손님을 환대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인데, 그보다 상대는 어쩐 연유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멀뚱히 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그때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맙게도.


“아. 이거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 보통 술떡으로들 아시던데 여기선 기정떡이라고 부르는 떡인데. 발효해서 부풀려 만든 떡이라 출출할 때 부담없이 먹기 좋아서 가져와봤어요. 저녁은 드셨을 것 같아서”

“아. 저 떡 즐겨먹어요. 감사합니다. 들어오시겠어요?”

“아. 아니에요. 처음 와본 낯선 동네인데다가 빈 집에서 낯설어 하실까봐 미진 언니가 좀 챙겨주라고 해서 잠깐 올라와봤어요”


아랫집 그가 기정떡이 담긴 유리그릇을 여행객에게 넘긴 뒤 갈 곳 잃은 듯 맞잡고 비벼대던 두 손을 과장되게 흔들어 보이며 받은 호의에 비해 후한 치례를 선보였을 때 수인은 그에 상응하는 통 큰 환대의 신호를 상대에게 보내지 못한 것에 뒤늦게 후회를 했다. ‘들어오세요’가 아닌 ‘들어오시겠어요’라는 말이 어쩐지 야박하게 보였는데, 초대하는 사람의 마음보다 방문자의 의사가 응대여부에 더욱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음식물쓰레기 나올 걱정 말고 집에서 편히 시켜도 먹고 챙겨도 드시래요. 미진언니가. 음식물쓰레기통은 싱크대 아래 장에 있는 건 들으셨죠?”

“네. 언니가 꼼꼼하게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음쓰는 1층 집하장 가서 폐기물통에 버리면 되는데 카드키 찍으면 열리고 닫히고. 여기, 여기에 카드키 있어요”


여기 여기 라고 말하며 그의 손이 신발장 중간 부분에 두 칸으로 나눠진 수납장을 가리켰고,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중 오른쪽 것에 돌아갔다 되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와 시선을 다시 마주쳤을 때 수인은 왜인지 눈맞추기가 한결 수월해졌음을 느꼈다.


“제가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 이렇게 다니면서 민폐만 끼쳐요”

“맨 보던 사람만 보다가 손님 맞으면 저도 리프레시 되고 좋아요. 근데 무진은 처음이시라고 들었는데..”

“아. 워낙 안 가본 곳이 많아서 이곳이 처음이라는 말이 좀 무색하지만. 네. 맞아요. 처음이에요. 무진”


말 끝머리에 나직하게 무진 이란 말을 내뱉으면서 수인은 찬찬히 지명의 유래를 떠올려보았다. ‘어루만져 편안하게 한다’ 수인은 이곳에 오기 전 무진에 관한 꽤 많은 텍스트를 찾아 읽었다. 무엇보다 무진에 담긴 의미가 좋았다. 동천,남천,홍천,제천 등 도시를 가르는 4개의 천과 시 경계부에 뻗어있는 보현강과 상사강 그리고 모활산, 보성산, 선암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의 지형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지명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 중 2개의 천이 합류하여 흘러드는 도시의 북쪽 끝 세계 최대 자연습지인 무진만으로부터 바다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무궁무진할 때의 무진도 떠올렸다. 그러나 지역사는 지명과 꼭 같진 않은 것 같았다. 소국들의 난립과 멸망 그리고 통합의 역사를 반복한 뒤 찾아온 환란의 시대에 이곳은 외세침략에 맞선 최후의 보루이자 최대의 격전지였고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유혈 시민 항쟁의 발원지이자 성지였으며 산업단지 개발 광풍이 불 땐 이곳도 예외 없이 거센 도전을 받았다. 시민사회 응전에 따라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기까지 무진만은 꽤 긴 시간 인류의 도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 <여천기행>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뜻밖의 만남과 예기치 않은 사건을 기대하고 찾아 오는 여행객들로 한때 관광특수를 노렸지만, 인근 지역의 지명이 들어간 가요가 종전의 히트를 치면서 관광하기 좋은 도시라는 이미지는 퇴색되었다. 그 대신 좌우 인접 지역에 들어선 산업단지 덕으로 비싸진 집값을 피해 이곳에 와서 거주하는 외지인들이 늘면서 인구수가 감소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소도시라는 영광을 얻었다. 정원박람회장과 멀지 않은 곳에 설치 예정이라고 알려진 쓰레기처리장 설립 현안이 지역 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상황이고, 영화산업의 침체 속에 첫 회를 맞는 지역영화제 개최를 두고도 지역언론에서 지역사회의 기대와 우려를 교차해 내보내는 중이었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일정기간 외곽도로의 점심시간 후 음주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 내려졌다. 이것이 인구 27만명 관할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 무진에 대하여 수인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무진에 도착하고 3시간 동안 단 한번 유용하게 사용된 적은 없으며 앞으로 쓸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정보들이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시겠지만 요 앞이 호수공원이에요. 산책하고 멍때리기 좋아요. 도서관도 있고 주변에 먹을 데도 많고요. 무엇보다 여자 혼자 다니기에도 안전해요. 도서관 뒤엔 로컬푸드매장 있으니 식재료는 그곳에서.. 아 내일 오일장 열리겠네요. 장날 무진시장은 꽤 볼만 해요. 정원박람회랑 무진만습지도 당연히 좋지만 저는 매봉산둘레길 중 비봉 올라가는 길을 보통 추천해요. 가는 길도 선선하니 좋고 코스가 어렵지 않아요. 트레킹하는 거 좋아하시면요”

“걷는 거 잘해요. 하루 하나씩 다녀보면 되겠어요”

“맛집추천도 해드려야 하는데. 우선 정어리쌈밥부터 드셔보세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아니면 못먹어요. 아고 시간 너무 뺏었다. 얼른 쉬세요”


호수공원, 도서관, 로컬푸드매장, 무진시장, 매봉산둘레길, 정어리쌈밥. 수인은 작별을 고하는 이웃집 여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거리고 그가 알려준 몇 개의 낱말들을 머리 어느 면에 새겨넣는 것처럼 입으로 조용히 꼽씹었다. 그것이 적절한 배웅의 인사처럼 들렸는지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철커덕 현관문이 닫히며 어떤 존재가 사라지고 불현듯 적막이 찾아왔을 때 수인은 빈 집이라는 느낌이 조금 희미해진 것 같았고 문닫힌 안방에 미진이 피곤한 눈을 붙이고 잠시 졸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잠시 빠졌지만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수인은 정말 자고 있는 누구라도 있는 것처럼 뒤꿈치를 살짝 들고 걸으며 부엌으로 가 미진이 끓여놓고 간 미지근한 돼지감자차 한 잔을 따라 아랫집 이웃이 주고간 기정떡과 함께 트레이에 받쳐든 후 거실의 평상형 소파에 꼿꼿이 앉아 집주인이 허락한 일기장의 중간부분을 펼쳐들었다.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삽입된 사진은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로, 대체로 특정 기간 한 지역에 머물며 오가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삽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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