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 대자연 ⑩
장날 시장 안은 온통 무신경했다. 차도 한 차선을 점거하고 들어앉은 상인들이 특정한 구획 없이 구부정한 자세로 듬성듬성 앉아있었다. 그들은 무표정했고 지리멸렬해 보였으며 때때로 벌칙을 수행하는 사람처럼 고통스러워 보였다.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눈 앞으로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옮아가지 않았다. 물어오는 말에는 주관식 문항에 기입하는 문어체로 짧게 답했다. 팔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았고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상인이라기보다 농사꾼 같았다. 오래 전 현대식 건물로 개축한 돔모양의 시장 안팎으로 천지 만물을 다 모아놓은 것처럼 상인들과 그들이 가져온 상품들로 넘쳐났지만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통속은 없었고 발구름과 손뼉으로 타는 박자에 맞춰 연신 골라보라는 경쾌한 리듬도 없었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끄는 그 흔한 구애도 없었다. 정찰제도 아니었지만 특별 할인된 가격에 제공되는 것도 딱히 없었다. 사람들은 바닥에 널부러진 바구니와 박스들 사이로 길을 내듯 줄지어 흘러다녔다. 그러다 누구 한사람 멈춰서서 물건을 살필 때는 교행에 다소 지체와 불편이 발생했지만 양해를 구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너른 이해심을 발휘하는 사람도 없는 듯 보였다. 무표정과 짜증스런 얼굴이, 재촉하고 싶은 심사와 무기력한 몸짓이 앞뒤로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갈등이 없었고 그러므로 사과도 용서도 극적인 화해도 없었지만 화목하지도 않았다. 소란스럽지 않았고 번접하고 분주했다.
수인은 이곳에 들어서기 전 건너편 횡단보도에 서서 무진시장 공용주차장이라는 대형 스카시 간판이 산의 정상처럼 우뚝 솟은 장면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건축물 주변으로 인도와 차도 구분없이 빼곡하게 들어선 캐노피천막과 파라솔 등의 임시구조물들이 땅아래서 융기한 산봉우리의 일부처럼 보였다. 장날이었다. 처음 와본 곳이었지만 수인은 이곳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 지속적으로 움트고 팽창하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한꺼번에 꿈틀거렸다. 통상의 신호체계가 무색하게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레 횡단보도를 건넌 수인은 복숭아와 참외, 사과 등이 박스와 바구니, 비닐봉지에 주렁주렁하게 담겨 바닥에 깔려있는 좌판을 좌우에 두고 경계 안으로 스며들었다. 산을 오른다기 보다 산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수인은 금새 섞여들었다. 수천개의 시선이 각자의 방향으로 분산된 무신경의 바다. 덤과 에누리조차 흥정과 거래의 결과로 귀속되는 곳. 비가시적 공로에 대한 치례가 필요치 않은 오직 실체적 교환만이 가시화되는 장소. 그곳은 구경만 해도 실례되지 않는 불완전 거래들로 충만했다. 수인은 경계조차 불분명한 장의 안쪽으로 접어들면 막힌 속이 풀리는 것처럼 안도감을 느꼈고 물에 뜬 기름처럼 부유하는 느낌이 좋았다. 수도권 외 타 지역에 머무르게 될 때마다 수인은 꼭 전통시장, 운이 좋아 일정이 맞으면 오일장에 맞춰 찾곤 했는데 결혼 이후 생긴 취미였다.
수인의 시댁은 전라남도 영광이었다. 굴비로 대표되며 그 외 다른 것들로 분류되거나 소거되는 인구 5만의 지방소도시. 수혁을 만난 뒤로는 ‘굴비 외 수혁과 그의 유관한 것’들로 색 입혀진 동네. 결혼 후 처음 가본 지역이었다. 수혁의 부모님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 8개월의 연애와 48년의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동안 단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영광토박이셨다. 서로 집을 오가며 가깝게 교우하던 고등학급 친구의 동생과 익숙한 연애를 하고 양가 부모의 종용에 따라 서둘러 결혼을 한 수혁의 아빠는 가업만은 절대로 이어받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는데, 뼈가 삭도록 일을 해도 곤궁을 면할 길이 보이지 않던 농사일이 싫어서 였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겠다는 뜻에 따라 수혁의 아빠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지방행정직 9급에 도전해 사수 만에 합격하여 요즘 말로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우는 공기관의 녹봉을 받는 공무원이 되셨지만 예상과 달리 부모님께는 끝내 좋은 소리를 못들었다고 수혁의 아빠는 허허거리며 말했다. 그 덕으로 젊디 젊었을 수혁의 엄마가 시누이 넷과 함께 소작농 생활을 평생 하셔야 했다.
8년 전 아버님이 정년퇴직을 하실 때 수혁의 엄마는 넘들은 승진도 턱턱 잘도 되더만 부군수도 못해보고 퇴직한다는 타박을 잊지 않으셨다. 그녀는 부군수는 승진해서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수혁의 말에도 족히 세 번은 더 말했다. 그녀의 일평생 고생에 대한 보상이란 것은 푸념을, 때론 한탄을 매번 실실거리며 들어주는 성실한 반려자와의 해로일 거라고 그 순간 수인은 생각했다. 수혁의 아빠는 소작거리를 줄여나가던 엄마의 계획과 다르게 300평 밭을 유지해 소일거리 삼아 양파 농사를 짓고 계신다. 여전히 엄마의 폭풍 잔소리와 푸념을 노동요 삼아. 수혁은 아빠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시대를 너무 앞서 가 주위를 고생시키는 캐릭터이지만 큰 욕심이 없어 본인은 그럭저럭 평탄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설명했고, 그와 대조적으로 엄마에 대해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말을 아꼈다.
결혼 후 수인은 수혁의 선 제안에 따라 구정과 추석, 일 년의 딱 두 번만 시댁을 찾아뵙는 중인데 시부모님들이 이를 섭섭해하시지 않을까 매번 걱정했지만 다행히 두 분은 별다른 내색을 전혀 하지 않으셨고, 광주와 전주 등으로 독립해 살고 있는 수혁의 형과 누나 혹은 그들의 배우자들에게서조차 어떤 기별을 전해받은 바도 없었다. 수인은 시댁을 처음 방문했던 9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낯을 가렸다. 살가운 성격은 못되었다. 먼저 나서서 안부를 묻는 경우도 잘 없었고 건네오는 물음에도 핵심만 추려 최대한 간략하게 응답했다. 결혼 후 서너번의 명절을 보내고도 수인은 수혁의 부모를 호명하는 호칭인 어머님과 아버님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엄마의 이혼 후 남성 어른을 일상적으로 호명할 일이 없었고, 생애 첫 대면자로 무의식의 생존본능에 따라 감탄사처럼 튀어나와 사용되는 엄마 라는 말, 그러니까 타인의 엄마를 자신의 엄마와 같이 친근히 높여 부르는 호칭은 더욱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같지가 않았다. 수인은 수혁의 부모님들을 호명해야할 순간을 되도록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고 불가피하게 말을 걸어야할 때 호칭을 생략하거나 말 하다 만 사람처럼 저 라는 지시어만 허공에 내뱉어두곤 했다. 행정절차에 따라 연을 맺어 일 년에 두 번 대면하는 사이라 가까워질 새가 없었고 수인에게 수혁의 부모는 끝내 어려웠다. 다행히 수혁의 가족들은 수인이 하는대로 받아주는 편이었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살가운 며느리는 하나로 족하신다는 듯. 수혁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따뜻했고 각별했으며 곪을대로 곪아 삐죽하게 터져나오는 너덜한 말 따위 건네는 일이 없었다. 축하와 위로의 말에 인색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그러하듯 그들은 수인에게도 언제나 따뜻했다.
그러므로 누가 보면 무난한 시집살이었지만 수인은 수혁의 가족 사이에 끼어있을 때면 사춘기로 일컬어졌던, 대책없이 암울했던 시절로 종종 되돌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벗어날 의욕따위 없이 웅크리고 주저앉아 있던 때였다. 가정의 불우가 미래까지 저당잡고 일생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처럼 눈 앞에서 번쩍거렸다. 크리스마스 때와 같은 다정한 장면이 연신 옆으로 휙휙 지나갔고 수인은 극단적 대비처럼 보이는 남다른 불우에 불행해졌다. 무리 밖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내거나 불행한 감정웅덩이 한가운데로 자신을 끊임없이 유폐시키던 시절이었다. 지독스런 호르몬의 작용. 참으로 고약하게 앓았다. 수인은 수혁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와중, 첫째 형님네 두 아이들의 재롱을 다같이 바라보는 와중에 종종 그때처럼 사무치게 외롭고 남모르게 쓸쓸해졌다. 수혁의 가족은 10대의 수인에게 영영 풀 수 없는 과제와도 같았던 그런 평범한 가족의 모습과 똑 닮아있었다. 생일 땐 초를 켜고 방학때면 휴가를 떠나 계곡 한가운데 어정쩡하게 서서 가족사진을 남기는 평범한 가족. 일면만 봐도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매일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저녁엔 모여 웃고 떠들며 다함께 식사를 하고 크리스마스엔 갖가지 장식으로 트리를 만들고 선물을 나눌 것이었다. 수인은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교감회로에 동화되지 못하고 자주 그곳에서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실제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포착되었는데, 추석연휴 첫 날 늦은 오후가 되면 갓 쪄낸 송편을 시장에 가서 받아오는 일이었다. 수인은 심부름을 자청해 시댁에서 차로 15분거리에 있는 영광시장에서 주문해둔 송편을 찾고 한참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다. 그곳엔 유별남이 없었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한동안 수인의 주변으로 제철과일이 보였다. 그것들은 도로 곳곳에 널브러져있었다. 대형 자바라천막 아래 사과 한무더기가 쌓여있었고 천막을 받치는 철재기둥 옆으로 바구니에 담긴 사과들이 플라스틱 상자 위에 진열되어 있었다. 유통과정이 집약되거나 생략된 직거래장터는 보관창고에서부터 매장 진열대까지가 한 눈에 보였다. 이곳을 지날 때 수인은 자신의 발 밑 바닥과 그 너머를 두루 살피며 느리게 걸었다. 복숭아와 사과는 서너개씩 한바구니에 담겼고 참외는 열댓개씩 비닐봉지에 담겼다. 수인은 복숭아가 더 먹고 싶었지만 정작 걸음을 멈춰서 관심을 보인 건 비교적 저렴해 보이는 참외 좌판 앞에서였다. 한봉지에 얼마에요? 만원. 시선이 교묘하게 어긋난 두 사람 사이에 짧은 말이 오갔다. 오천원어치만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다가 수인은 좀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상대는 대꾸가 없었다. 아직 장의 초입이었다. 다른 선택지 가능한 시장의 이점을 보다 누려볼 심산이었다. 이 수많은 옵션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란 응당한 믿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도로에 부려있다시피 모여있던 일군의 과일섹션을 지나니 건축물의 측벽으로 칸칸이 구성된 상설매장이 보였다. 그곳엔 농기구 잡화점과 떡집, 기름집, 건어물가게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붕과 벽과 잠금장치가 달린 개폐식 창이 있었지만 도로에 자리잡은 임시구조물 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산지의 다양한 식재료들이 선을 보이는 다른 장소에 비하여 스티로폼이나 병 등에 포장되어 진열된 이곳의 상품들은 주목을 덜 받는 것 같았고 그 덕에 덜 분주해보였다. 수인이 보기에도 어쩐지 대형마트에서 본 것보다 나아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수인은 기름집 옆 건어물가게 가판대 앞에 금방 자리를 뜰 사람처럼 비스듬히 멈춰서서 말린 오징어가 수북히 쌓인 상품이 아닌 낡은 플라스틱 채반에 반을 갈라 적당히 말려 색을 잃고 옅은 회색빛을 띤 반건조 생선과 그 위로 시계방향으로 무기력하게 돌며 파리를 쫓는 우산살 모양의 철제 기계를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주인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매장 안 어둠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지만 살 의지가 없는 수인은 사람들에게 떠밀려 금새 자리를 뜨고 말았다.
교행하던 사람들로 붐비던 비좁은 길을 지나자 교차로처럼 탁 트인 길이 나왔다. 돔모형 시장 내부로 진입하는 오픈형 입구 앞이었다. 시장 안은 광장처럼 넓었다. 홀 가운데 길고 넓게 통로를 남겨두고 양측으로 각종 채소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소량으로 파는 할머니들이 바닥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그들은 널찍한 데크 위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이곳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할머니들에게 내준 것 같았지만 바깥에 비해 북적거리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수혁이 같이 왔다면 할머니들에게서 시금치나 도라지 같은 것을 한 소쿠리 씩 샀을 것이었다. 이왕이면 할머니들이 파는 걸로 사자고 하면서. 수인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거래라고 핀잔을 주었다. 할머니들을 보며 엄마 생각이 났을 거라고 수인은 넘겨짚었다. 너네 엄마가 저 할머니들보다 훨씬 젊거든. 수인은 그때처럼 수혁의 엄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그곳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수인은 시장 바깥 길거리 번잡한 오일장의 틈새로 불규칙하게 흘러 다녔다.
삽입된 사진은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로, 대체로 특정 기간 한 지역에 머물며 오가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삽입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