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22)
가족과 함께 할 때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 해도해도 부족했던 노력, 전하지 못한 마음, 엇나가버린 행동, 어찌할 수 없었던 그날의 온도와 습도와 조도까지 과거의 사건과 요건들이 현재 시점으로 죄다 돌아와 병풍처럼 둘러친다. 나는 자주 그날의 내가 된다기 보다, 그 시절 엄마와 아빠가 된다. 지금의 나는, 어느덧 그날의 그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내가 되는 때보다 그와 그들의 시점으로 돌아가보는 때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고달프기만 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언젠가 이 역시 과거가 될 지금의 시간들로 다시 채색하고 있는 것 같다.
추석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한 두번째 순천여행이었다. 정원박람회 관람과 여수여행까지 이동과 일정으로 가득했던 지난 여행과 달리 이번에는 조용히 머무르는 시간, 따로 또 같이 하는 일정 등으로 계획을 세워 여행이라기 보다 잔잔한 일상 같기만 한 시간이었다. 추석 연휴 전날 때마침 열린 아랫장의 오일장 장구경과 장보기로 시작하여 가을이 된 정원박람회에서 순천만 갈대습지를 돌아보고, 추석 당일과 겹쳤던 마지막날엔 동생과 아빠는 정읍과 전주 아빠의 남매들 방문, 엄마와 나는 전주에서 시간을 보내다 전주에서 합류, 용인 언니네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 여행길. 돌아보면 별 것 없기도 하고 다 별 것 같기도 한 이번 여행에서 단연 가장 좋았던 시간은 둘째날 화포해변에서 다함께 일몰을 보던 때였다. 해가 진 후 얼마간이 진짜 일몰의 시간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해가 떨어지자 마자 흩어져버렸던 가족들이었지만, 나는 이때의 색으로 이날을 영영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두가지 장면을 동시에 본 것 같았는데 왼편으로 달이 뜨고 오른편에 해가 지는 풍경 사이의 장소, 그 틈새와 같은 시간의 특징 때문인 것 같다. 산과 섬들이 겹쳐지고 이어져 꼭 바다가 호수 같았던 그 수묵화적인 풍경의 가운데로 뻗다 만 것 같은 방파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깔대기에 노랗게 타오르는 햇빛 한가득 쏟아붓는 것처럼 노랗기도 하고 붉기도 한 빛깔이 섞여 결국 분홍빛으로 물이 들고, 오른편으로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달이 어스름을 제촉하는 듯 했던 그곳, 더할 나위 없는 시간. 돌아오는 길엔 새우구이 가게들의 구수한 숯불향 맡으며 어느새 어둑해진 낯선 고부랑 길을 돌아 오던, 분홍색 미소와 평화가 번지는 그곳에 함께 했던 시간으로 자주 되돌아가보는 중이다. 다들 이 힘으로 또 살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