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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Feb 05. 2024

진상조사위원회   

소설 <PART - two> #공동행동 ②

“본 건은 센터장 C에 의한 성폭력과 실장 P의 2차 가해 및 괴롭힘에 대하여 피해자 외 대리인 3인으로 구성된 ‘공동행동’ 측의 제3자 진정에 의해 9월 29일 접수되어 발효된 사건입니다. 진상조사위는 본 건과 관련하여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피해 구제를 목적으로 센터의 모법인인 ‘씽’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설치되었습니다. 진상조사위는 피해자 상담 및 업무분리, 2차 가해 방지 대책 마련 등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절차 진행과 더불어, 진상 조사, 센터의 관련 제도 정비안 마련, 가해자 징계 요구를 담은 의견서 작성 등 피해 구제안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된 자문 기구 성격의 한시적 조직입니다. 저희 진상위 설치목적이 피해자의 회복과 구제에 있는 바 피해자의 진상위 능동적 참여가 중요했는데요. 이에 따라 ‘공동행동’ 측 추천인을 포함하여 모법인인 ‘씽’에서 1차로 진상위를 구성하였으나 피진정인 중 한 분이 본인의 방어권을 주장하셨고 향후 피해구제 과정 중 징계 유무와 정도가 진정위의 활동에 따라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참작하여 ‘공동행동’ 측에 양해를 구하여 피진정인 1인의 추천인까지 포함하여 진상위는 총 6인의 멤버로 10월 23일 최종 구성되었습니다. 진상위는 설치 이후 피해자 상담과 피해자 대리인 및 피진정인 면담을 진행하였습니다. 피진정인 중 한 분은 요청에 따라 서면으로 면담을 진행하였다는 점 언급드립니다. 그동안 저희 진상위는 사건의 진위 파악에 온 힘을 쏟았고 오늘은 피진정인이 제기한 몇 가지 이슈에 대하여 진정인 측 의견 개진과 이를 청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참고인께서 대리하여 참석해 주셨습니다. 진정인의 마음을 대신 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오늘의 회의에는 피진정인께서 추천한 위원 1인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이 전원 참여하고 있다는 점 참고차 말씀드립니다”


그 여럿 중 ‘진상조사위원1’이라는 명패 뒤에 앉은 사람이 회의취지에 대하여 꽤 긴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했다. 랄라만을 위한 설명이었다. 창문을 닫고 앉은 맨 가장자리의, 디긋자로 배치된 대형에서 구부러진 자리에 홀로 앉은 사람이 편한 분위기를 주려는 듯 연신 온화한 미소를 띄고 진상조사위원1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외 사람들은 책상 위에 문서를 넘겨보거나 딴청을 피웠다. 미소를 띄며 앉은 사람의 맞은 편에는 법인에서 나온 직원인 것 같았다. 위원회에는 기록 및 위원회 지원 담당으로 법인에서 직원 한 명이 파견되어 있었다. 센터 설립 이후 법인에 들어온 사람이라 랄라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펼쳐둔 노트북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2주간 작성된 경위서는 9월 29일 모법인 운영위원회를 수신자로 하여 ‘씽’의 사무국장인 뮬에게 메일로 보내졌다. 민지의 기억에 의존해 시간순서별로 적은 성폭력 사건 주요 경위와 2차 가해 및 괴롭힘에 대한 진정을 접수 의뢰하는 메일이었다. ‘창의센터 내 발생한 성폭력 및 2차 가해 등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의 의견서가 함께 동봉되었다. 의견서에는 진정인이자 피해자인 민지와 두 피신고자이자 가해자인 센터장 C, 실장 P간의 업무분리와 조직적 차원의 방지 대책 마련, 가해자 징계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 뒤 민지는 피해자와 진정인 등 두 호칭으로 공식 불려졌다. 그 뒤 모법인 측에서 추측성 이야기들이 퍼지기 전에 빠르게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해결해 나서겠다고 밝혀왔다. 진상조사위는 공동행동에서 추천한 1인과 피신고자이자 가해자 중 한 명인 실장 P가 추천한 1인, 법인 소속 포함 추천 4인까지 하여 총 6인으로 신고 24일만에 설치되었다. 랄라는 센터장C가 위원 추천권을 포기하였다는 것을 뮬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서면으로 면담을 대체한 사람도 그 일 거라고 짐작했다. 랄라는 뮬로부터 말을 전해들으며 ‘포기’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 여러번 말해보았다. 그것의 경중을 떠나 주어진 일말의 권리를 포기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지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가 지금의 이 질서에 비협조적이고 불성실하게 참여하며 단지 불복하는 듯한 인상만은 주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아, 본 회의에 앞서 한가지 더 언급드리면 피진정인 중 한 분께서 진상위 구성의 성별 안배에 있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진상위는 권한이 있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한시적 자문기구로 문제해결에 있어 이미 노정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 가해자 징계 등과 같은 실질적인 피해구제 관련 주요 절차는 모법인의 권한과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며 이는 언제든 우리 진상위가 요구하는 바와 다른 결과로 전복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 피해구제를 목적으로 설치된 진상위 구성에 대한 피진정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명하였습니다. 진상위의 향후 일정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시다고 들어 말씀드립니다. 참고인께서는 원래하시고자 하던 바대로 토론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상입니다”   

  

“선생님을 아는 분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셔서요. 센터에서 하시는 일 같은 짧은 본인소개 혹은 토론 시작 전 하시고 싶은 이야기 간단하게 해주시겠어요? 그 후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앙의 두 자리 중 오른쪽에 앉아 계속 말을 하던 사람의 말이 끝나자 회의 시작할 때 처음 말을 꺼냈던 사람이 미소를 띄우며 랄라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상반신 아래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이라는 명패가 놓였다. 그 외엔 진상조사위원 1, 2, 3 등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넘버로 표기하여 그들의 색을 지우려는 의도가 다분해보였지만, 랄라는 위원장이라는 명패 위에 다소곳이 앉은 그녀와 안면이 있었다. 김지희. 대표 승곤의 요청에 따라 모법인 ‘씽’의 이사로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었다. 그녀는 소위 소셜섹터라 불리우는 이 영역으로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단기간 내 자리를 잡은 젊은 여성리더로 분류되고 있었다. 모 식품회사에서 간편식 포장 디자인 업무를 4년간 해오다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도모하던 중 정부 지원을 받아 이쪽 영역으로 넘어온 케이스였다. 그녀는 시민단체와 사회적기업들의 디자인 작업을 해주던 회사로 시작, 이후 한 시민단체와 협업하여 디자인 씽킹을 위한 디자인 도구 및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에 더해 한 자치구에서 디자인씽킹 전문 카페를 열어 주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를 눈여겨보던 승곤이 발탁해 ‘씽’의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 덕분으로 이사진의 평균연령이 확 낮아졌다는 주변화된 평가를 받고도 이사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는 사회운동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활동가들에게 기여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영리 섹터에서 넘어온 젊은 친구들에겐 그들의 전직 간판이 과대포장되어 내내 따라다녔다. 그러나 랄라는 이사 중 연령이 가장 낮은 30대 여성을 골라 위원장으로 앉힌 것에 가장 빈정이 상해 있었다. 8인의 이사진 중 5인이 센터의 운영과 관련한 협의기구이자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에 해당하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운영위 속하지 않은 3인의 이사 중 한명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꼬깃꼬깃하게 접힌 시간 속에 의도적으로 머무르는 것과 같은 조직활동인 조직 내부 문제 해결 경험이 전무했다.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다른 이사들이 여우같이 발을 빼고 경험 삼으라는 명분으로 등떠밀듯 그녀를 이 진상위에 추천했을거라 랄라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 짐작은 어와 아 차이 정도로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었다. 효율과 편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계에서 싫은 소리 천 번에 한 번을 더 얹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등뒤의 시간들을 현재로 붙잡아 돌아오는 일을 효용으로 삼아야 하는 일에는 왜 매번 여성이 그 역할을 자임하게 되는지 랄라는 그녀를 대신해 자괴감을 느끼고 말았다.  


“저는 센터에서 랄라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우고 있고 정책기획실에서 시의 입주단체 지원정책을 짜고 외부의 지원정책들을 분석하여 연계하는 한편, 입주 후 성장 평가를 위한 성과지표 개발 및 평가체계를 설계하는 임팩트평가팀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김승곤 대표님과 시민사회네트워크에서 알게 되었고 그 연으로 처음 ‘씽’을 만드실 때부터 함께 했고 센터 설립부터 ‘씽’에서 파견된 형태로 참여해 현재까지 센터에서 가장 오래된 멤버 중 한 명입니다. 센터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재직기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전에 없이 긴장한 듯 랄라의 목소리는 말하는 내내 떨렸다. 말을 시작하려니 숨이 가빠 호흡을 몰아쉬어야 했다. 차츰 호흡은 안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말하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미세한 떨림이 남아있었다. 랄라는 배에 힘을 잔뜩 주었다. 랄라는 이 진정위 여섯 중 둘을 알았고, 짐작하고만 있지만 상위기관인 모법인의 상주직원도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이 세 사람이 랄라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왜인지 낯 뜨거웠고 수치스러웠다. 김승곤 대표와의 연까지 끄집어내 말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목 아래에서 위로 귀에서부터 턱으로 얼굴이 점차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위원장과 함께 나란히 중앙에 앉은 손혜옥은 여성주의 활동가로 랄라와 안면이 튼 사이였다. 현재 모 대학교에서 비정규직 전문강사로 재직중인 그녀는 정당과 시민단체에 성폭력방지규약 및 관련 기구 설치를 지원하는 외부전문위원으로 자주 활동해왔다. 랄라는 두어번 같은 외부위원으로 초대돼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랄라의 소개로 ‘공동행동’에서 추천한 진상조사위원이었다. 그녀와 그리 가까운 관계도 가까워질 사이도 아니었으나 회의석상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발언의 내용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축한 그녀의 글을 눈여겨 보아오며 어쩐지 신뢰가 쌓인 것 같았다. 랄라는 공동행동으로 진상조사위원 추천 요청이 들어왔을 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떠올렸다. 자신이 그녀와 이렇게 마주앉아 조사인과 피조사인으로 만나게 될 거라고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한 것이었다. 두번째 후회는 이때 했다. 후회의 내용이 애초에 이 어려운 일을 시작하지 말 걸 인 것인지 이 날의 자리에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가 나오도록 할 걸 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럼 오늘의 본회의로 넘어갈게요. 앞서 손 위원님께서 말씀드렸다시피 피진정인 C는 서면 답변서를 제출하셨고 피진정인 P는 저희가 따로 인터뷰를 진행하습니다. 참고인 대면에 앞서 피진정인의 답변 내용을 조목조목 언급하여 진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별도로 논의를 진행했는데요. 피진정인이 제기한 의문점에 대하여 되도록 저희가 해석한 바대로 전달하고자 하나 그 과정에서 오욕될 소지가 있다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피진정인이 사용한 단어 혹은 문장의 일부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피진정인 C가 제기한 내용부터 차례 차례 시작해볼까요?”   


김지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 끝을 올려 말했다. 방 안의 그 누구도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랄라는 두 빈 손으로 의지하고 있던 생수병의 뚜껑을 드디어 돌려 열었다.


커버사진: UnsplashMichael Carruth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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