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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Feb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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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PART - two> # 공동행동 ①

북향인 A동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공간들은 대낮에도 조명을 켜둬야 할만큼 어둡고 음침했다. 북동쪽 구석진 자리에는 사람이 온종일 정주하지 않는 중소규모의 회의실들이 층마다 배치되었다. 소규모 수선만 하고 급하게 입주단체를 받은 A동의 회의실들은 온통 하얀 페인트로 덧칠해졌다. 회의실의 하얀 콘크리트 벽의 사방으로 냉기가 뿜어져나왔다. 회의실 안은 한여름에도 선득했다.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창문을 닫아두어 목 뒤로 서늘한 공기가 슥 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에 뒷목을 쓸어내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외부손님이 와서 회의하는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회의실을 이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폭염경보라도 있는 날이면 회의실로 피난 오듯 한두시간씩 대여해 업무공간으로 활용하는 영리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11월 22일의 회의실은 겨울 한파에 접어든 것 마냥 냉랭했다. 벌써부터 회의실의 이용률은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랄라는 2층 북동 측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 회의실3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앉아 이토록 새하얀색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별 의미 없는 생각을 했다. 랄라는 새하얀 페인트로 온 벽을 덧칠한 이 회의실이 싫었다. 창 마저 없었더라면 이 하얀벽과 벽 사이에서 영원히 헤매는 것처럼 길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이 망측한 생각 탓인지 오늘의 공기가 유독 찬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랄라는 치가 떨리는 것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떨었다. 어깨에 걸친 가디건을 살짝 들어 손 넣을 구멍 더듬거리며 찾고는 두 팔을 차례로 천천히 껴넣었다. 미덥지 않은 오래된 라디에이터에서 쉭쉭 소리가 났다. 겨울을 대비해 난방시설 점검이 있는 날이었다. 


구석진 방이어서 그런지 모인 사람에 비해 방의 규모가 과하게 큰 탓인지 일곱 사람이 모인 회의실은 더욱 음습했다. 천장에 붙은 일자 백열등 하나가 이빨 빠진 것처럼 빛을 잃었다. 디긋자로 배치된 자리에 여섯의 사람이 흡사 면접 대형과도 같이 앉아있었다. 중앙에 앉은 두 사람 중 왼편에 앉은 사람이 말하는 사이 그 왼쪽의 왼쪽 그러니까 디긋자로 구부러진 자리에 홀로 앉아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규모 수선 범위에 속하지 않아 유독 낡아보이는 고동색 철 샤시를 밀어 열었다. 철 샤시는 삐디딕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창이 열리며 청량한 바람이 훅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의 가을 공기가 차라리 따뜻하게 느껴졌다. 창 밖에서 까마귀 한마리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이 소리에 지지 않겠다는 듯 말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오늘, 참고인과 함께하는 진상위 첫 회의인데요. 손 위원님께서 간략하게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서 몇 가지 공유를 드린 후에 본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1,2부로 나눠서 진행될 예정인데요. 두 분의 피진정인께서 제기하신 내용과 관련하여 참고인의 의견을 듣고 이어 2부에는 진상위의 4차 회의로 진행됩니다. 1,2부 사이에 십오분 정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질 예정인 점 위원님들 참고해주시고요. 1부는 참고인 참여 하에, 2부는 참고인 없이 진행되는 것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경과 공유가 끝나고 나면 참고인께서 간단히 자기 소개해주시면 어떨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말하는 이가 책상 위에 두 팔꿈치를 대며 눈썹을 위로 치켜올려떴다. 랄라는 나지막히 네 라고 대답하며 혹여 작은 소리에 상대가 자신의 긍정의 사인을 캐치하지 못했을까 싶어 뒤늦게 고개도 끄덕여보였다. 


랄라는 9월초 율무에게 처음 경위를 전해듣고 곧바로 나인에게 SOS를 쳤다. 나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랄라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날의 일과 관련해 얼마전 랄라는 나인에게 왜 묻고 따지지도 않고 단박에 제안을 수락했느냐고 타박하듯 묻고는 이 일을 시작한 것을 두고 혹 후회하는 투로 들렸을까 걱정을 했다. 그 때 그녀의 대답은 “랄라의 제안이었잖아” 였다.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거나 위태로워질 것 수 있을 거란 계산도 없이 결정을 확신한 배경이 자신이었다니 랄라는 그 말을 듣고는 덜컥 겁부터 났다. 이 일을 시작하고 첫 후회는 그때쯤 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못한 후배와 그 후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사람에 더해 그 사람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누군가까지 세 사람은 민지를 어르고 달래며 2주간 경위서를 함께 작성했다. 그리고 네 사람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모법인 ‘씽’의 사무국장인 뮬에게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랄라와 나인의 주장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머지 두 사람의 특명을 받아안고 랄라와 나인이 함께 만난 뮬은 경위를 전해 듣고 곤욕스러움을 얼굴에서 감추지 못했다. 상대의 당혹감을 예상 못한 바도 아니었지만 반응의 정도가 예상범위를 초과한 건 맞았다. 그녀는 황급하게라도 표정을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말도 못하고 얼어붙은 채로 그렇게 두 사람에게 여실히 드러나고야만 그녀의 표정을 보며 랄라는 있달 것 없는 시민사회진영 내외의 신뢰기반이 와르르하고 무너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랄라의 눈 앞에 그야말로 온통 돌무덤이었고 와르르하고 크고 작은 돌맹이들이 끝 없이 쏟아지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 다음에는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이들과 함께 누렸던 번영의 시절이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꼭 누런색의 곡창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이미지로 환영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밤새 치열하게 토론하고 시민사회진영에서 함께 제기한 이슈가 온 미디어를 도배했던 날과 어느 대학교 야외음악당에 모여 체육대회 하던 일, 운집한 사람들이 체육관 같은 곳에서 승리한 것처럼 연신 환호하는 장면 등이 머릿속에 누군가 심어둔 것 처럼 매끈하게 연달았다. 실제인지 왜곡된 기억인지 분별하려는 시도가 되려 불온하게 느껴졌다. 뮬도 자신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거 였고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잠깐 마음이 웅장해지기도 했다. 랄라는 더 늦기 전에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늦은 것인가를 수없이 반복하고 반복해 계산을 해도 답을 낼 수 없었다. 머리 속 작은 틈에서 균열이 난 것 같았고 사고는 유폐된 채였다. 공포는 상상력을 동력 삼아 강렬한 이미지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냈다. 랄라는 눈을 한번 찔끔 감았다. 


커버사진: UnsplashMarkus Spiske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소설 <PART - one>  읽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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