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문산 자락 책 읽는 고래의 보금자리, 양평 산책하는 고래
양평 서종면의 논밭과 전원주택 사이에 자리한 가정식 출판사와 서점, 살림집의 복합공간이다. 출판사 ‘고래이야기’에서 펴낸 아기자기한 그림책들이 툇마루에 가득하다. 2층은 책방지기님의 거주 공간, 1층은 서점이다. 1층에 방 두 개와 거실, 좁은 계단과 작은 복층 공간, 주방과 툇마루까지 갖추고 있는데, 인문, 철학, 자기계발, 문학, 여행, 요리, 건강, 청소년, 페미니즘 분야의 알 만한 베스트셀러들이 빠짐없이 전시되어 있어, 느낌은 작은 책방이지만 실속은 중급 서점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독립서점들과 달리, 크지 않은 공간에 있을 책들은 다 있음에 놀란다. 방문객들이 책을 읽는 사이, 밀짚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텃밭을 손보는 책방지기님의 손길이 능숙하다. 가드닝에 관한 책이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전에 방문해본 독립서점들은 작은 공간 안에 특정한 큐레이션을 중심으로 소량의 책을 진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으나, 산책하는 고래에서는 『코스모스』, 『대변동』,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비롯하여, 청소년 책 『페인트』, 노동 현장을 고발한 『임계장 이야기』 등 분야별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1박 2일을 지내는 동안 『섬에 있는 서점』을 읽었다. 산속 서점에서 섬 속 서점 이야기를 읽는 것은 발이 땅에서 둥둥 뜨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심 속에서 잊고 있던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냐옹~” 한 마디로 도도하게 책방 곳곳을 거니는 희디흰 앨리스도 이 세상 고양이가 아닌 듯 신비로웠다.
서울 번화가에 살며 출판사를 운영하시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양평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전원주택 위아래층에 함께 살던 세입자가 나가자, 책방과 출판사, 거주 공간을 한 건물에 꾸미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2020년 6월, 코로나 초기 사전 예약제 책방과 북스테이로 운영되던 시절에 방문하였는데, 오후 5시 반이 되어 책방지기님이 세심한 시설 안내 후 2층으로 퇴근하시고 나면, 투숙객이 서점을 포함한 1층을 완전히 독차지하는 구조였다. 드립 커피, 오미자차, 조식 이용 안내뿐 아니라, 거실 음악과 써큘레이터, 툇마루 외등을 끄는 법까지 설명을 듣고 나니, 시골집을 우리가 오롯이 렌트한 분위기가 났다. 욕실이 딸린 방 하나를 배정받고, 공동주방에나 테라스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여행자의 공간이 아니라, 책방 바로 그 장소를 마음껏 차지하며 하룻밤을 보낸다는 매력이 어마어마했다. 충북 괴산의 가정식 서점이자 북스테이 1호, ‘숲속작은책방’과 같은 공간을 가져 보고 싶었다는 책방지기님 말씀을 들으며, 숙소 안에 책을 두는 형태가 아닌, 책방을 내주는 북스테이를 운영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키우게 된 것도 나에겐 큰 수확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주택을 지어 거주와 생활 요건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나쁘지 않아 어느 정도의 방문객과 모임을 기대할 수 있고, 임대료 대신 주거 만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다는 백일몽에 젖어 있는 나에게, 책방지기님은 실질적인 보람과 재미, 고충의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셨다. 키즈카페나 놀이공간으로 여기는 아이 동반 가족, 펜션에서 파티하듯 이벤트를 하고픈 연인이 아닌, 조용히 독서에 심취하려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만들기까지, 운영의 변화를 꾀하고 체계를 갖춰오신 귀한 경험담이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 지난 세월 동안, 더 이상 스테이는 운영하지 않고 예약제 책방으로 하루 세 타임, 세 팀만을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1인 1책 구매의 입장료를 내고 책방 전체를 대관하는 한 타임을 이용하기 위해,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