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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북강녕 Oct 24. 2021

내가 사랑한 북스테이 #2

#2. 영추문 밖 예술가의 쉼터, 통의동 보안여관


2006년 8월에 태어난 아이가 2020년 5월, 탄생 5,000일을 맞게 되었다. 그동안 살아온 14년을 기억하며,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구도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경복궁 옆 서촌에 문을 열고 나그네들의 쉼터 역할을 한 곳이다. 서정주, 김동리 등 시인들이 모여 문학동인지를 만들고 현대문학을 태동시킨 옛 여관은, 이제 아트 스페이스, 티 카페, 책방, 그리고 스테이로 변모한 문화 공간으로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주변의 신식 건물과 눈에 띄게 대비되는 붉은 벽돌집에는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진.짜. 옛날식 간판이 아직 붙어 있다. 여고 시절의 절반을 자하문 안에서 보낸 나로서는, 짧고 강렬했던 질풍노도의 추억이 골목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스테이는 작고 독특하다. 건물 3층에 방 3개, 4층에 방 1개를 여관으로 내주고 있는데, 사실상 한 가구인 셈이다. 투숙객끼리는 현관과 거실을 공유할 뿐 아니라 옥상의 공용 주방과 테라스도 같이 쓴다. 자그마한 가정집, 아니 하숙집 위아래층에, 어제오늘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이 머물며 속닥대는 느낌이랄까. 숙박 절차를 밟는 프런트가 따로 없고, 예약 당일에 내 핸드폰 뒷번호로 설정된 도어록 번호를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전반적인 객실 이용 안내도 문자로 받는다. 도미토리는 아니지만 공용 공간이 많은 게스트하우스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는 느낌을 주는 독특한 입실 절차다. 낮은 침상에 흰 매트리스가 깔린 깨끗한 객실에는 책이 없다. 자그마한 거실에도 고풍스러운 협탁과 꽃병, 그림이 있을 뿐이다. 머무는 공간인 3,4층을 지나 읽는 공간인 2층 책방에 내려오면 ‘다양한 책’ 대신 ‘특별한 책’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을 오르내려야 비로소 북스테이다. 예술가의 책, 읽고 쓰기에 대한 책, 중앙아시아 어느 즈음의 책들 사이에서, 어떤 책을 원하는지 모르고 들어갔더라도, 다른 곳에서 접하기 어려운 색다른 책을 뭐든 골라 들고 나올 수 있다. 

공동 주방 창문으로 보이는 구 도심


서촌에는 한옥스테이를 중심으로 이색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들이 곳곳에 있지만, 보안여관이 지닌 압도적 개성은 따로 있다. 이곳을 다녀간 커뮤니케이터라면 열이면 열 모두 창밖의 아름다운 뷰를 SNS에 올린다. 경복궁 영추문 길 건너에 자리하고 있는 최상의 위치 덕에, 2층 책방과 3,4창 객실마다 ㄱ자 또는 ㄷ자로 양면이나 삼면을 크게 차지한 사각 창문들에서는 고궁과 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한강 뷰나 오션 뷰, 야경 가득 시티 뷰의 숙소에서도 묵어 보았지만, 창문 너머 ‘궁’을 품 안에 끌어안는 낮과 밤은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이 특별하였다. 초록초록한 5월의 계절,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창문 밖 높은 나무는, 시각적 호사를 촉각으로 치환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낮에는 푸르렀고, 밤에는 빛이 났다.


삼청동, 내자동, 인사동을 걷고 돌아온 숙소에서는 밤늦게까지 다도 수업을 하는 옆방 소그룹 팀을 만났다. 씻어온 체리를 나눠 먹으며, 근사한 밤이 깊었다. 창밖 迎秋門은 가을뿐 아니라 숙소로 돌아온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분실되었던 엄마의 영혼처럼, 이곳 통의동 보안여관에 오래 봉인된 문학인들의 넋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복합문화공간다운 멋진 조형물 & 경복궁 영추문을 바라보며 읽는 관내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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