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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북강녕 Oct 24. 2021

내가 사랑한 북스테이 #3

#3. 속초를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완벽한 날들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위치한 여타 숙소들과 비슷하게, 고만고만한 작은 게스트하우스다. 하지만 1층에 독립책방을 갖추었다는 점이 이곳을 북스테이로 차별화한다. 책방 위층에 숙소가 있는 셈일까, 숙소 아래층에 책방이 있는 셈일까. 인근에는 전통적인 '숙박' 목적으로 운영되는 여관, 민박들도 있고, 카페, 전시공간을 동반한 현대식 게하들도 있지만, 그 가운데 ‘책과 함께’라는 독보적 매력을 뽐낸다. 서점의 규모는 크지 않고 보유 서적도 제한적이다. 월별 큐레이션을 통한 회원제 정기구독이나, 일부 작은 출판사들과 협업한 이벤트 및 책모임을 운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느껴진다. 속 깊은 운영자의 알짜 큐레이션을 확인하고, 신뢰와 기대 속에 기다리는 정기 구독 서비스는 마치, 동대문과 고속터미널을 가지 않더라도, 값비싼 백화점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 동네 상가 1층 세련된 주인이 골라오는 스타일리시한 몇 점의 의상만으로도 새 계절을 날 수 있는 기분과 흡사하다. 

편지봉투만으로도 예쁜 배치
완벽하게 따스한 소녀상
출판사 협업 코너


서울에서 NGO 관련 일을 하던 젊은 부부가 고향인 속초로 돌아와 부지를 고르고, 건물을 철거하고, 설계도에 따라 새집을 올린 과정을 책방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초짜들의 공사일기’라는 제목으로 1단계부터 13단계까지 건축을 진행한 경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인테리어 화려한 애프터 사진 중심이 아니라, 배관을 깔고 시멘트를 덮고 단열재를 붙이는 살아 있는 공사 현장의 모습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가며 부수고 깨고 자르고 붙이고’ 했다는 애정 가득한 강행군이 느껴진다. 책방을 여는 것이 얼마나 마음 단디 먹고 시작해야 할 일인지 글과 사진으로 짐작케 한다. 시간과 노력이 듬뿍 들어간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숙박료는 서울, 경기권 대비 상당히 저렴하다. 가장 비싼 2인실은 1박에 7만 원, 공동 침실 내 침대 하나를 쓸 때는 3만 원. 2인실에만 룸 내부에 욕실이 딸려 있고 1인실과 도미토리는 공동 주방과 공동 욕실을 나누어 쓰는데, 여성 전용이라 불편함은 없다. 코로나로 인해 스테이를 잠시 쉬고 있고, 독서 관련 강연이나 낭독회, 토론회도 조심스럽게 열리는 것 같다. 


이층 침대와 객실 내 욕실
토스트와 시리얼을 먹을 수 있는 공동 주방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 루프탑에서의 독서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코로나 초기, 햇살이 따스하던 봄날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2인실을 잡은 아이와 나 외에, 공동 침실에 묵는 아가씨 한 명만이 투숙객이었다. 메리 올리버가 쓴 산문집의 이름 ‘완벽한 날들’처럼, 푸른 바다와 초록 산을 가까이 둔 속초 여행의 북스테이는 일상의 순간을 완벽한 느낌으로 치환해 주는 효과를 지녔다. 대포항과 해수욕장을 거닐고, 설악산과 울산바위를 오르던 속초 여행이었는데, 완벽한 날들에 짐을 풀고는 걸어서 영랑호로 향했다. 아이와 2인 자전거를 빌려, 수십 년 전 지어졌다 이제 헐리며 신식 주거지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독채 별장 사이를 달렸다. 속초 동명동에는 도시에서 돌아온 젊은 ‘리터니’들이 소호 형태로 운영하는 힙한 가게들이 가득했다. 생면을 쫄깃하게 데쳐 내는 파스타 맛집, 낯 모르는 여행자들이 다채로운 이야기로 편안한 밤을 나누는 게스트하우스, 아기자기하게 디자인된 플라워샵과 카페들. 속초의 터줏대감,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도 방문했다. 부모 세대의 책방을 다음 세대가 물려받아 신선한 아이디어와 모던한 감성을 더한 것을 본다. 도서 구매자에게는 아름다운 글귀가 적힌 책갈피를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 여성 서사에 주목하는 완벽한 날들에서는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와 박서련 작가의 『마르타의 일』을 읽고, 속초 시내로 와서는 구리하라 유이치로가 묶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을 산다. 여성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날들은 얼마나 완벽할까 싶다. 

메리 올리버의 글귀가 새겨진 창문
여성 작가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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