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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북강녕 Oct 24. 2021

내가 사랑한 북스테이 #5

#5. 고향집을 개조한 젊은이의 창공, 이천 오월의 푸른 하늘


이천의 독립책방 ‘오월의 푸른 하늘’은 환경과 건축을 배운 20대의 청년 책방지기님이 유학에서 돌아와 본가인 한옥을 대수선한 곳이다. 널찍한 마당을 안은 건물 세 채와 리모델링된 외양간이 ㄷ자 모양으로 자리하였다. 한 채는 책방, 한 채는 독립책방, 한 채는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살림집이었고, 외양간을 개조한 곳이 우리 가족이 묵게 될 아늑한 숙소였다. ‘五月蒼空’이라는 멋진 낙관과, 천주교 세례명을 따 북스테이 이름을 지은 ‘레오의 다락방’에도 마음이 끌렸다. 

매력적인 입구


강남, 판교, 곤지암, 광주, 용인을 거쳐 이천에 접어들자 주변이 온통 논이다. 맛 좋은 이천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 지역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대문이 열려 제대로 한옥에 입장하는 기분으로 마당 한쪽 장독대 옆에 차를 세우는데, 누가 봐도 꼬맹이인 자그마한 고양이가 야옹 대며 다가온다. ‘버번’ ‘스카치’ ‘마티니’라는 이름의 세 마리 새끼 고양이 중 버번이라는 아이라고 소개받는다.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아침 11시까지, 두 채의 책방과 한 채의 숙소, 앞마당과 뒷마당은 우리에게만 온전히 허용된 공간이지만, 버번은 고양이답지 않은 친근함을 보이며 가는 곳마다 따라온다. 


초가을에도 여전히 상호처럼 푸른 하늘을 즐기며, 마당 곳곳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방아깨비와 거미줄을 관찰하기도 했다. 책방 전체를 꼼꼼히 둘러보며 우리 가족이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될지 하나하나 세어 보았다. 학창 시절에 읽은 전집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140여 권 정도로 셈을 마쳤다. 북스테이 경험이 많아지면서 점점, 어둠이 내리면 객실로 돌아와 책을 읽는 대신, 밤새도록 책방을 드나들며 책 속에서 잠자고 지새는 공간을 선호하게 되었다. 9시를 지나면서 주변이 훅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도심의 빛공해에서 확실히  떠나왔음을 실감한다. 책방지기님께 부탁을 드려 살림집을 포함한 모든 건물의 등을 10분가량 완전히 소등하였다. 암 적응 훈련이다. 스테이로 개조한 외양간 건물 앞, 나무 데크에 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보았다. 밝게 빛나는 직녀성과 견우성, 그 사이로 뿌옇게 지나가는 은하수를 보고, 여름철 별자리인 백조자리가 은하수를 따라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고, 지평선 근처에 또렷한 목성과 토성을 보고, 마지막으로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달의 분화구까지 관측하였다. 서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데크에서 별을 보다
포근하고 아늑한 레오의 다락방


책방을 찾는 이들과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지역 작가와 더불어 책을 출간하는 건강하고 젊은 책방에서, 코로나를 잊은 맑은 초가을 밤이 깊어갔다. 다음날 떠날 때 책방지기님께 주변의 볼거리 먹거리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젊은 갬성 가득한 이천의 곳곳을 소개해 주셨다. 오래된 도자 체험 공간이나 쌀밥집, 온천 정도를 떠올리던 우리에게, 이진상회, 시몬스테라스, 예스파크를 알려 주신 덕분에 책방을 떠나서도 알찬 여행이 계속되었던 기억이다. 이곳에 묵었던 것은 2020년 9월인데, 바로 다음 달인 10월부터 인근 시골집을 인수하여 책방을 확장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전기공사, 목공사쯤은 스스로 척척, 물길을 잡고 흙을 깔고 돌을 채우는 이야기가 블로그에 가득했다. 고등학교 때 해비타트 번개 건축을 경험하고, 일본 유학에서 정리의 진수를 배웠다는 책방지기님의 노하우가 빛나는 모습이었다. 블로그에는 일본 유학 시절 방문했던 그림책 미술관과 도쿄 책방들에 대한 글과 그림들도 ‘책방여행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었다. 내가 경험한 책공간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온라인 공간을 잘 짓는 사람이 오프라인 공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시골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낭만적인 모험이 아니라, 부지런한 삶을 담보로 한 생활임을, 또한 알게 했다. 이곳에서는 그래픽 노블 『사브리나』를 읽었다. 소셜 미디어로 거짓 전파되는 사실들과 이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기 어려웠다. 예스러운 시골책방에서 접한 책이라 더욱 생경했달까.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가 돋보이는 그래픽 노블, 사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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