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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북강녕 Oct 24. 2021

내가 사랑한 북스테이 #6

#6. 딱 있을 것이 있는, 세종 단비책방


SNS에 소개되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두 밤만 북스테이를 운영하다 보니 이곳에 머물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2020년 9월 초에 "이번 주 예약 가능할까요?"라고 문자를 보냈다가 "내년 3월 말에 가능합니다 ^^"라는 회신을 받았다. 민망함을 뒤로한 채 가장 빠른 예약 가능일에 무조건 예약을 했다. 휴가를 낼 수 있을지, 어떤 일정이 생길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지금 당장 예약을 하지 않으면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질 듯한 분명한 예감. 하루 한 팀, 책방을 통째로 빌리는 단독 숙박과, 간단한 조식 제공 포함 3인 기준 9만 5천 원이라는 착한 가격과, 아름다운 벽돌색 외관의 독채 건물에 끌리는 마음을 달래며 반년을 기다린다. 

따뜻한 벽돌색 외관 귀여운 창문 인상적인 표지


각양각색의 공간을 체험하며 점점 원하고 바라는 북스테이의 모양이 잡힌다. 비싼 지대와 번잡한 주변을 감당하기보다, 넓은 앞마당에 반려동물과 풀꽃이 함께하는, 산 아래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에 터전을 마련한 책방지기의 집에서, 하루 반나절 문이 열리고 지나가는 손님이 아닌 찾아오는 독자를 기다리는 곳. 투숙객의 편의성을 중시한 펜션이 아니고, 책과 함께 밤을 보낼 굳센 의지를 지닌 한 팀에게 공간을 내주는 곳. 단비책방이 바로 그런 곳일 거라 기대하며 설렌다. 


6개월 후 방문한 책방은 세종시 전의면 깊숙이 자리하였지만, 모던한 단독주택 여러 채와 함께 작은 마을을 이루어 아늑하면서도 위험하지 않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조기 은퇴를 실현하고, 막연히 꿈꾸는 전원생활을 성공적으로 일군 책방지기 부부, 단비님과 선재님이 궁금하였다. 건축업자에게 맡겨 지은 농가주택에서 주말을 이용한 예비전원생활을 거치고, 공동육아를 하는 커뮤니티를 만나 함께 땅을 사고 집을 지은 사연이 있었다. 사서 생활을 하던 단비님은 세심한 큐레이션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동식물을 좋아하는 선재님은 책방 지킴이 대형견 체리와 정원을 가꾸고 주변을 관리한다. ㄱ자 건물로 이어진 살림집과 책방의 절묘한 구조, 천고가 높은 단층 건물이지만 작은 계단을 이어 다락을 올려 만든 미니 복층에 중고서적과 스테이 공간을 넣고, 책 읽는 자리와 머무는 자리 곳곳에 꼭 맞는 창을 낸 것도 선재님의 설계라 했다. 수제청 에이드를 내고, SNS용 투명 명함을 비롯한 매력만점 굿즈를 제작하고, 지역 초등학교와 연계한 읽기 및 쓰기 수업을 하는 것은 단비님의 센스와 친화다. 3월의 쌀쌀한 밤, 따끈한 전기장판을 묻은 체크무늬 침구를 깔고 밤새 마실 꽃차를 티팟에 올려 주신 것도 포함해서다. 


메인 서가
정성스럽고 풍성한 조식


위생 관리, 재고 관리, 이웃과의 조화 손님과의 갈등 해결, 노동의 강도와 빈도 조절, 수익 구조의 분석과 개선 등, 운영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는 곳으로 믿어졌다. 책도, 동물도, 식물도, 먹거리도, 잠자리도 딱 있을 것이 딱 있을 곳에 있는 책방이라, 어려움은 발 붙일 곳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곳에서는 조남주 작가의 『귤의 맛』,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중고로 구매했다. 청소년 문학도, 여성 서사도, 추리소설도 어울리는 곳이었다. “유행을 따라가지 마세요, 취향을 파세요.”라 이야기한 단비님의 인터뷰가 검색에 잡혔다. 백제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위해 지었다는 천년 고찰 비암사가 바로 인근에 있다. 역사의 유적까지 가까이 있으니 있을 것은 다 있는 곳, 정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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