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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북강녕 Oct 24. 2021

내가 사랑한 북스테이 #8

#8. 색다른 머묾, 남이섬 정관루 & 북촌 정독도서관


강렬한 레드 월에 걸린 커다란 패브릭 고양이

호텔 정관루는 객실 44개의 본관과 서쪽 강변에 늘어선 별관 1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관의 객실은 화가, 공예가, 작가 등 예술가들이 직접 꾸며 어느 하나 같은 방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원하는 디자인의 객실을 예약할 수 있다. 2015년 이곳을 방문할 때는 정지예 작가의 방을 선택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어린이책을 다수 펴낸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로, 빨간 벽면에 아기자기한 동물 그림과 패브릭 고양이 인형이 장식되어 있어 초등학생 아이는 마음에 쏙 들어하였다. 




정관루는 북스테이라 명명하기 어렵지만, 객실에 티브이가 없고 로비와 방에 책들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책과 함께 하는 숙소의 호젓한 매력을 알려준 곳이다. 봄이 아직 자리잡지 않은 듯한 4월 초, 강바람을 맞으며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막배를 타니 사위는 이미 완전히 캄캄하였다. 호텔에서 픽업을 나온 하얀 차를 타고 부스럭거리는 숲 속을 달리니 강 냄새가 나는 건물에 도착한다. 국립호텔이라 하지만 규모가 단출하고 섬 맨 끝에 위치하고 있어 외떨어진 기분이다. 나이 든 시인이 여생을 보낼 곳 같기도 하고, 추리소설 배경이 될 것도 같고, 시골 마을 회관 같기도 하다. 책과 함께 잠들었다 어느새 눈이 떠진 아침에는, 뿌연 강안개 사이에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섬에서 열리는 버스킹 공연과 이벤트, 체험에도 참가해 본다. 이곳에서는 백승훈 작가의 『들꽃 편지』를 읽었다. 머묾 자체가 감성인 곳, 시집에 손이 가는 곳이었달까.




『클로디아의 비밀』을 읽고 박물관으로 가출하겠다는 꿈을 키운 지 30여 년, 박물관 대신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보낼 기회를 갖게 되었다. 2019년 봄, 북촌 정독도서관에서 중학생 가족을 대상으로 부자 캠프, 모녀 캠프를 격년으로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1박 2일 독서캠프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서울시 공공예약 서비스가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마감되는 것을 보며 독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에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쌍둥이 한 가족을 포함해 여덟 가족, 총 열일곱 명의 모녀들이 토요일 저녁 7시에 도서관 열람실에 모였다. 준비된 프로그램으로 자정까지 활동하고, 청소년실에 설치한 2인 텐트에 에어매트와 침낭을 깔고 숙박한 뒤, 일요일 아침 7시 삼청공원 구보와 마무리까지, 짧지만 알찬 1박 2일의 독서캠프 일정이었다. 아이스브레이킹 타임에서는 엄마들을 위한 신조어 퀴즈, 아이들을 위한 옛 속담 맞추기, 모녀 협업 몸으로 말해요 스피트 퀴즈 등의 다양한 코너가 준비되었고, 이어진 비경쟁 독서토론과, 엄마의 일대기 인터뷰를 통한 소책자 만들기, 모녀가 서로 교환하는 상장 수여식이 진행되며 밤이 깊었다. 2019년 기준 ‘요즘 아이들의 신조어’는 JMT, 혼코노, 별다줄 등이었는데 40대가 중심인 어머니들이 많이 맞추지 못했다. 목구멍이 포도청,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속담도 아이들에게는 난이도가 높았다. 

텐트마다 책 제목


자기소개에서 ‘엄마에게 속아 끌려왔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문학전집이 잔뜩 꽂힌 청소년실에는 각기 다른 책 제목이 붙은 아홉 개의 텐트가 준비되었다. 우리는 ‘갈매기의 꿈’ 이름이 붙은 텐트에 들어가 옆 텐트를 흘깃대며 『열두 발자국』을 읽었다. 몇 장 읽지 못한 채, 껴안고 킬킬대다 잠이 들었지만 말이다. 북촌의 아침은 쾌청하고 아름다웠다. 책방에 묵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도서관에 묵었던 유일한 기억이 더 귀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역도서관, 작은도서관에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더 많이 운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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