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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북강녕 Oct 24. 2021

내가 사랑한 북스테이 #7

#7. 모든 것의 시작, 괴산 숲속작은책방


북스테이를 다니며 가장 많이 들리고 가장 많이 검색에 잡혔던 단어는 '숲속작은책방'이다. 뜻 맞는 대학 동창들이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고 57가구가 한데 모인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에 있다. 태양열과 지열로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저탄소 녹색 마을 안에 2014년에 문을 연 이층 주택이 바로 우리나라 가정식 서점이자 북스테이 1호라고 했다. 잡지 기자,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일하던 백창화 작가님이 김병록 작가님과 함께 소장한 1만 권의 책으로 작은 사립도서관을 운영했던 것이 먼저고, 35일간의 유럽 여행 중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와 영국의 책 마을을 돌아보며 책방 2층 숙소에 여행객이 머무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괴산 숲 속에 책공간을 마련한 것이 지금이다. 


사방에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1층 거실 공간, 동네 책 모임이 열리는 공동 작업 공간, 2층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과 우리가 묵을 작은 방, 비밀의 문으로 밀어 열리는 그림책방까지, 곳곳이 신비롭고 아기자기한 책방이었다.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에 이어 출간한 책방지기님의 두 번째 책, 『숲속책방 천일야화』의 제목처럼, 밤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신비스러운 숲 속이다. 몸과 마음이 여유로운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건강하게 하는 곳, ‘1호’라는 이름처럼 원숙한 경험과 부드러운 내공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책, 책, 책


이곳의 진짜 주인은 고양이 두 마리, 나비와 공주다. 탐스러운 갈색 털이 감싼 푸짐한 몸으로, 책방 의자의 가죽을 자연스레 뜯으며 잠을 청하는 나비와, 도도함을 뽐내면서도 책방 손님에게 꼬리를 세우며 몸을 비비는 공주는, 숲속작은책방의 역사를 함께 하는 사연 제조기들이다. 책방을 찾았던 손님들이 직접 스케치하고 제작한 두 냥이의 그림이나 굿즈가 숲 속의 독특한 감성을 더해준다. 

고양이네 집입니다
나비와 공주


2020년 10월 이곳을 처음 찾았을 무렵은 이천의 푸른 하늘에서 바라본 여름밤 백조자리가 기울고 테세우스가 페가수스를 타고 안드로메다를 구하러 가는 가을밤 별자리가 보일 때였다. 2021년 6월 다시 찾은 책방에서는 나의 최애 작가, 장강명 님의 책밥상이 열렸다. 반짝이는 별, 반짝이는 셀럽과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후원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으로, 2021년 '숲속작은책방'에서는 총 일곱 명의 작가와 함께하는 책밥상 행사를 기획하였다. 동네책방이 유지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역이 함께 해야 한다. 6월에 초청한 장강명 작가님은 『산 자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등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과 더불어 따스한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SF소설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각종 문학상 수상과 무료 이북 기획까지 종횡무진 출판계를 누비는 나의 최애 작가님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한 음식, 작가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 등을 참여 독자들이 자유롭게 준비해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작은 모임이었는데, 간절한 사연을 적어 찐 팬을 인증한 덕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뽑히게 되었다. 

장강명 작가의 책밥상


미니 약식, 괴산 햇감자, 키토 김밥, 양배추 전과 동네빵집 초코빵, 그리고 맥주들이 잔뜩 차려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 전업작가가 되고, 작품이 인정받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생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칼럼니스트나 진행자처럼 시간당 임금이 높은 일이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껏 쓸 것이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역시, 소설을 쓰는 선택으로 더 기울었다는 작가님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한국 사회의 변화와 문제에 따른 현실적 결과물을 보며 그 기원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는 요소를 광범위하게 포함한 종합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포부를 들으니 곧 출간될 『재수사』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한국의 서평 문화 부재, 각 독서모임에서 나누는 귀중한 후기와 감정을 기록하고 유지할 방법, 웹소설과 다양한 형식의 책을 아우르는 온라인 독서토론 사이트에 대한 구상까지, 숲 속 작은 모임에서만 가능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대기업 차장에서 41세에 쌍둥이 엄마로 거듭나며 육아의 고충을 브런치 북으로 펴낸 아이 엄마, 남자 친구와 함께 찾은 사회초년생 아가씨, 언론계에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내고 지금은 농민신문기자, 대학강사, 도예가로 각자의 자리에서 우정을 쌓고 있는 중년의 친구들, 그리고 인근의 농민과 학교 선생님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생계를 위한 자본을 좇는 점에 당당하고 투명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그리고 당연히, 자본과 무관한, 또는 그 자본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에 거리낌이 없음을 느꼈다. 등단 10년이 넘은 데다, 한 해 수입이 우리나라 소설가 중 탑 티어에 위치하는  인기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진지하게 독자와의 만남에 임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뜻깊은 모임을 지원하는 지역사회와, 그 공간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동네책방의 역할은 숲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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