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화, 수, 목, 금, 토, 일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수키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던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지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할 수 있는 대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못할 줄 알았던 것들을 하게 되는 재미에 빠졌다. 그렇게 바빠지고 바빠졌다. 나는 점점 기계적으로 움직였고, 내 앞에 있는 할 일들을 두고 버거워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힘들면 힘들수록 머릿속 생각을 잠그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가 자빠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소중한 시간을 달력에서 확인하고 기대에 찼던 날, ‘아무것도 안 할 것인가’, ‘뭐라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평소 눈여겨보던 한 채널에 공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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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마음에, 고민은 접어 두고 일단 신청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진짜 마음은 쉬고 싶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있고, 읽어야 할 책도 있어서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한껏 게으르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모처럼 쉴 수 있는 날이기도 하고, 아이도 오후 4시나 돼야 집으로 오기에, 이때다 싶었다. 교육을 듣고, 근처에 있는 동네 책방까지 들르기 딱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였다. 교육은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올려놓은 정보가 아닌, 전문 세무사가 그동안 출판업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연과 상담을 하면서 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역시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안고 바로 나서기가 아쉬워 강연장 바깥 공간에 큐레이션 되어 있던 다양한 책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왔다. 점심은 근처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가려고 했던 책방의 오픈 시간에 맞춰서 다시 몸을 움직였다. 영하로 떨어진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벼운 마음 덕분인지 기분은 상쾌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그날 병원 진료 예약이 되어 있던 그는 연차를 냈는데 나에게 몇 시까지 집에 올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가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천천히 볼 일을 보고 들어갈 거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가려던 책방이 닫혀 있을까 봐 SNS계정과 네이버에서 휴무는 아닌지 재차 확인했다. 다행히 책방은 열려 있었다. 이제 막 오픈해서 사장님은 책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나는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어 놓은 후 본격적으로 그곳에 있는 그림책을 둘러보았다. 보고 싶었던 새로 나온 그림책이 많았다. 동네 책방에 가면 예의상 책을 많이 펼쳐 보지 않고 표지만 보는 편인데, 궁금했던 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모두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조심스레 책을 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책과 동화책을 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뻔했던 날,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한가득 채웠다. 마음을 채웠으니, 체력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정리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헬스장의 러닝 머신에 몸을 올렸다. 추위에 떤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목표한 거리를 뛰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잘 마무리는 되는 듯했는데,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는데, ‘이런 하루를 보낸 날은 맥주로 마무리를 해야지’라는 마음에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마지막 남은 맥주 한 캔을 따서 들이켰다. 차가운 맥주가 내 목구멍을 통과하는 순간, 내가 예상했던 짜릿함이 그 한도를 초과해 뾰족한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조금 누워있으면 괜찮겠지 싶어서 밥을 먹고 그대로 누웠다. 몸이 너무 추워서 두꺼운 이불을 칭칭 동여맸는데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아, 망했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다음날은 자원봉사자의 날이 있고, 주말에는 친정에 가야 하고, 다음 주에도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있었다. 내 일정에 아픈 건 없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타이레놀 2알을 입 안에 털어 넣은 후,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신발장에 서서 그날의 일정을 하나하나 취소했다. 그렇게 하루를 쉬었다. 지난 주말, 청소를 하며 나도 모르게 “아,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을 들은 남편은 “그럼, 아무것도 안 하면 되지, 뭐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면서 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해, 힘들어도 할 건 해야지.”라고 대꾸했다. 내 일이니까. 그러나 오만이었다. 역시 사람은 쉴 땐 쉬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푹 쉬었다. '잘 쉬었으니 다시 할 일을 해야지'라고 마음을 다잡고 맞이한 월요일. 평소 디자인 작업을 의뢰하던 출판사에서 문자가 왔다.


- 박스 패키지 바코드 파일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파일 수령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 바코드만 넣으면 되나요?

- 이전에 보내 드린 메일의 디자인 수정까지 부탁드립니다.


아뿔싸! 드문드문 오는 작업이기에 매번 메일 확인을 하지 않은 탓에 작업 요청 메일을 놓쳐 버렸다. 수요일 오전까지 작업해서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화요일 모임을 취소했다. 하고자 마음먹으면 모임도 나갈 수 있고, 작업도 할 수 있지만 제때 자면서 일하고 싶었다.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그 잠은 한번 잠들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 나는 잘 자고, 잘 일어나고, 내 할 일들을 잘하고 싶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을 잘 보내고 싶다. 슬슬 잠가 두었던 머릿속 생각을 조금씩 풀어야겠다.





+ 이야기 나눈 그림책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2007)

이민희 지음, 느림보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