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계단에 오르기

<척의 일생>(2025)

by 수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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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인생의 성적표라는 말이 있다. 의사한테 말을 듣고 있으면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병원에 갈 일이 늘어나니 이를 받아드는 마음도 점점 무거워진다. 병이라도 걸리면 왜 이런 점수가 나왔는지를 의아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느리게 걸었다고 해서 죽음에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뭔가 지난날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삶을 채점한다는 뜻에서 그런 표현을 쓰지만 결국 정답은 없다. 그런 점으로 보면 <척의 일생>은 꽤 괜찮은 영화다. 영화의 1막에서 척은 미래의 자신이 맞이할 죽음의 순간을 본다. 중년의 한 남성이 비쩍 마른 채로 병상에 누워있지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워 죽음의 때를 알 수 없다. 이후 척의 삶은 매 순간이 모든 기다림으로 바뀐다. 척은 처음에 자신이 열었던 다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문을 열며 놀랐던 할아버지의 반응에서 그 사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아낸다. 척은 그동안 할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했던 게 바로 그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다. 할아버지는 다락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보았고, 그게 가까운 미래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안전하고 편안한 ‘착륙’에 헌신했던 것이다.


척은 썩 봐줄 만한 춤실력을 갖춘, 괜찮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엔 어릴 적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자신이 가야 할 때를 아는 이는 세상 누구보다 더 여유롭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를 잘 알기에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이 살아있음을 말하는 징표가 된다. 어쩌면 죽음을 앞두었다는 점이 두렵거나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척은 가족의 죽음 앞에 슬퍼하기보다 그들이 어떻게 편한 모습일 수 있었는지에 주목한다. 처음으로 척은 할머니의 죽음을 생각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척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편하게 가셨다”는 말을 들으며 어떻게 죽음이 편안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현장에 나가 목격자인 점원에 질문한다. 점원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선반에 깔려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압사가 편안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질병에 걸려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고통받기보다 일발에 죽는 게 더 낫다는 뜻일까? 이 고민을 해결해줄 다음 사람으로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그 또한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 척에게는 죽음의 고민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다.


척은 춤을 좋아하지만 정작 춤을 직업으로 택하지는 못했다. 할아버지가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인 회계사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하는 척에게 회계는 그저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지만 반대로 모든 걸 계산 아래 둘 수 있었다. 춤을 추는 일이 즐겁지만 예측불허하다면, 반대로 회계는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다. 아마 척이 춤 대신 회계를 택한 일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테다. 지난날,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척에게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쯤 그 시기가 올까. 수를 다루듯 기회를 찾고, 가능한 수를 계산해보자. 그러던 중 척은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의외의 사건을 맞게 된다. 길거리에 있는 드럼을 보고서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바닥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됐던 경쾌한 리듬이 스틱을 맞은 가장자리 쇳소리에서 살아난다. 척은 죽음을 기다리던 처지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지난날로 돌아간다. 척의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는 온갖 장르의 댄스 영화를 함께 보며 그에게 춤을 알려주고는 했다. 이 경험에서 척은 영화가 정해둔 결말에서 벗어나는 게 바로 춤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춤을 언제 끝낼 것인지는 전적으로 그루브에 따른다. 이 점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리를 뜰 수 있는 ‘춤’은 척에게 죽음을 극복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 어린 날, 낡은 다락에서 문득 결말을 마주하게 된 그에게 삶은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미 결말을 아는 채로 영화를 보는 일은 그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끼워 맞추기만 할 뿐인 것에 불과하다. 어떤 일이든 간에 결말에 복속하기 때문에 이는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사건에 한계를 둔다. 죽음 앞에서는 인식의 ‘바깥’을 엿볼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척에게 이 경험이 삶의 중요한 사건이었던 건 할아버지가 남긴 어느 말 덕분이기도 했다. 집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다락은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살아온 길을 모두 살펴볼 수 있겠지만, 반대로 더 올라갈 곳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다락은 대대로 집안의 웃어른이 관리해왔는데 실제로 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모두가 돌아가신 후에 집안의 가장이 된 그는 이제 ‘합법적으로’ 다락을 열 수 있게 됐다. 어른이 된 셈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로 그 이야기다. 어른의 계단에 오르는 건 삶의 결말을 체감하는 순간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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