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흐리고 비오더니 다행히 아침에 날씨가 개었다. 맑개 갠 아침의 하늘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오늘은 약 1100고도 정도의 산을 넘는 코스니 힘을 함 내볼까?
걷기 시작하고 한두시간 뒤 만나는 바에서는 커피 한 잔과 초콜렛빵이나 크로와상, 머핀같은 것을 사먹는다. 커피는 스페인식 진한 라떼인 카페 콘레체를 주로 시킨다. 콘레체는 전에 함께했던 카페에서 자주 만들었었는데 여기서는 매일 사마시고 있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우리가 만들던 방식보다 스페인의 콘레체가 조금 더 양이 적고 진한 것 같다.
빵은 유럽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맛있지만 론세스바예스를 출발해서 첫번째로 만났던 그 바만큼 맛있는 초코렛 파이는 아직 못 만났다.
오늘의 풍경은 넓고 황량한 구릉지와 밀밭, 그리고 후반후에 이어지는 산이다. 전 마을이 800고도정도였으니 1100고지 산이라고 해도 300미터 정도를 굉장히 완만하게 올라갔다가 살짝 내려오는 코스이다. 완만한 오르막은 평지 다음으로 괜찮다. 힘은 조금 들지만 발바닥에 무리가 별로 안가고 안전하다. 물론 나는 지금 물집이 잡혀있기 때문에 조금 아프지만. (물집 충격에도 오르막이 내리막보다 낫다)
구릉지를 걷다가 얕은 개울의 다리에서 저쪽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을 지나왔다. 길을 걷고 있으면 중간에 짐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겨있거나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 순례자들을 종종 마주친다.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여기 왔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걸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이지만 왠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기분이다.
비야프랑카 몬떼스 데 오카라는 마을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산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산같이 계단이나 급경사는 거의 없고 정말 꾸준히 천천히 올라가는 모양새인데, 그래도 꽤 올라오면 침엽수가 많아지면서 상쾌한 솔향이 제법 난다.
산길을 쭉 오르다 이제 오르막길이 끝났을 즈음, (거의 꼭대기인듯 싶다) 흥 넘치는 커플이 운영하는 순례자 쉼터가 나타났다. 아저씨가 차에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틀어놓고 춤도 좀 추면서 흥겹게 달걀이며 맥주며 과일 음료수 등등을 팔고 계셨다. 나무 밑둥으로 의자도 만들고 장소도 구성지게 꾸며놓았다. 로그로뇨부터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싱가폴 팀이며 한국 성당 단체분들도 쉬고 계셨다.
그래 여기인가. 산꼭대기에서 꼭 하고싶은 로망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잠시 쉬어갈 겸 배낭을 내려놓고 우선 흥부부에게 달걀을 하나 사왔다. 그리고 애증의 거대 앵무새 보온병에 준비해온 뜨거운 물을 역시 애증의 티타늄컵에 담고, 소듕한 건조 신송 우거지국 하나를 풀었다.
이국의 순례길 중간에 즐기는 따끈한 꼬레안 된장국 한잔의 로망이랄까? 뻑뻑한 계란 한입, 된장국 훌훌 한입.
음 역시 오늘도 건조국은 개꿀맛. 그래 이맛이야. 한식이 크게 생각이 안나가도 일단 이맛을 한번 다시 보면 그래 이게 바로 조선의 msg지 하면서 미각 유전자가 다시 활성화되고 이참에 미역국이랑 낙지볶음 김치찌개까지 먹고싶지만 여기 없다는 사실에 또 슬퍼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장국 한잔 하고 산을 내려오는길 처음 만난 산후안데오르테가 마을 입구에보이는 피자 파는 롯지 스타일 알베르게에서 약간 즉흥적으로 오늘의 걷는 길을 끝내기로 했다.
1시 반쯤 밖에 안되었으니 조금 더 걸을까 아쉽기도 했으나 어차피 어디서 멈추나 내일 갈 곳은 부르고스로 정해져있고, 물집 부위도 좀 아팠고, 숙소 예약해 놓은 곳도 없는데 마침 조그만 오두막 바겸 알베르게가 넘 귀엽고 자리도 있었다.
냅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은 뒤, 피자집의 야외 테이블에서 샐러드와 피자와 맥주를 먹으며 지나가는 아는 얼굴들에게 나는 오늘 다 걸었어! 하면서 자랑질도 좀 하니 쏠쏠하게 즐겁다. 역시 남들 일할때 노는게 최고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