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세인트 제임스 = 산티아고 더 페레그레노 다음으로 세인트 구글맵의 신봉자가 되었기 때문에, 구글맵 평점이 젤 높고 적절한 가격의 알베르게를 하나 골랐다. 근데 가보니 검색한 숙소 앞길이 공사중이네?
그래서 평점이 두번째로 높고 중심가와도 가까운 다른 알베르게로 향했다.알베르게 아라이고스.
체크인을 하다 보니 중년의 숙소 주인장이 차분하고 참 사람이 좋아 보인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도 찍어주고 조근조근 숙소 이용 안내를 해 주면서 자신도 20여년전 쯤 카미노를 걸으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이 숙소에는 순례자를 위한 여러가지 작은 배려와 컨텐츠(?) 들이 제법 잘 되어있었다. 사설 알베르게지만 매우 카미노스러운 곳이였던 것 같다.
방명록도 있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동전을 넣으면 2명 분의 시간이 들어가는 것도 훈훈하다. 나누어 쓰라는 뜻이겠지? (비용은 3유로정도로 싼 편이다) 공용 공간의 소파 앞에는 좋은 문장이 하나씩 들어 있는 상자가 있어 자신의 랜덤 문장을 하나씩 뽑아가라고도 하고, 소원을 적어서 넣는 상자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문장이 나왔다. 해석은 나중에 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서 마커스한테 문자를 보냈다.
헤이 친구 오늘도 길에서 따라잡는 건 실패했네. 나 지금 멜리데야 너도 혹시 여기에 있니?
응 나 지금 여기 호텔에 있어!
오예 드디어 너 따라잡았다.
나가서 뭐 먹으면서 술한잔 고??
3일간의 대질주 끝에 드디어 마커스를 따라잡았다. 열라 힘들었다구.
일요일 향로미사와 도미닉을 따라 잡으려는 마커스. 그 마커스를 따라 잡으려는 나의 추격전은 이렇게 문어로 유명한 마을 멜리데에서 일단락이 되었다. 보람 있고 뿌듯하구만.
순례자에게는 늦은 시간이지만 현지 분들에게는 이른 저녁 시간인 7시에 만나서 문어 전문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멜리데는 문어로 유명하다는데 우리가 간 식당과 또다른 식당 요렇게 두 군데가 가장 유명한 곳인가 보다. 식당에 들어와서 보이는 커다란 솥이며 길다란 나무 식탁 좌석이 참 정겹다. 화이트와인도 와인잔이 아니라 사발에 주니 뭐랄까 살짝 토속적이다. 스페인 시골에서 느끼는 익숙한 고국의 스멜.
문어는 엄청 맛있었다. 조리법은 며칠 전 이선생님과 함께 먹었던 문어집과 비슷한데 (데친 문어에 올리브오일, 소금, 고춧가루 정도를 뿌리는 단순한 방식이다) 이집이 더 야들야들하고 고소하다. 역시 유명한 마을은 이유가 있구만.
마커스랑은 레온 이후로 한 열흘 여만의 재회다.사케인듯 와인인 듯 술이 술술 들어가며 그 동안 길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뭐랄까 오랜만에 학창시절 친구 만난 기분 비스무리하게 즐겁다. 엊그제 생일이었다고 하니 축하한다며 요 동네에서 마신다는 하드리쿼도 시켜줘서 맛보고, 얼큰하게 꽐라가 되어가며 즐거운 저녁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