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있어도 되고
목적 없는 삶을 원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 몰라 방황하다 김영민 교수의 책을 읽으며 명명할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걸로 치고, 되도록 재미있는 일만 골라하고, 딱히 아쉬워하지 않는 삶. 산책하듯 살고 싶다는 마음의 모양이 비슷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니 고마운 사람이었다. 유머코드도 잘 맞아 그의 글을 읽을 때면 깔깔거릴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부러웠다. 그런 그가 동네의 작은 책방에 온다 해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김영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다수의 칼럼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에세이집으로 유명하다. 직업윤리가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그는 교수라는 본분을 잊게 될까 미디어 노출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많이 읽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했다.
캐주얼한 재킷을 걸치고, 책가방을 맨 중년 남성이 책방에 들어선다. 아, 저분이구나. 너무나 평범해서 서울 지하철에서 마주쳤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게 뻔하다. 하지만 책방에는 여성 독자들로 가득했고, 유일한 중년 남성이었으니 본의 아니게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수수한 외모처럼 말투도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드립을 수시로 치며 두서없이 말하는 것 같지만 메시지는 명확했고, 책방을 여성독자들의 웃음으로 가득 채웠다. 그중 내가 제일 크게 웃은 것 같고. 역시 유머코드가 딱 맞는다. 서울대 교수와 유머코드가 맞다니 괜히 자랑스럽다. 속물스럽게도.
글을 왜 쓰냐니, 재미있어서 쓰다고 한다. 어떻게 쓰냐니, 시간이 나서 쓴다고 하고. 비슷한 또래의 남성들과는 다르게 골프를 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대학 강의와 글쓰기에 할애하고 있으며, 딱히 열심히 한다기보단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그 대답이 참 좋았다. 목적 없는 삶, 산책 같은 삶이다.
요즘 나는 목적이 자꾸 생기려 해서 고민이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들로 나를 채우기에도 바쁠 텐데 쓸데없는 목적들이 자꾸 들어선다. 질의응답 시간에 이걸 물어볼까 말까 하다 너무 부끄러워 결국 묻지 못했다. 만약 물어봤다면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목적을 갖는 삶의 폐해를 가르쳐주었을까? 왜 구태여 불행해지려 하는 거냐고? 그런데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읽은 그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목적을 갖는 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면 괜찮아요.”
목적을 가지면 어떤가. 혹시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난 실패했어!’라고 동굴 속에 처박힐까?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했다면,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아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는 되어있는 편이다. 마흔넷의 내가 겨우 찾은 내 인생의 답지는 그렇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목매달지 않기.
어쩌면 내가 말한 ‘목적’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목적’과는 정의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목적이라고 말했지만 목적이 아닐지도. 거창한 의미가 있지 않은,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의 다른 이름.
글을 잘 써서 책을 내고 싶다. 유명한 작가가 되면 좋겠지만 안 그렇다고 해서 ‘난 실패했어!’라고 동굴에 처박히지 않을 자신은 있다. 그러니 목적을 가져도 괜찮다. 좋아하는 만큼 쓰고, 좋아하는 만큼 잘하려 노력하고, 좋아하는 만큼 세상에 내어놓는 것. 대중의 선택까지는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정신승리의 궁극은 자신이 정신승리를 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잊는 것’이라는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내 정신승리를 잘 잊어보려 한다. 난 그런 거 잘한다. 그러니 목적을 좀 가져도 된다. 오늘은 목적이 있는 길 쪽으로 산책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