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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떡 공주님

어린이 그림책 공방 이야기

by 숟가락

찹쌀떡 같은 아이. 뽀얗고 말랑말랑한 볼이 꼬집어보지 않을 수 없다. 눈을 마주치면 수줍어 핑크빛으로 물들어 더 귀여워진다. 이 예쁜 아이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도서관에서 가을학기 그림책 공방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재료비 입금자 명단에서 이름을 봤는데 같은 아이일 꺼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동명이인일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와서 보니 다시 그 아이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봄학기에도 그 수업을 함께 했던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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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하는 도서관 수업은 수다를 들어주는 일이 수업의 80%를 차지한다.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또 그 이야기를 선생님이 꼭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너희는 말을 하고 싶어서 여기 오는구나 싶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그렇게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는 일은 나에게 즐거우니까, 혹시나 미처 차례를 못 받아 떠들지 못한 아이들에게 떠들 기회를 꼭 챙겨주려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찹쌀떡 공주님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교실 구석에 앉아서 매우 귀찮고 피곤하다는 듯이 엎드리고는 슬쩍슬쩍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까이 가서 말을 시켜도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귀여운 볼 가까이 귀를 데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아이가 내 수업을 재미있어하는 걸까? 이렇게 해서 그림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자 찹쌀떡 공주님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입은 앙 다물었지만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연필을 꽉 쥐고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 아이였고, 상상의 나래가 끝이 없었다.


찹쌀떡 공주님은 나에게 3가지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세 가지 이야기가 모두 충분히 새로웠고, 재미있었지만 정해진 수강 기간이 있으니 적당한 이야기 하나를 고르고 함께 정리해 나갔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공주님의 이야기는 자꾸자꾸 변해갔다. 새롭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주체할 수 없어 계속 쏟아냈다.


다른 아이들은 장면마다 공을 들이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찹쌀떡 공주님은 쉬지 않고 빠른 드로잉일 해댔다. 50장 가까이의 그림을 그려냈지만 그대로 다 실을 수 없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는데에 공을 들여야 했다.


겨우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하긴 했지만 버려진 나머지 이야기가 참 아까웠다. 그래서 수업 마지막날 찹쌀떡 공주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주야, 나머지 이야기들이 참 아깝다. 다 재미있었는데. 넌 참 글을 잘 쓰는 아이야. 그러니 계속해서 이야기를 쓰면 좋겠어. 기회가 되면 다음 책도 꼭 만들어보자. 넌 좋은 작가가 될 것 같아.”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볼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아이의 입가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얼마나 예뻤는지. 그렇게 예쁜 아이가 다시 나를 만나러 오다니, 정말 반가웠다.


두 번째 만남이어서 그런지 지난 수업에서 본 공주님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다른 친구들은 처음 해보는 수업이지만 자기는 이미 해봤으니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이 예쁜 찹쌀떡 공주님과 앞으로 열두 번을 만나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을 생각을 하니 설렌다.


아이들이 가진 가능성은 얼마나 찬란하게 빛이 나고 예쁜지. 찹쌀떡 공주님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다 있겠지. 내가 이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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