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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커피는 아는데 맛있는 인생은 아나요?

더 맛있는 삶을 위하여

by 숟가락

난 커피를 잘 모른다. 하지만 맛없는 커피는 안다.

어렸을 적에는 커피의 맛도 필요도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 하루에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고는 생활하기가 힘들어졌다.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주는 각성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수혈하듯 빨대를 입에 물고 다니는 많은 현대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커피 맛을 잘 아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 정말 없다. 어떻게 생산되고, 로스팅되어서 나에게 오는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저 저렴하고, 맛있으면 된다. 나의 하루를 각성시킬 적당한 수준의 카페인이 함유되어있기만 하면 만족한다. 그래도 그 와중에 맛없는 커피는 혀가 귀신같이 구분한다.

woman-4246954_640.jpg 이미지 출처: pixabay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처럼 맛있는 커피는 대체 왜 맛있는지 잘 모르겠고 다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맛없는 커피는 제각각의 이유로 맛이 없다. 너무 묽거나, 진하거나, 탄내가 나거나, 곰팡이 맛이 나거나, 향이 전혀 없거나 등등. 입에 넣자마자 이건 맛없다, 이건 맛있다고 혀가 말한다.


커피를 잘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네가 대체 뭘 안다고 커피 맛을 논하느냐 싶을 것이다. 카페문을 열고 나서면서부터 "윽! 맛없어!"를 말하는 내 목소리를 듣는다면 바리스타는 '네가 뭘 알아!'하고 따지고 싶지 않으실까? 한잔의 커피를 내리기 위해 했을 바리스타의 노력을 나는 모르니까. 생각 없이 '맛없다!' 하고 내뱉었지만, 사실은 공들여 고르고 추출한 '진짜' 맛있는 커피일지도 모른다. 싸구려 입맛인 내가 함부로 평가할 영역이 아니겠지.


사람의 생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삶은 맛있을까? 내 삶은? 삶의 맛을 누구든 직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평가 내리니까.


"멋진 인생이다."

"저렇게 살고 싶다."

"왜 저러고 사냐."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coffee-1850612_640.jpg 이미지 출처: pixabay

내 인생이 맛있냐 물으면 글쎄... 맛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사람마다 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렇게 엉망진창은 아니니까. 물론 내 기준이 너무 하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겐 카페 문을 열고 나서면서부터 불평을 털어놓을 정도의 맛은 아니다. 어떤 날은 향이 짙고 풍부하고, 어떤 날은 그냥 맹숭맹숭하겠지만, 도저히 못 먹겠다며 남은 커피를 하수구에 버릴 정도는 아니니까. 그럭저럭 맛있는 삶이라고 평가해 본다.


그렇지만 그게 진짜 일까? 자꾸 의문이 생긴다. 이 직관적인 평가가 정말 맞는 걸까? 삶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맛있는 걸까? 더 맛있게 사는 법은 없는 걸까?


커피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생산지역과 기후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다른지. 로스팅과 추출 방식은 얼마나 커피 맛을 변화시키는지. 우유를 그냥 넣는 것과 거품을 내서 넣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직관적으로 맛있다와 맛없다를 구분하는 것보다 더 세세하게 맛의 변화를 관찰하고 내 나름의 커피 취향을 알 수 있는 길이다.


인생의 맛을 아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쉽게 좋다 나쁘다 평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도,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공부가 필요하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배경에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타인을 삶을 살피는 것처럼 내 삶도 그렇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배경에서 살아왔는가, 어떤 결정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

laptop-4906312_640.jpg 이미지 출처: pixabay

인생을 살아가며 알아야 할 수천수만 가지의 사실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아는 일이다. 그래서 카페인의 힘을 빌어 하루하루를 버티며 더 열심히 살아본다. 읽고, 쓰고, 그리고, 경험하고,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걷고, 뛰고, 눕고, 손잡고, 안고, 눈을 감고, 다시 뜨고.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커피에 대해 공부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맛이 느껴질 것처럼 사람의 인생도 그러겠지. 완벽하게 아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늘 새로운 맛이 궁금하니까. 새로운 삶의 맛을 끊임없이 찾아가 본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사는 거지.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써보는 거다. 나에 대한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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