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물 사전
팬심은 이런 건가.
너무 떨려서 마주 보기도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강연하는 내내 순간순간 눈을 맞춰주는 그에게 감동해 눈물이 맺혔다.
집 근처 독립서점에 은유 작가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앞뒤 재지 않고 바로 신청했다.
나를 살리던 그 목소리, 다정한 말투가 참 듣고 싶었다.
서점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사진조차 찾아보지 않아 이 사람들 중 누가 은유 작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이렇고도 팬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수줍게 서점 내부를 거닐던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한가운데 섰다. 그리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던, 그 익숙한 목소리가 서점 안에 울려 퍼졌다.
책에 저자의 사인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지인들이 사인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전 사인받는 거 안 즐겨요. "라며 거절했다. 이미 집에는 책이 너무 많이 쌓여있었고, 저자의 사인이 담긴 책이 한 권 더 늘어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언젠가는 이 책들을 정리해야 할 텐데, 그때 사인을 한 작가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사인을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북토크가 끝난 후 결국 사인을 받고 말았다.
“‘글쓰기 상담소’ 정말 많이 들었어요. 직접 목소리 듣게 되어 진짜 반가웠어요.”
라고 수줍은 팬심을 고백하며.
누구나 자기만의 서사가 있고, 글쓰기에는 그 서사가 필요하다는 말. 사물에도 서사가 깃들 수 있고, 그럼으로써 이야기가 있는 존재가 된다는 강연 내용 덕분이었다. 릴케의 '예술사물' 개념에 대한 이야기였다. 듣는 순간 '아, 나는 이 책에 서사를 주어야겠구나' 싶어졌다. 사인을 받아야겠구나. 언젠가 이 책을 내 책장에서 꺼내어 정리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 죄책감보다는 이 순간의 서사를 기억하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두 권 정도를 읽어보았고, 네이버 오디오 클립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들으며 조용히 팬심을 키워왔다. 설거지하며, 운동하며, 청소하며, 운전하며 듣고 또 들었던 목소리. 아주 또렷하고 전문적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미세하게 떨리고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듣는 이들에게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 미리 대본을 쓴 후 그대로 읽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일까, 그 떨림이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글쓰기 상담소’는 엄마이자 작가로서 살아가는 그의 일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끼니를 챙겨주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아이를 돌보며,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작가. 그는 그런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닮은 꼴로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권했다. 그 방송을 들으면서 조금씩 글쓰기가 더 편해지고 좋아졌다. 그리고 이 좋은 글쓰기를 내 주변 좋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어 졌고.
북토크에서 만난 은유 작가는 오디오 클립 속 목소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나를 또 설레게 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그렇게 와닿을까. 좋은 엄마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는 고백, 거짓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사는 방식이 여러 갈래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해방이라는 말. 79년생 김지영이 아닌 '은유'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역할을 강요받지 않고, 생각과 느낌을 말할 수 있게 된 존재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들도. '숟가락'으로 불릴 때의 나를 돌아보며 다른 이들에게도 또 다른 자아인 닉네임으로 불리는 시간을 만든 내가 기특해지기도 한다.
책은 세상의 증여라고, 내가 세상으로부터 들은 좋은 것을 다시 세상에 주는 것이라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은유 작가의 책은 나에게 그의 세계를 보여주는 선물이었다. 감사한 시간, 감사한 목소리였다.
수줍게 자기 책에 사인을 해놓고 가신 작가님처럼 나도 수줍게 그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예술 사물이 두 권 생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