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을’이 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며칠 전, 업무 관련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제품을 택배로 보내달라는 내 부탁에, 파손 위험 때문에 택배로 보낼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회사로 직접 가져와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플랫폼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판매자를 대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고 거래처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 봤다. 왕복 3시간. 그래 차라리 내가 다녀와서 해결될 문제라면 조금 고생하는 게 낫지. 결국 다시 전화해서 이번주에 직접 방문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상대는 무겁다고 만류하셨다. 본인이 마침 일요일 분당 쪽 갈 일이 있다며, 강남에 위치한 회사 앞에 두고 가겠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강남에서 분당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그러면서 말씀만으로도 고맙다며,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 답변을 듣는 순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고생을 안 해도 돼서가 아닌, 나의 선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앞으로도 자발적인 ‘을’이 될 것 같다. 다정한 사람은 그 마음을 알아줄 거란 믿음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