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사주를 보러 가면, "너는 00할 운명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 00을 회사원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다들 "너는 사업을 할 운명이야", "나라를 이끌어갈 운명이야", "너는 의사가 되어 사람을 살릴 운명이야"하며 저마다 내 사주에서 본 내 운명을 말해준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고 해도, 내 노력이 부족해서 나는 그 길을 걷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참 사주에 빠져있었을 때 나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 내가 노력한다면 나의 이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마무리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음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맞지만, '노력'만 있어서는 안 되리라는 것을, 기회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회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만들 수 없는 그러니깐 자리를 지키며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 보면 언젠가 불현듯 나타날 수 있음을 함께 알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삶에서 나는 늘 '이만큼이면 되었다'라고 생각했었다. 남들처럼 4년제 대학을 나와, 남들처럼 치열하게 취업 준비하고 남들보다 약간 더 운이 좋아 대기업에 취직하고,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가진 것들이 많아 그리 힘들지 않게 잘 살 수 있는 삶. 늘 보통의 삶보다 아주 약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현재에 만족하며 이만큼이면 되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사업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늘 으레 듣는 말이 있었다. 회사원한테 목표가 아무리 높아봤자 승진밖에 없냐는 말, 평범한 삶을 사는 인생이라는 말. 가끔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대의 앞에 앉아있는 나도 회사원이오."라고.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힘이 툭 하고 빠졌었다. 내가 그들의 눈에게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초식동물의 회사원 A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회사에서 낙오되지 않고자 계속해서 물질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데, 뭔가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회사원이지만 기회를 찾아 떠나야 하나 깊은 고민도 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개인의 시간이 많아지자 내게 기회가 찾아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에서 살면 작은 것이라도 기회를 얻을 수만 있을 것 같았고 출퇴근 시간이 짧아지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자기 계발도 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할 줄 알았다.
그렇게 독립을 했고,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LEET 시험도 봤고 뭔가를 배울 요량으로 이런저런 인강도 끊어봤고 자격증 공부도 해봤다. 한마디로 진짜 뭐라도 계속했다. 그런데, 이 모든 출발이 다른 이들에게 그저 평범한 회사원 A로 비치지 않기 위한, 그러니깐 남들의 시선을 인식한 행동이었음을 모든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진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이며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를 말이다. 그저 다른 이들의 눈에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으로 남도록, "정말 쟤는 대단해!"에 '쟤'를 맡고 싶은 요량으로, 그냥 요령껏 최선을 다하는 척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출근길을 나서는 데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내도 결국 내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탓에 난 영원히 초식동물로, 회사원 A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위를 군림하는 밀림의 왕 사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밟히고 상처 받아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초식동물은 되지 말아야지. 차라리 하이에나가 되어, 남들 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마음껏 사냥이라도 해야지. 그게 썩은 고기 같더라도 먹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니깐 일단은 먹어봐야지. 그런 다음 그게 나한테 맞는 먹잇감인지, 배는 더 이상 고프지 않고 힘이 잘 나는 지 생각해볼 것. 그것이 도심의 하이에나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야 비로소 내게 맞는 먹잇감을 아주 약간이나마 찾은 것 같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에게 보이는 나의 삶이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진심에도 없는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먹어보니깐, 해보니깐, 부딪혀보니깐 작년에 내가 했던 많은 것들이 내가 실제론 원치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된 거지 갑자기 하늘에서 뚝딱하고, '아 이거 네 길이 아닌데 '라는 계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 자신을 위해서 올해는 하이에나처럼 도심을 어슬렁거리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를 위한 길이, 그리고 어떤 기회든 나를 위한 기회면 꼭 잡아야겠다며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나란 사람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꽤 코로나 시국에 의미 있는 성취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결국 영원한 안식처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여서 비로소 행복한 삶, 그리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요즘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