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수돌 Aug 10. 2021

엄마는 초밥이 싫다고 하셨어

16년 뒤 알게 된 엄마의 진심

어린 시절 내 최애 음식은 초밥이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치과 가기 싫어했던 내게 엄마는 늘 진료가 끝나면 초밥을 사준다며 회유할 정도였다. 또 여기에 나는 완벽히 넘어갔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치과 맞은편 마트 지하 1층에 있던 푸드코트로 날 데려갔다. 거기는 다른 음식점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편에 속했는데, 여러 메뉴 중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초밥과 미니 가락국수로 구성된 키즈 메뉴가 꽤 가성비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얼마인지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은 캐릭터 식판에 초밥 4개와 미니 우동이 나왔었는데 당시 또래보다 덩치가 컸던 나는 먹고 나서 항상 부족해 엄마 음식을 넘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엄마는 잘 먹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본인이 드시던 돈가스나 모밀국수을 반 이상 덜어 내게 주었다. 

출처: 나의 초밥 컬렉션 #1



회전초밥집 앞에서


매번 푸드코트만 가던 어느 날, 우연히 장을 보러 가다가 치과 옆 건물에 회전초밥집이 개업해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치과를 가는 날은 아니었지만, 하루 전날 반 수학시험에서 1등을 한 터라 맛있는 것을 사준 다했던 엄마에게 전단지를 가리키며 초밥을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그때 엄마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조금이라도 눈치를 볼 수 있는 나이였다면 엄마의 주저하는 눈빛을 읽었겠지만 그런 것을 알아차리기엔 초등학교 4학년은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엄마의 손을 잡고 금색 빛으로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를 꾸민 회전초밥집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초밥이 싫어서


난생처음 회전초밥집이라는 곳을 오게 된 터라,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접시마다 가격을 매기는 것이 신기했다. 또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메뉴판에 표시해서 직원에게 전달하면 바로 가져다 주면 먹을 수 있는 점도 당시 어린 내게는 신세계로 느껴졌다. 


그렇게 직원이 우리 자리를 벗어나자 엄마는 "이왕 들어왔으니, 마음껏 먹어 우리 딸!"이라 하며 회전대에서 내가 평소 좋아하던 연어, 참치 초밥이 담긴 황금색 접시를 하나씩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엄마는 본인 앞에는 계란말이, 오징어 초밥 등이 담겨있는 초록색 접시를 내려놓고선 직원을 불러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다. 

출처: 나의 초밥 컬렉션 #2

엄마는 왜 초밥을 안 먹어?


종류도 많고 먹음직스러운 초밥 대신 우동을 주문하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에 엄마는 본인을 닮아 내가 초밥을 좋아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날따라 엄마는 초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내가 먹는 모습만 바라보며 우동만 드셨다. 


"엄마는 왜 초밥을 주문하지 않아?"라는 내 물음에 엄마는 "엄마, 아까 아침을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서 그래, 우리 딸 많이 먹어!"라고 하며 계속해서 황금색, 갈색, 노란색 접시를 돌아가며 내 앞에 내려놓았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먹었던 접시는 초밥 한 접시당 1,500원~2,000원 사이였고, 내가 먹었던 메뉴는 모두 4,000원 이상으로 식당에서도 비싼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날의 잔상


한 20년 전쯤 회전초밥집에서 5만 원 정도 나왔으니 지금으로 따지자면 물가를 고려해서 한 10만 원 정도 되었을까. 문득 생각해보면 눈치가 없었던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가 초밥을 고를 때마다 주저하는 모습에 어렴풋이 '아, 내가 너무 비싼 음식점에 왔나 보다'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적게 먹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비싼 메뉴만 먹었던 탓에 예상보다 지출이 너무 컸고, 결국 우리 두 모녀는 초밥으로 배를 채우지는 못한 채 퇴근 후 돌아온 아빠가 두 사람 점심 안 먹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평소보다 훨씬 더 저녁을 많이 먹었다.  


16년 뒤 알게 된 진실


어느덧 한 끼 식사에 인당 10만 원을 지출해도 그리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인이 되었을 때, 월급 받은 기념으로 엄마와 초밥을 먹으러 갔다. 초밥을 먹다가 문득 어릴 때 일이 생각나서, 그때 정말 아침을 많이 먹어서 초밥 대신 우동을 먹었던 건지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그런 내게, 사실은 초밥 접시마다 매겨진 가격에 놀라 양껏 먹다간 생활비가 부족해 장도 보지 못하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우동으로 배를 채웠던 거라고 했다. 그깟 초밥은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옆에서 덩달아 눈치 보면서 배부르게 초밥을 먹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그날 속으로 울었다고 했다. 


당시 아버지가 개인택시를 받기 전이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보다도 엄마는 전업주부라 점심 먹는 데 그리 큰돈을 쓰는 것이 불편했던 것 같다. 눈치 없던 지난날의 나를 책망하며, 그리고 속으로 울었을 엄마를 위로하며 엄마와 나는 그날 그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해 초밥으로 배를 채웠다. 

출처: 나의 초밥 컬렉션 #3 (내가 먹은 가장 비싼 초밥에 대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도심 속 하이에나가 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