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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식물 수업

복지원예사의 책장, ‘다정함의 과학’

by 숲배달원

오랜만에 촬영 작가님을 뵈었다.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원예치료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예는 알겠는데.. 치료? 원예 치료는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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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과학, 다정한 식물 수업


‘치료’의 어감이 강하고,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여러 제약이 있다. 그래서 ‘복지원예사’라는 명칭을 쓴다. 원예치료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신다. 3가지 핵심 요소가 이 분야를 설명한다. 식물, 대상자, 복지원예사이다. 첫 번째, 식물은 원예 활동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활동 참여자이다. 세 번째는 원예 활동을 지도하는 사람, 복지원예사이다.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제외되면 원예치료가 될 수 없다. 복지원예사는 식물을 중심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대상자는 식물 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회복을 경험한다. 치유는 식물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복지원예사와 대상자와의 상호작용이다. 원예치료는 식물과 사람이 소통하고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는 활동을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특별함을 잘 보여주는 책이 있다.

(정민영, 2022, 원예치료와 복지원예, 부민 문화사)


책 ‘다정함의 과학’은 일상에서 베푸는 작은 친절, 가족 간의 화목함, 일과 인간관계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컬럼비아대 메디컬 센터 정신의학 교수 켈리 하딩이다. 미국 신경 정신과 전문 위원회의 전문의로 정신 신체 의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적 환경적 요건이 충족돼야 신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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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벨라와 40대 데이지 이야기


책 전반부에 2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된다. 첫 번째는 두 명의 여자 환자 이야기이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아픈 곳이 늘어간다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데이지도 그렇다. 40대의 데이지는 만정 피로를 겪고 있다. 무기력하고 한숨을 자주 쉰다. 행동이 느려졌고 여기저기가 아프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면 아무런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녀는 최근 가까운 사촌을 만나지 못했고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고 한다. 벨라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3년간 수술과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고된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그녀는 얼굴에서 빛이 난다. 70대인 그녀는 주말에 꽃을 돌보며 미술 수업을 가거나 가끔 아들과 산책을 한다.


저자는 건강해 보이지만 원인 모를 아픔에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1977년 <사이언스>에서 엥겔박사는 질병을 신체적 지표에서만 보는 한정된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존스홉킨스대 아돌프 마이어 박사는 질병을 환자의 삶까지 보는 넓은 범위의 개념을 제시했다. 한 사람의 건강은 사회적 맥락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관계, 가족, 일, 문화 등 삶을 이루는 요소들도 건강의 기준으로 본다. 이런 관점으로 환자를 돌볼 필요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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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스끄의 건강한 토끼들


두 번째는 토끼 실험 사례이다. 사회적 관계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이 실험은 원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시작됐다. 로버트 네렘 박사 팀은 몇 달간 토끼들에게 같은 양의 고지방 사료를 먹였다. 토끼들은 모두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실험 이후 토끼들은 콜레스테롤 수치,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졌다. 그런데 미세 혈관은 달랐다. 연구팀은 토끼들의 혈관에 당연히 지방이 쌓여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특정 그룹의 토끼들 다른 그룹보다 지방이 60%나 적었다. 왜 그랬을까? 연구팀은 두 집단의 차이를 한 연구원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비교적 건강한 토끼는 레베스끄 연구원에 의해 보살핌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며 다정한 말을 걸었다. 쓰다듬고 안아주며 토끼들을 사랑으로 보살폈다. 이들은 이 결과를 <사이언스>에 등재했다.

(켈리 하딩, 2022, 다정함의 과학, 더퀘스트)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가족, 우정, 사랑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두 사례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복지원예사와 수업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의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자연에서 온 사람은 본능적으로 식물을 편안하게 여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만나 서로의 회복을 돕는다. 복지 원예사는 이 다정한 식물 수업을 만들고 준비하고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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