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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Sep 25. 2021

간호조무사 학생의 병원 실습 이야기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퇴원할 건데 혈압을 재야 하나?"

"지금 퇴원하시는 거예요? 그럼 제가 마지막으로 아버님 건강 체크해 드릴게요. 하시고 가세요"

"학생, 그동안 고생 많았어"

"유쾌하신 아버님 덕분에 제가 행복했습니다. 건강 관리 잘하시고 안녕히 가세요."

 

 새로운 직업을 찾아 취업 교육을 받으려고 간호조무사 학원을 등록하고 실습을 한 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병원 간호사들에게는 일명 "학생"으로 불린다.

 그래서 나도 입원 환자분들이 '간호사'라고 부르시면

 

"실습 나온 학생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그게 맞는 말이라.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데 '학생'이라고 하면 놀라서 명찰을 확인하신다.

소리 내어 말씀은 하시지 않지만,

"진짜네"라고 하셨겠지. 하하하


 새치 염색으로 검은 머리를 가장하고 있지만 그 병동에서 나이로는 서열 3위쯤 된다. 내가 있는 병동은 갓 졸업한 20대와 30, 40대 초반의 간호사가 있다. 40대의 중년의 나이에 재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병원에서 막내의 위치다. 사실 중년이라는 말은 낯설다. 열혈 청년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학원을 통해 병원 실습을 나갔다. "학생"으로 불리는 우리는 병동의 환자들에게 하루에 3번의 바이탈(활력 징후)을  체크한다. 첫 번째는 출근하자마자, 두 번째는 아침에 활력징후의 데이터가 염려스러운 분들을 모아 스페셜 바이탈을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에 잰다. 세 번째는 퇴근하기 전 다시 전체 체크해서 기록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혈당 체크와 병원 약국 심부름과 기타 등등의 의료 도구 정리와 입퇴원 환자를 위한 병실 정리를 한다.


 한 층에 있는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해서 기록하는데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린다. 규모가 좀 작은 지역 병원이다. 입퇴원 환자가 있으면 더 바쁘고 퇴원하시고 나서는 조금 여유가 생긴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가끔 병상이 비있는데 퇴원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퇴원이 집으로의 퇴원이면 다행인데 하늘나라로 퇴원하시는 분이 계신다.


 아침저녁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한 분인데 갑자기 이 땅에 아닌 다른 세계로 떠났다는 말을 들으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든다. 숙연해지고 먹먹하기도 하고 어떤 감정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은 한순간인데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겪는 일이고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죽음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진다.

 영화 '소울(soul)'에서도 육체를 가진 이가 누릴 수 있는 건 영혼만 가지고 있는 것과는 분명 극명한 차이가 있다. 피자의 향과 맛을 꼭꼭 씹으며 '맛있다.'말할 수 있고 빵과 사탕의 부드러움과 달콤함도 맛볼 수 있으며 음악을 듣고 여러 기억을 소환해 추억할 수 있으며 감명을 받을 수 있다.

 

 혹자는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고행(苦行)'이라 하기도 한다. 맞다. 고행. 삶 자체가 고행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간혹 소소한 즐거움으로 우리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육체가 영혼과 만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누린다. 하지만 육체가 없는 영혼은 그 고행도 느끼지 못한다.

 병원에서 몇 시간 전까지 나와 눈 맞추고 말씀을 나눈 분이 먼 길을 떠나신 상황은 받아들이기 좀 어려운 일이었다. 내 마음에 그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병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을 보면 이런 일들을 많이 겪으며 적절히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하고 있는 것 같다.


 하늘로의 퇴원을 몇 번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지고 누려보자는 욕심보다 가진 것 없어도 지금에 감사하자. 여러 가지 상황과 사람으로 인해 '잃은 게 많다'라고 억울하다는 생각에 매여 살지 말고, 남들처럼 살아보겠다고 비교하지 말고.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것보다 조금만 적당히 현재를 살자. 쉬어 갈 때 확실히 쉬어가고. 하기 싫을 땐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 때려 보자.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 하늘로 가는 마지막 순간이 평안하셨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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