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Oct 07. 2021

간호조무사 학생의 병원 실습 이야기 2

실습 동기는 버티는 힘.  

 별생각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가지만,

매일매일 날을 꼬박꼬박 세면서 기다리는 날이 있으면 시간이 정말 더디게 지나간다.

 

5월 중순에 시작한 실습이 2주를 남기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긴 간다. 여태 지나간 실습 기간보다 남을 날을 세는 지금이 더 더디게 가는 것 같다.


처음 실습할 병원이 정해지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두둥실 떠올랐다.


어떤 분위기의 병원?

나는 어느 부서에 배치가 될까?

어떤 조무사,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계시려나?

어떤 환자들을 만날까?

실습생들에 대한 그분들의 자세? 우리의 대처?

그 모든 질문은 뒤로하고 무엇보다 부디 병원에 민폐는 되지 말자!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첫 출근을 했다.

학원에서 3명의 학생이 같은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같은 학원 학생이라고 하나 한 달 이론 수업을 교실에서 들었을 뿐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이다. 40대 두 명, 20대 후반의 청년. 모두 인상이 좋다.

간호 과장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신장 투석을 주로 하는 병원이다. 간호 과장님께서 병원에 대한 주의 사항을 말씀하시며 그 자리에서 부서 배정을 하셨다.

"이 중에서 힘이 센 학생이 누구일까요?"

"..........?"

"신장투석센터에는 체력이 좀 좋아야 하는데......."

과장님이 우리 셋을 번갈아 보시면서 말씀하신다. 그러다 20대 후반의 덩치 좋은 청년을 보면서

"남학생은 00층에 할머니가 많이 계시는 병동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좋겠네요. 힘쓸 일 있을 때 좀 도와드리면서 실습을 하면 손자처럼 좋아하실 것 같네요. 지금 부서를 정하면 마칠 때까지 하는 게 아니고 실습 기간 중에 로테이션을 할 거니 너무 고민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남학생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럼 남은 우리 두 명은 어디로?

같이 간 40대 초반의 학생은 체형이 여리여리하다.

바람이 훅 불면 날아가지는 않아도 뭘 좀 붙잡아야 땅에 붙어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 할 때인가?

적어도 나는 거센 바람이 불어도 땅에 딱 버틸 수 있는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럼 제가 신장투석센터에서 실습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리여리한 학생은 일반 병동으로 가게 되었고 청년은 할머니가 많이 계시는 병동으로, 나는 투석실로 배정받았다.

 

 우리보다 열흘 먼저 실습을 나온 다른 학원생이 있었는데 투석실에 한 명의 친구가 이미 일을 하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감사하게도, 나랑 동갑이다. 같은 년도에 태어나 같은 세대. 문화, 사회를 겪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반가웠다. 성격도 유쾌하고 상냥하고 재미있다. 나랑 궁합이 잘 맞았다. 게다가 가치관도 비슷하다.

살다 보니 궁합이 잘 맞는 친구를 이렇게도 만난다. 물론 그 친구는 사회성이 좋아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맞춰 지낼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이런 점까지 나랑 비슷하다. 하하하하하하 (미안하다. 친구야. 그대의 성격에 내가 숟가락 얹었다.)


 신장투석센터에는 대부분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으러 오시는 환자분들이시다. 투석센터에서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베드 메이킹(bed Making)이다. 침대의 시트 커버, 베개를 정리한다. 환자가 투석을 하고 나가고 새로운 환자를 위한 침상을 준비한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환자가 있으면 침상에 오를 때 도와드리고 검사를 할 곳이 있으면 모셔다 드린다. 검사체를 임상병리실에 가져다 드리고 약국 심부름 등등의 일을 한다.

 아침 8시 50분까지 옷을 갈아입고 실습이 시작되고 5시에 마친다.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다. 체력적인 소모가 많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도 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이나 환자분들이 말씀하시면 잘 들어야 하니 긴장하고 있다.

 

  간호조무사 학원에서 나온 실습생은 어떤 존재일까?

 병원에서 실습생은 실습생일 뿐이다. 직원도 아니고 환자도 아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외부인이지만 배정 받은 부서에서 보조 업무를 한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간호사와 비슷한 제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다. 간호사가 하는 일을 보고 눈치껏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도 하고 물러설 자리를 알고 묵묵히 벽처럼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실습 학생을 받는 병원에서는 많은 학생들을 받아서 그런가 간호사 선생님들은 학생들 이름을 묻지 않고 기억도 잘하지 않는다. 물론 병원마다, 사람마다 다를 거다. 간호 과장님은 담당이셔서 그런지 우리의 이름을 아신다. 그 외 분들은 잘 모른다. 아, 외부 환자분들은 간혹 이름을 불러주신다. 명찰이 있으니 기억해주시고 수고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감사하다. 이름을 몰라주니 섭섭해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나이가 들어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들어와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냥 내 일을 잘하면 된다는.....

내 임무를 충실히 잘 이행하자는 생각......

 

  병원에서 긴장하며 지내는데 동기들과 만나는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은 이 모든 긴장을 다 내려놓는다.

 몰랐던 의학용어를 서로 가르쳐주기도 하고 간식을 챙겨 와 나누기도 한다.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다. 같은 목적으로 모였고 같은 일을 하기에 위로와 힘이 된다.

 실습 두 달이 지나갈 때 다른 학원에서 온 한 학생이 그만두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이었다. 일이 힘들었는지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무단결근을 몇 번하더니 결국 다른 길을 갔다. 실습을 하면서 종종 그만두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적성에 맞는 일을 잘 찾았으면 한다.

 

 실습 동기라고 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건 아니다. 다행히 좋은 파트너를 만나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수 있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는 정말 부지런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티 내지 않고, 나보다 더 많이 움직였고 나를 배려해 주었다. 멋있는 친구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나는 허당끼가 좀 있는데 파트너 친구도 그랬다. 그 친구가 빠뜨리고 못하는 건 내가 기억하고 했고 내가 빠뜨리는 건 그 친구가 기억하고 움직였다. 어렵고 힘쓸 일을 하게 되면 서로 피하지 않고 오히려 파트너를 대신해 조금 더 하려고 했다.  환자분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는지 우리를  환상의 파트너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른 부서에 어떤 친구는 힘든 일이 있으면 모른척하고 도망 다녀서 한 친구가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팀원을 만나는가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멋있는 친구와 3개월을 함께 하고 다른 병동으로 떨어져 실습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병원 실습을 할 기회를 얻었지만 팀워크가 좋았기에 좀 아쉬웠다.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에 만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 친구는 이제 실습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열흘 먼저 실습을 시작했으니 당연하다.

멋있는 실습 동기를 만났기에 힘든 실습을 재밌게 보냈다. 덕분이다.

친구야. 정말 고맙고 네가 희망하는 곳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네가 있는 그곳은 행복한 병원이 될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호조무사 학생의 병원 실습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