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달은 뭐가 뭔지 모르고 두 번째 달부터 조금 알기 시작하고 세 달째부터 일이 힘들기 시작할 끼다.
입사하고 배치받은 병동에서 사수 선생님을 따라 일을 배우는 나에게 한 요양보호사님이 하신 말씀이다.경력이 오래되시고 연세도 많으신 분이신데 새내기 간호조무사인 내게 도움을 많이 주신다.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덕분에 아주 젊은 친구로 보신 것 같다.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직장 생활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알고 있지요. 암요. 안답니다. 이리 봬도 제가 사회생활 20년 차가 넘습니다. 2~30대와는 다르니 3개월 고비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대의 첫 직장은 3개월은 정말 그런 고비가 있었다. 그래서 그만뒀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내 적성에 맞는 직장에서도 3개월의 고비가 있었지만 잘 넘기면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병원에 취업하기 바로 전에는 공부방을 6년 넘게 했다.
이런 직업군은 처음이라 그럴까? 병원 생활 시작한 지 정말 3개월이 되는 날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적응이 되니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내가 배우고 싶은 건 이 파트가 아니라고!
더 늦기 전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할까? 병원일이 내 적성에 맞긴 한 건가?
사회생활 20년이 넘지만 이렇게 힘들게 일한 건 처음이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동안 몸으로 움직이는 일보다 뇌를 쓰는 일을, 서서 일하기보다 앉아서 업무를,
손보다 입으로 말하는 일을 주로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해야 할 일은 있는데 중간중간 매일매일 조금씩 변수가 생긴다. 발바닥이 불나게 걸어 다닌다. 앉아서 차 한잔의 여유, 식사 시간, 양치할 여유가 없다.
하긴 한다. 차도 마시고 밥도 먹는다. 후루룩후루룩. 호로록호로록. 하하하하하
선배 선생님들은 천천히 먹고 하라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쉽지 않다.
맡은 보직에 따라서 다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병동에 배치되면 비슷하지 않을까?
병원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취업한 병원은 일이 많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알고 들어왔다. 힘든 만큼 일을 빨리 배우고 잘할 거라는 마음으로.
노는 것보다 낫다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불과 두 달 만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조금 알고 나니 일이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과의 어려움도 조금씩 나타난다.
해도 너무하잖아. 뭐 그런 마음들도 커져간다.
나쁜 점만 늘어나면 그만두면 되는데 세상살이는 다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월급이 나온다. 직장인들이 힘들어도 버티는 가장 큰 이유다.맘껏 넉넉하게 다 하지는 못해도 덕분에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는다.
퇴근시간이 있다. 가끔 퇴근시간을 넘기지만 (매일 퇴근 시간을 넘기는 건 아니니까.) 집까지 업무를 가져오는 직종은 아니다. 주말마다 쉬지는 못하지만 한 달 휴일이 10일 정도 된다. 병동의 보직에 따라 다르지만 D(07:00~16:00)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그럼 괜찮은 거 아니냐고?
우리가 가끔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했을 때 "불태웠다."는 말을 사용한다.
매일 불태운다. 몸이 하얗게 재가되도록 불사른다. 집에 와서 샤워하자마자 침대로 직행한다. 기절하러.
직장인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 사람 힘든 건 참기 어렵다.' 공감한다. 어딜 가도 있는, 힘들게 하는 인물도 등장했다.
간호조무사 구인 사항에 보면 IM, IV(근육, 혈관주사) 능숙자를 구한다는 문구가 있다.
IM, IV 능숙자는 어디든 갈 곳이 많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 부분이다. 간호조무사 친구들이 빨리 배우고 싶어 하는 부분인데 지금 내가 맡은 보직은 현재 상관이 없다. 언젠가 터득하겠지만, 그 언젠가를 모른다. 현재로는. 다른 병동에 같이 입사한 친구는 배우고 있다. 그 친구는 교대근무를 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20대의 첫 직장생활의 혼란스러움이 다시 찾아왔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새로운 직종이라 그럴까?
간호조무사라고 다 같은 업무를 하지는 않는다.
안과, 정형외과, 정신과 등의 진료과목과 외래 , 병동에 따라 업무가 다르다.
같은 병원이라도 부서에 따라 어떤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병동마다의 규율이 다르다.
아직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병원에 출근한다.
출근하자마자 일이 터지면,
'역시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군'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퇴근할 때는 해방감을 느낀다.
다음날 퇴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출근했다가 평화로운 일과가 유지되고 깔끔하게 퇴근하면,
'역시, 계속 다녀야겠군!'이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있다.
병원은 매일매일이 이벤트다. 응급상황이 생기고, 변수가 생긴다.
좋은 변수는 없다. 별 탈 없는 일정이 유지되는 평화로움이 감사함이다.
이렇게 평일 쉬는 날이 있으니 좋다.
3개월의 고비가 지나면 괜찮을까? 일단 이번 달은 넘겨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나와 같은 일과 고민을 하면서 선배 선생님들도 여기까지 왔다고 하셨다.
(5년 이상 10년 넘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많은 병원이다.)
직장의 문화, 환경, 하는 일은 다르지만 직장인의 고민은 다 같다.
그래, 월급 나오니까 감사히 일하자.
직업적인 조건과 환경을 적었지만, 인생에서 배우는 부분이 많다.
인간의 삶, 우리 몸, 다양한 사람들. 위급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직업 정신이 정말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배운다. 이렇게 배우고 버티고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뭔가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