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손톱에 붉게 물을 들이던 그 봉숭아 꽃이 이번 글의 주인공이다. 식물의 정식 명칭은 '봉선화'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불러오던 '봉숭아'라는 이름이 더 제 이름 같기도 하다.
봉선화는 민들레나 지칭개와 같이 씨가 스스로 쉽게 퍼져나가는 들꽃이 아니라서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을 받아놓았다가 다음 해 봄이나 여름에 파종을 해야 하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그래서 봉선화는 누가 정성스럽게 심어놓지 않는 한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이번 그림의 봉선화도 동네 초등학교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던 여러 개의 화분 중 하나에 피어있던 꽃이다.
그림의 모델이 된 봉선화. 2018.8.25. 동네 초등학교에서 촬영
봉선화는 보통 6월 말부터 9월 말까지 피는 여름 꽃이다. 그래서 봉선화를 7월의 동네 꽃으로 정해놓고 그달 초에 스케치를 다 해놓은 상태였다.
봉선화 스케치. 2020.7.6. by 까실
그러나..
스케치를 완성하고 이틀 후 큰일이 일어났다. 코로나19가 비교적 잠잠해졌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서 떠난 여행길,동해바다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어느 터널앞에서였다.
뒤차가 우리 차와 충돌하면서 일어난 5중 추돌사고를 겪고 병원에 입원도하고 치료와 휴식에만 신경 쓰면서 그림에는 손도 못 대고 여름이 훌쩍 가버렸다.
신기한 건 작년 여름지금의 동네로 이사 온 후 얼마 전까지도봉선화 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퇴원 후 며칠 안 되어 우리 동 아파트 화단에 봉선화를 심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게 된 것이다. 10cm 정도 자란 작은 봉선화 여러 줄기를 정성스레 심고 계신 모습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후 한 달 뒤인지난달(8월 말)부쩍 키가 큰 봉선화에 하늘하늘 달려있는 꽃을 봤을 때는 정말 감동이었다. 내가 스케치만 해놓고 그리지 못하고 있는 봉선화 꽃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 주시다니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림을 마저 그려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