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고운 자주색 들꽃다발 지칭개
'지칭개? 이게 식물 이름이야?'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얼마 전 글의 주인공인 '현호색'도 "식물 이름 같지 않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라고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칭개는 아마 더 낯선 이름일 듯하다. 하지만 그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어머님과 통화를 하며 내 그림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어머님은 지칭개를 아주 잘 아실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꽃이 피기 전 지칭개 잎을 따서 나물로도 드셨다고 한다.
지칭개는 식용 및 약용 식물이기도 하지만 농촌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터주식물이다. (*터주식물ruderal plant : 터주 서식처에 분포 중심지가 있는 종으로, 특수한 스트레스 조건에 대응해서 인내하며 사는 식물)
즉, 교란식물까지는 아니어도 쉽게 펴져나가고 무리 지어 번식하는 종류의 식물인 것이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꽃이 지고 나서 생기는 새털 같은 씨앗들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칭개는 씀바귀나 민들레처럼 키가 작지 않다. 잎은 저 밑에 남겨둔 채 줄기가 쭉쭉 위로 뻗어 올라오며 꽃이 피는데, 여러 줄기가 모여 꽃이 핀 모습은 꽃다발을 연상시킨다. 키가 큰 줄기는 내 허리 높이 정도까지 닿았던 것 같다.
5월에서 6월 초에 피는 분홍 자줏빛의 지칭개 꽃은 봉오리 상태도 예쁘고 활짝 피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예쁘다. 그런데 운 좋게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드리 피어있는 지칭개 무리를 동네에서 만나다니.. 그림에 담으라고 선물로 주신 것은 아닐지..
보태니컬 아트(botanical art)는 식물학적으로 그려오던 예술분야라서 보통 정물 수채화처럼 원근감을 크게 살리지 않고 대부분 선명하게 나온 부분만을 취해서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선명한 부분만을 그리자니 사진에서 느껴지는 풍성함을 전달할 수가 없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사진 상에서 아웃포커스(out focus)된 부분까지 모두 그대로 그림에 담기로 했다.
아웃포커스 된 부분은 흐리고 뿌옇게 보이도록 일부러 상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고 채색 후에는 조금 마른 뒤 젖은 붓으로 문질러서 색을 퍼트려 뿌옇게 만들었다.
그리고 앞 쪽에 있는 꽃들은 아주 선명하게 보이도록 세밀한 묘사를 하니 원근감이 살아났다. 새로운 시도라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중간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사실적이다.", "원근감이 좋다."등의 반응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물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항상 어렵다고 주장하는 '그물맥 잎'도 없고, 아웃포커스로 세밀하게 그리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많은 덕분에 이번 그림은 풍성함에 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고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내년에도 지칭개 꽃다발을 동네에서 볼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