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꽃으로 참나리를 그리겠다는 약속을 3년 만에 지켰다. 동네꽃 원추리 편을 보면 참나리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활자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7월은 나리(백합)류 식물이 한창 피어나는 시기이다. 원추리는 조금 더 일찍 피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한창이고 참나리, 백합 등은 지금이 딱 절정이다. 며칠 전에 다녀온 근처 식물원에서도 원추리, 참나리, 중나리, 백합 등을 실컷 보고 왔다. 현재 사는 동네에서는 참나리를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식물원에 가면 이렇게 식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다. 걸어서 식물원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싶다는 생각, 내가 직접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꿈을 항상 꾸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추리, 참나리, 백합. 2021.7.7. 신구대식물원에서
참나리는 내가 보아온 나리(백합)류 식물 중에 가장 키가 큰 식물인 것 같다. 보통 1~2m 정도 되는데 아래 사진 속 참나리는 줄기가 특히 곧고 키가 크며 잎과 꽃이 매우 실하고 풍성해서 기억에 남는다.
참나리. 2017.7.30. 당시 동네(대모산 공원 입구)에서 촬영
참나리 꽃은 멀리서 보면 아래를 향해 피어있는 모습이 우아하고 고운 주황빛의 화피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면, 진한 자주색 점박이 무늬 때문에 무섭다!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남편 이야기다. 꽃 이름도 영어로 'Tiger lily'라니 무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무서운 느낌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림의 소재가 된 참나리 사진. 2017.7.29. 당시 동네, 대모산공원에서 촬영
그래서 이번 참나리 그림의 주인공은 가장 안 무섭게 생긴 참나리로 한 송이만 그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어린 연두색 꽃봉오리와 좀 더 성숙한 주황색 꽃봉오리가 함께 있어 허전하지 않고 조화로워 보였다.
2021.6.26. 참나리 스케치를 끝낸 후 바로 바탕색(밑색) 작업을 해놓았다.
점박이 무늬를 그려 넣은 후에 어떠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그 정도면 괜찮네. 더 이상은 진하게 하지 마. 무서워!"하는 거다. 하지만 난 그 후로도 여러 번 더 점박이에 색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
2021.6.28~7.2. 참나리의 주황색 화피 색을 먼저 칠한 후 자주색 점박이 무늬를 그려 넣고 있다. (이후, 무늬와 꽃밥에 색을 몇 차례 더 올렸다.)
꽃을 다 그린 후에는 잎을 본격적으로 그려나갔다. 쌍떡잎식물의 그물맥 잎을 그릴 때면 한숨부터 나오는데, 나란히맥 잎은 진도가 팍팍 잘 나간다. 그물맥 잎은 그물 같은 잎맥을 먼저 그리고 구획마다 세밀하게 색을 입히고 또 전체의 양감과 음영을 표현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는 반면 참나리와 같은 나란히맥 잎은 붓의 중심만 잘 잡으면 한 번에 색을 쉽게 입힐 수 있고 그라데이션이나 양감의 표현이 비교적 쉽다.
2021.7.5~7.9 참나리 잎 그리는 중.
잎 채색 후에는, 씨앗 역할을 하는 동글동글한 알맹이들인 살눈(주아, 珠芽)을 2시간 정도 더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는 휴대폰 카메라로 찰칵! 형광등 불빛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항상 실제 그림보다 어둡다.
참나리 완성 후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2021.7.10.
부족한 조명 탓에 어둡게 나온 사진은 컴퓨터로 보정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거친다. 이 귀찮은 작업은 그림을 완성했음을 빨리 알리고 싶은 마음보다 항상 뒤로 밀려 인스타그램에는 보정 전의 사진으로 올릴 때가 많다. 이번 참나리도 그랬다. 오늘도 참을성이 없음을 후회하면서 Good bye, 참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