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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23. 2019

오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걸 축하해요.

그날도 오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수술을 받기로 했던 날 아침. 거울을 통해 본모습은 붉게 충혈된 눈과 더 진해진 다크서클, 푸석푸석한 피부였다. 지난밤이 어땠는지 말하지 않아도 뻔히 보였다.


병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 나란히 앉은 엄마와 나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선잠을 자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병원은 처음 그날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과 언제 진료를 받을지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그랬었지..'

오늘 나는 수술을 기다리는 무리에 속했다.


앞 수술이 지연되고 중간중간 진료까지 있다 보니 예약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언제 수술을 받느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에 내 이름이 불렸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곳에서는 그곳에서 내뿜는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먼저 배에 있는 큰 혹과 코 옆에 있는 혹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기로 했다. 병원에 또 오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많이 제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슬쩍 비췄으나 의사는 혹의 크기와 환자 컨디션에 따라서 제거할 수 있는 개수가 천차만별이라며 딱 잘라 말했다.


'시작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나도 모르게 온 몸 구석구석 깊은 곳까지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괜찮다고 긴장을 풀어야 마취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의료진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고서야 서서히 긴장이 풀렸고 그 타이밍에 혹이 있는 곳마다 부분 마취를 했다.


부분 마취였던 탓에 수술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속으로 '와.........' 했던 거 같은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내 반응에 다소 당황한 듯한 의료진은 보통 환자들은 징그럽다고 하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 본다기에

"신기하잖아요."라고 답했다. 그냥 정말 신기했다. 근데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피부를 칼로 찢으니 그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던 혹이 보였다. 꼭 여드름 같았다. 몸에도 저런 게 있었구나 싶으면서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피도 좀 튀는 거 같고 그들이 말하는 조직을 꺼내고 그 자리를 봉합하는 수술의 모든 장면들 말이다.

 

언젠가 대학병원에서 조금 큰 수술을 받는 날이 있었다. 내 수술실은 꽤 먼 곳에 있어서  대기실에서 수술실로 가는 시간이 꽤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가는 동안 시선에 들어오는 수십 개의 형광들을  보며

"우와...."라고 했더니 그 당시 훈남 선생님(다시 방문했던 병원에 그 선생님은 없었다. 훈남이었는데.)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드라마에서 봤어요. 이거. 형광등"

내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던 건지 귀여웠던 건지 모르겠지만.(귀여웠다고 생각했기를 바라며) 침대를 끌고 가던 두 분은 피식 웃더니.


"오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걸 축하해요.^^"라고 했다.

이 날도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인 건가?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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