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 좋은 상사

이번 주, 나는 직장 동료 A의 결혼식에서 좋은 상사가 되기로 다짐했다.

by 수혁


오늘은 직장 동료 A(주: 신중하게 사진을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진을 공유한 직원. 앞으로 A로 통칭할 예정)의 결혼식날이었다. 지난 토요일 밤, 한참 눈이 왔다가 그쳤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금요일에 사무실에서 결혼 축하 케이크와 함께 A님과 담소를 나누었을 때, 먼 길 올라오는 대절 버스의 지연 도착을 걱정한 터였다. 정장 바지를 꺼내고 벨트를 차고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는 구석에 처박아 둔 BB크림을 발랐다. 새해 첫 축하 자리에서 칙칙해 보이기는 싫었다. 결혼식장은 집에서 30분 거리라 여유가 있었지만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아서 출발을 서둘렀다.


결혼식장에서 가까운 영등포역에서 내려 타임스퀘어 외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 즈음에 개장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몰로 기억한다. 당연하게도 쇼핑, 식사, 영화 관람 등 소비 및 문화생활을 위해 여러 번 방문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건물을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 거대한 건물을 외곽에서 걷는 것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쇼핑몰의 실내란 고도로 설계된 미로와 같아서 오히려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공간의 외곽을 걷다 보니 마치 내 걸음이 느려지는 듯했다. 마치 지구를 공전하는 인공위성처럼 거대한 쇼핑몰을 천천히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교차로에 도달했다. 이제 추진력을 얻기 위해 행성 공전을 마친 무인탐사선처럼 서서히 건물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거리 탐사를 마친 뒤 결혼식장이 있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엘리베이터 표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외길을 따라 앞으로만 가면 되었다. 직진뿐인 길을 지나는 와중에 어르신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다가오셨다. 60대 중후반, 부모님 뻘 정도 되시는 듯했다.


“예식장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예?”

“이 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내 대답에 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쓱 앞서 지나간다. 사실 정확한 위치는 잘 몰랐다. 나도 초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 예식장은 4층에 한 곳뿐이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였다. 직진뿐인 예식장을 향하는 통로 위에서 두 명의 어르신이 길을 더 물어보셨다. 나는 혹은 어쩌면 우리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거의 확실하면 잘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실례라는 점을 말하고 감사를 표하는 게 다소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물어보는데 돈이 들지 않기에 아주 작은 불확실성이라도 있다면 확률 싸움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도 늘 초행길에 그랬다. 난 그런 모습을 너무도 싫어했었다. 미사여구 없는 질문과 감사 없는 지나침이. 근데 또, 오늘처럼 모르는 사람이 그러할 때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기도 하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예식장에 도착한 후 직원 단체톡 방에 도착을 알렸다. 직장 동료 B(주: 지난주에 대학 시절 사진을 공유한 용기 있다고 한 직원. 앞으로 B로 통칭할 예정)도 도착했다고 하여 서로 만난 후 A님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서로 눈인사를 하는 와중에 사진 촬영기사님이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을 하신다. 신부를 사이에 두고 시커먼 남자 직장 동료 두 명이 좌우로 서는 건 뭔가 두려운 느낌이었다. 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B님이 가서 함께 찍고 와요. 하하”

“저도 찍기는 좀. 하하하하.”


그렇게 우리는 민첩하고 힘 있게 뒷걸음질 치면서 신부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하객 가득한 로비를 조망 해보았다. 누군가를 닮은 듯한 친척분들, 한껏 멋을 낸 젊은 사람들, 왁자지껄한 어르신들이 한데 뒤엉켜 결혼이라는 하나의 축하를 목적으로 서 있었다. 내 결혼식도 그러했다. 4년 전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했다. 떠올리기 싫다고 생각할수록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의 환한 내 모습이 수면 위로 비쳤다. A님이 결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이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A님이 혼인 신고를 한다고 한 즈음, 나는 이혼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A님이 결혼을 앞두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스트레스를 이유로 매일밤 폭식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명한 대비 속에서도 나는 동료인 A님에게 온전한 축하를 하기 위해 더 웃었고 최대한 말을 해댔다. 큰 경사를 앞둔 직원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고생하거나 기뻤던 순간들을 회사 공간에서 나누고자 할 때, 적어도 나의 아픔과 기분을 빌미로 인생의 큰 분기점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걸 못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업무 외적인 측면에서 직장 동료와 기쁨은 한없이 나눌 수 있지만, 고통은 나누기 쉽지 않다. 기쁜 이유를 설명하기는 쉬우나 힘든 이유를 설명하는 건 복잡하다. 마치, 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하는 사업부서 보다 발생할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위험에 대한 리스크부서의 보고가 더 어렵듯이. 이러한 상념을 하는 도중, 직장 동료 C(주: 지난주에 이미지의 누끼를 따는 사이트 링크와 함께 어떤 식으로 편집이 되는지를 예시로 전달해 준 직원. 앞으로 C로 통칭할 예정)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등장했다. 이런 식의 생각이 다소 실례가 될 수도 있겠으나, C님은 매사에 늘 열정적인 태도가 걸을 때도 다소 드러나는 편이었다. 앞보다는 좌우를 보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보폭이 좁은 편이라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눈에 잘 띄었다. 손을 들어 자리로 손짓했다.


한 편 화촉점화 및 신랑 입장 등 식의 극초반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C님의 등장과 동시에 신부 입장이 시작된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A님은 오픈된 형태의 승강기를 타고 식장에 등장했다. 주목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선 좀 멋있어 보였다. 이때부터 C님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장면을 담을 기세로 늘 그렇듯이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하객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C님은 재빠르게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하객이 앞을 가렸다. 착각일 수도 있겠으나 무언가 분해하는 것 같은 실루엣이었다. 나와 B님은 그 모습이 재밌어서 웃기 시작했다.


“C님이 찍는 방향마다 계속 사람들이 가려요.”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난 어릴 적부터 이런 재능을 동경해오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지만 주목하게 하는 힘이 있는 사람. 인원이 적은 조직이지만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남편분이 간절히 희망했다던 감미로운 축가와 사진 촬영까지 한 후 식사를 했다. 이윽고 신랑신부와 A님의 부모님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셨다. 신부인 A님이 가족들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우리 회사 직원분들이야.”

“안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A님의 가족들은 오늘 결혼식을 통해 처음 뵀으나, 생각보다 유쾌하시고 따뜻해 보이셨다. 간혹 직접 농사지은 벌꿀이나 과일 같은 농산품들도 A님을 통해 전해주시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말들이 생각이 나지 않은 채 계속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 어색한 침묵의 틈새를 비집고 A님이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평소에 이야기했던 차장님이야. 음, 좋으신 분이야.”


이 말을 남긴 채 신랑 신부와 A님 부모님은 다음 테이블로 이동하셨다. 나는 갑자기 식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 일이 있다고 한 뒤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오늘 결혼식에서의 감상을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남기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무사히 글쓰기를 마치며 내게 다시금 최면을 걸어본다.


앞으로 나는 좋은 직장 상사가 되어야 한다. 음,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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