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 차: 어떤 아침

이번 주, 나는 고속열차 안에서 이탈을 경험했던 어떤 아침을 떠올렸다.

by 수혁


오늘은 설 연휴 첫날 새벽,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향하는 KTX 열차로 몸을 실었다. 나는 예매 페이지를 열자마자 대기열이 50만 명이 떠서 실패했고, 형이 간신히 끊어준 새벽 6시 30분 열차였다. 아마도 명절 열차 예매는 BTS, 임영웅 콘서트 티켓 예매만큼 어려운 게 아닐까? 열차에 탑승하여 좌석을 찾았고 의자에 푹 몸을 기댔다. 꽉꽉 막히는 고속도로 위 자동차가 아닌, 빠르지만 값비싼 하늘 위 비행기가 아닌, 빠르고 값싼 철도 위 고속열차에 탑승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차창 속 스치는 도시와 자연의 풍경이 교차되었다. 그러다가 암전과 밝음이 터널을 두고 교차되었다. 이러한 전환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바깥을 응시하다 보니, 반복되는 전환 속에서 이탈을 경험했던 과거의 '어떤 아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0년 전 어떤 아침이었다. 나는 KTX 열차를 놓쳤다. 300여 KM 너머. 부모님이 계시는 도시로 향하는 유일한 희망을 놓치고 말았다. 치열한 설 연휴 열차 예매 경쟁을 뚫고 간신히 끊은 새벽 열차였다.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었다.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와 유대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방식이 가족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욱 짜증이 났다.


2016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그날을 회사 생활에 대한 몰입이 깨졌던 날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10여 명 규모의 스타트업에 다니는 게임기획자였다. 설 연휴를 앞둔 업데이트에 모든 직원들이 매진했었다. 자정이 넘는 시각까지도 몇몇은 남아 마무리 작업을 계속했다. 새벽 1시경, 최종 빌드를 구글 스토어에 올렸고 다 같이 퇴근을 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며 게임을 켰는데, 실행이 되지 않았다. 나는 급히 발걸음을 돌려 회사로 향했고 개발자분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큰 이슈는 아니었고 간단한 문제해결 후 빌드만 다시 재배포하면 되는 상황으로 일단락됐다. 그렇게 일을 마친 뒤 집에 돌아가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열차 시각은 새벽 6시이었고, 너무 피곤한 마음에 1~2시간만이라도 눈을 붙이자는 다짐과 함께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아침 10시였다. 엄마와 형에게 부재중 통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한마디를 건넸다.


"죄송해요."


통화를 마친 후, 그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일천한 경력과 부족한 능력을 지닌 나에게 최대한 귀를 열어주는 개발자분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몇몇 좋은 동료분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기에 몰입을 하며 더 노력할 수 있었다. 한창 회사에 몰입해 있을 때는 대표님의 "저녁 뭐 먹을까?"라는 질문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늘 할 일은 남아 있었고, 회사는 저녁 제공을 해줬다. 따라서 저녁식사 후 자연스럽게 야근으로 이어졌고, 보통 밤 9~10시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 이보다 조금 더 늦어질 때는 종종 수면실을 이용하고는 했다. 당시 공공기관에서 지원을 받아 입주해 있던 회사였기에 시설 내에 수면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일에 몰입해 있던 시절이라, 오가는 시간마저 피곤 누적의 이유라고 잘못 판단했고, 점차 그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창 이 시기 때는 가방에 상의, 속옷, 양말, 세면도구를 챙겨 다니곤 했었다. 당시 우리 업계에서는 크런치 모드라는 이름이 관례 혹은 훈장처럼 여겨질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강도 업무는 프로젝트 초기 때도, 출시 전에도, 출시 후에도 크게 해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설 연휴를 앞둔 새벽에 조차 고강도 업무가 이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설 연휴를 앞두고 고향으로 향하는 열차를 놓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때의 경험이 나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이 과도하게 범람하여, 나의 사적 영역(지인과의 약속, 취미 생활, 수면 시간 등 온전한 나의 시간)이 줄어들게 되거나 경고등이 켜질 때, 나는 10년 전 설 연휴 어떤 아침을 떠올리고는 한다.


나는 10년 전 어떤 아침.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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