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
바쁜 일들을 좀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조금 독특한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최나미 작가님의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인데, 뭔가 조금 코믹한 느낌마저 드는 표지의 느낌에
나름 범상치 않은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을 읽고 난 후의 미소가 사라지기 전에 리뷰를 적어본다.
내용은 주인공 석균이와 아빠의 실랑이로 시작된다. 방구석 폐인이 되서 나오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 석균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아빠는 우연히 집앞에 서있던 차 때문에 동네 할머니와 시비가 붙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은둔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석균이.
그런데 시비가 붙었던 할머니가 어찌저찌 자기네 집에 들어와서 3개월 동안 세입자가 되면서 상황은 이상해진다.
석균이에게 안절부절하는 아빠와는 달리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화분을 가져다 두고,
말씨름에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자기를 죽어도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고집쟁이 할머니.
덕분에 조용하더 석균의 일상에도 파란이 미치게 된다.
결국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조금 씩 밖으로 나오게 되는 석균이. 그러던 어느날 석균이에게
의문의 소포가 배달된다. 그것은 작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의 핸드폰.
그리고 발송자는 석균에게 이번에도 네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라는 식의 의문의 문자와 같이 핸드폰을 보낸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석균이는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인 가람이와
집에서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발송자의 정체와 자신과 연관된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조금씩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드러난 생각치도 못했던 사건의 진실에 대해 과연 석균이는 감당할 수 있을까?
수상한 할머니의 정체는 뭐고 방구석 폐인으로 사는 삶은 종결될 수 있을까?
힐링이지만 뭔가 미스터리도 잔뜩 끌어안은 기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가지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뭐 망상이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표면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이 책의 내용과 이야기를 여러가지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정확하게 맞아서 희열을 느끼게도 하고,
때로는 제대로 빚나가서 생각치도 못한 참신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번 경우에는 그런 상상이 무려 세번이나 빚나간 참 특이한 작품이었다.
첫인상은 의외로 어두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표지에서는 뭔가 발랄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지만
제목과 어울어져서 뭔가 한 청소년이 일상 속에서 방구석 폐인으로 고립되는 이야기를 그린
평범한 이들에 의한 가해 이야기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제대로 틀렸다.
두번째로 느낀 것은 오! 원래 방구석 폐인이던 아이가 아무 상관도 없는 지혜로운 할머니의 인도로
세상으로 조금씩 발을 내딛는 힐링 및 극복의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근데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긴 해도 정확하게 그걸 테마로 한 건 아니더라.
세번째로 상상한 것은 주인공이 스스로 기억에서 지워버린 과거의 잔혹한 범죄가 있었고,
그 인과 관계가 하나하나 풀려가며 밝혀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실 그 사건을 조사하거나 수사하기 위해 나온 탐정 포지션이라 생각했고. 이것도 아니었다.
하하하... 뭔 작품이 이렇게 통수가 심하지?
내가 요새 너무 저연령 동화만 보다보니 의외로 사고 체계가 너무 퓨어해진 걸까?
그래서 되려 참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었다. 뭔가 보편적이고 상투적으로 사용될 법한
내용을 전혀 담지 않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한 청소년의 현실 극복기이자 성장기가 맞는 것 같다.
사실 요즘 트렌드에서 이런 패턴이 흔한 것은 사실이다. 당장,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와 엄여사처럼
삶에 나이테를 먹을 만큼 먹은 현명한 노인과 방황하는 젊은이가 조우하며 결국
현실의 소중함을 깨닭고 성장하고 나아간다는 이야기야... 예전부터도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 선호될 소재니깐
이 작품도 큰 범주에서는 그 틀에 따른다. 할머니는 뭔가 괴팍하지만 제대로 된 어른이고
아이는 반항적이지만 그래도 주인공 답게 자신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에 나서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동원하여
행동하고 그로 인해 결국 진실과 성찰에 도달한다.
그래서 얼핏보면 무난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법도 한데, 위에서 말했듯이 몇번이고 내용의 전개의 예상이
제대로 엇나간 것은 이 작품이 가지는 통통 튀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얼핏 일상적인 이야기로 전개할 수도 있는 내용을 개성있는 주인공들과 내용의 구성으로
짧은 단편으로 이 정도로 예상을 벗어나는 변주곡을 연주해내다니. 참으로 유쾌했다.
마치 현악기 4중주단이 팝핀 댄스의 배경음을 연주하는 공연을 감상한 것 같은 그런 신선함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발랄한 이야기 속에서 의미있는 교훈도 담아놓았고.
개인의 입장에서 사소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한 일들이 타인에게 얼마나 잔인한 가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보다도 담담히 담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 작품이 그렇게 직설적인 느낌으로 주제에 집착하는 이야기는 아님에도
작품 전반을 읽어보면서 끊이지 않는 재미와 과잉되지 않은 감정과 가슴에 남는 여운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이런 장르의 콤비가 활약하는 이야기는 자주 접하겠지만
왠지 은둔형외톨이 주인공과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할머니, 그리고 세상을 흥미로 사는 소녀의
조합이 너무 완벽해서 다른 이야기로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과 할머니에게 시달리는 불쌍한 아빠에게도 나름 공감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 유쾌발랄한 작품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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