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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by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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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다보면,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문장에 매혹되는 일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거기서 내가 홀린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큰일이다. 이제 매미 소리도 모자라 저 태양만 봐도 지금이 생각날 테니깐.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지나가던 광고 문구에서 봤던 글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고 마치 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너무나도 싱싱하고 푸르른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소문을 하다 이 책이 마침 좋아하던 이꽃님 작가님의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번에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가슴 시린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늘푸른 청내음이 가득한 이 청춘의 이야기를

읽은 마음을 아직 먼 여름의 꿈을 꾸며 오늘의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한다.


내용은 두명의 주인공 유도 소녀 지오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리는 소년 유찬의 이야기가

서로 번갈아가며 묘사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갑작스럽게 평생 얼굴도 본적이 없던 아빠가 살던 곳으로 보내진 유도 소녀 지오.

그녀는 투병중인 엄마를 두고 와야 하는 안타까움과 자신을 버리고 평생 찾지 않다가 이제는 따로 결혼해서

배다른 동생도 곧 보게 될 아빠의 존재에 대해 깊은 증오를 가지고 시골 정주로 내려온다.


그리고 정주에 살던 소년 유찬. 할머니와 같이 사는 소년 유찬은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것은 자신의 귀에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 때문이다.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 생긴 그 후유증과 사건의 악몽으로 힘겨워 한다.


그런데 우연히 터미널에서 지오와 조우한 유찬은 생각치도 못한 일을 겪는다.

항상 자신을 괴롭히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가 어찌된 일인지 지오와 같이 있으면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오도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는다. 아직 자신이 딸이라는 사실도 지금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아빠 덕에 어영부영 먼 친척으로 더부살이하는 것도 모자라서,

오자마자 같은 반으로 만난 유찬의 이어폰을 실수로 밟아서 뿌셔버리는 사고가 터졌으니깐.


그렇게 두 사람은 생각치도 못한 상황으로 얽히며 인연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유도부를 거쳐서 동네 주변 사람들에게 고구마 줄기가 엮이듯이 줄줄히 엮여간다.


그러면서 두 아이는 서로의 상처에 대해서 조금씩 치유의 과정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시간의 악몽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게 된다.


유찬이를 괴롭히던 과거의 사건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왜 유찬이는 지오와 있을 때만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일까?

두 아이들이 보낸 가장 격정적이었던 여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단 읽어본 첫 감상은 역시나 이꽃님 작가님은 실망할 일이 없는 보증 수표같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아슬아슬한 경계다. 중2병과 감수성의 차이는. 과하면 밑도 끝도 없는 폭주하는 중2병의 세계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렵고, 너무 모자라면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어른의 관찰기가 되어버린다.


그런 청소년 소설의 딜레마에서 이꽃님 작가님은 항상 그 경계선을 마치 외줄타기 하듯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가서 마침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청소년 그들 본연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이어가며 만들어내어 세상에 외친다.


정말이지 글을 쓰기를 희망하는 입장에서 동경하게 되고 올려다 볼 수 밖에 없는 재능이다.

그분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성향은 반영되었지만, 유독 이 작품에서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 작품이야 말로 그런 작가의 색채를 가장 진하게 담아낸 페이스트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잠시 지나가는 여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서칭된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이 있었다.

바로 이희영 작가님의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였다.

당시 책을 고르면서 조금 고민을 했었다. 어느 쪽을 먼저 접하는 쪽이 좋을까?


뭔가 여름의 귤은 가볍고도 상큼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였고,

여름을 베어물면은 푸르르지만 마냥 가벼운 이야기는 아닌 깊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여름의 귤을 먼저 읽었었는데, 지금 나머지 책을 읽어본 감상은 뭐랄까나...


첫 인상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라 상당히 흥미로운 기분이다.

여름의 귤이 나름 지인의 사망과 이어진 미련과 덧없음을 담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찌보면

성인들이 되려 공감할 그런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마찬가지로 상처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나 싱그러운 진정한 청소년들을 위한 작픔이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이 책에서 이전에 소개했던 작품,

김중미 작가님의 모두 깜언 역시 긍정적인 의미로 비교 분석하게 된다.


조금 다른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고, 이 작품이 여름에 포커스를 맞춘 것에 비해

모두 깜언이 전반적인 계절의 풍경을 모두 담는 차이는 있지만,

놀랍게도 아이들의 순수함과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 서로 소통하며 이해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닮아있다.


그래서 또 생각치도 못한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느낌이었다.

항상 우리가 동경하던 시골의 풍경은 언뜻 고즈넉하지만 쉽게 문학적인 서정와 격정을 끌어내기는

만만치 않은 배경임에도, 두 작품은 그 안에 담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고급스럽게

전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영화 속의 풍경을 머리 속에 그리며 보는 듯한 환상을 느끼게 만든다.


뭔가 두서없는 리뷰가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작품은 그럴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걸리는 이야기를 끌어내여 심도깊게 분석하지 않아도,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그 과정에 몰입하여 상상하게 되고, 마침내 그 결말에서

모두가 그리던 그 풍경을 맞이하며, 내가 반했던 저 문구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니깐.


참고로 처음에 언급했던 저 문구는 유찬이의 대사인데, 나 역시도 비슷한 심정이다.


'큰일이다. 이제 제목도 모자라 저 저자명만 봐도 이 책이 생각날 테니깐.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책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이야기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것이 될 거라는 걸.'


내가 반했던 문구를 지금 내가 느끼는 심정으로 바꾼 것으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P.S 1 요즘 작품에서 확실히 성별의 역할의 고정관념이 사라지긴 한 것 같다.

책을 집어들고 처음에 했던 생각이, 유도하는 지오가 남자애고, 속마음이 들리는 유찬이가 여자애가

아닐까 상상했더랬다. ㅋㅋㅋ 근데 그런 것도 은근 재밌었을지도?


P.S 2 리뷰에서 소개하진 못했지만, 의외로 조연들의 매력도 대단한 작품이었다.

주연급 조연인 새별이와 주유의 서사도 매력적이었고, 난 의외로 유도부 코치님이 껄렁껄렁하니 씬스틸러였다.

드라마화 한다면 김광규 배우가 딱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번 더 크게 웃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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