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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Aug 20. 2024

북방 이야기 : 환처 2

[소설]북방 이야기


“족장님이… 살해당하셨다고요?”


나는 눈물흘리며 정황을 설명하는 장로들을 보며 어이가 없어졌다. 족장이 죽었다. 범인은 새로 들인 한족 첩이었다. 왠일인지 고분고분하게 구는 한족 첩을 안으러 들어갔던 족장은 그녀가 숨긴 칼에 목이 찔려 저세상으로 떠났다. 어이없는 최후였다.

내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한족 첩은 살해당했고, 남겨진 족장의 아내들은 벌벌 떨며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나의 전아내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이제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누가 그분을 저 세상에서 모시게 되나요?”


순간… 나는 떠올렸다. 족장이 죽었다. 그렇다면 아들이 없는 족장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족장의 형제들이다. 그들은 형에 대한 예우로서 그의 아내들 중에 한명을 골라 살해하고 조장을 통해 새의 먹이로 받쳐 족장의 사후에 동행하게 할것이다. 

그리고… 남은 아내들은 관습에 따라 자신의 아내로 삼게 되겠지. 어느쪽이든… 나의 전아내는 나와 다시 만날 수 없다. 환처의 예가 아니니 이제는 그녀와의 인연도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괜찮을겁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곧… 다 해결될겁니다.”


“네? 어떻게…”


나는 의문을 표하는 아내를 두고 게르를 나왔다. 그리고, 나를 지지하는 몰이꾼과 수풀지기들, 함정꾼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은 금방 나의 의사를 알아차렸다. 곧, 족장의 형제들은 형을 죽인 범인으로 즉결처분당했고, 나는 그 목을 들고 칸에게 가서 보고했다.

혈족이 모두 내분으로 땅에 피를 흘렸으니 그 저주가 세상을 물들일 것이라고… 칸은 어리석지 않게 내 의미를 수용하였다. 나는 일족의 새로운 족장이 되어 그들을 모두 거둬들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보다는 내 전아내가 이제는 둘째 아내가 되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렇게 다시 모시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족장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환처를 하고도 도움이 되지 못했네요.”


“개의치 않소. 당신이 돌아온것으로 만족하오.”


나는 덕분에 여러 아내를 거느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중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오로지 내 첫번째 아내였던 그녀 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영문을 몰라했지만… 별다른 소리없이 나에게 와서 다시 내 아내가 되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전쟁에서 나는 북방 삼걸이 없는 한족의 군대를 무참하게 박살내었다. 그리고 나는 맹세하였다. 이제 다시는 그 누구도 내게서 내 아내를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의외로 생각치도 못한 위기를 맞았다.


“다시… 환처를 요구받다니, 좀 의외네요. 저보다 젊은 아내도 많으실텐데 왜 하필 저를…”


아내는 망설이며 내 눈치를 보고 말했다. 나는 분노에 떨며 말했다.


“당신은… 갈 생각인가? 칸에게?”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요? 제가 가서 칸의 아이를 가지면 주인님에게도 영광이 되는 거잖습니까? 당연히 가야…”


“나는… 그대를 보내고 싶지 않다. 아직도 모르겠나?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대를 대하는지?”


그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은 늑대의 전사시잖습니까? 영광스러운 초원의 혈족이시고요. 저도 늑대의 일족입니다. 왜? 대체 왜 한족의 풍습을 말하시는 거죠? 저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하시는 말씀을 알겠습니다. 저를 사랑하신다는 거죠?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저를 아껴주신 주인님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합니다. 그래서 주인님을 위해 모든걸 다하고 싶습니다. 왜 그런 저의 마음을 몰라주시는 거죠?”


“나는… 그대가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저는, 당신이 나약한 한족의 풍습에 물들어 여자 하나에 풀을 뜯는 짐승처럼 낑낑거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제게 한족의 풍습을 강요하진 마십시오. 여긴 초원입니다.”


나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칸의 의도는 뻔했다. 환처라는 이유로… 인질을 잡겠다는 거겠지. 멍청한 옛 주군과는 다르다. 그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녀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절세 미녀를 대처로 받았지만… 의미는 없었다. 

이미, 나의 마음속에는 단 한가지 결론만을 내리고 있었다. 기회를 기다렸다. 그것은…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이제 황제가 직접 나선 한족의 북방의 원정에서, 나는 그들에게 밀사를 보냈다. 칸의 목숨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 멍청한 한족들은 내가 준 기회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북방 삼걸 이후 남은 자들은 모조리 병신들 밖에 없는 건가? 칸은 무사히 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왔고, 곧바로 나의 배신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기나긴 내전이 이어졌다. 

나는… 아내를 10년이상 만날수가 없었다. 계절이 몇번이 바뀌었던가…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어버렸다. 그리고 위대한 초원의 제국은 내전을 틈탄 한족의 반격에 조금씩 약화되어 갔다. 

하지만, 결국 승리는 나의 것이었다.


나는 칸을 죽였다. 그리고 그 아들도 죽였다. 하지만 나의 아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칸에게서 한명의 자식을, 그리고 그녀를 물려받은 칸의 아들에게서 두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를 낳고 그녀는 난산으로 숨을 거뒀다. 

살아남은 자들은 나에게 자비를 청했다. 하지만…


“모두 죽여라.”


“하오나, 새로운 칸이시여… 그것은 늑대의 관습이 아니옵니다. 선대의 자식을 서자로 거두소서. 그것이 초원의 율법…”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내가 그대로 그의 목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공포에 질린 그들에게 말했다.


“전부 죽여라. 더 이상은 지긋지긋하다. 내 앞에서 늑대와 초원을 논하는 자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후로… 나는 그 무엇도 행복하게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나에게 남은 것은 한족의 북침을 방어해야 할 의무밖에 없었다. 나는 싸웠다. 처참하게 싸우고 또 싸웠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면… 나는 나를 두고 먼저 떠난 아내의 무덤에서 홀로 달을 보며 그녀를 떠올리고 눈물 흘렸다. 

그녀는… 그녀는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세월이 흘렀다. 나의 전쟁도 이제 늙어버린 나처럼 종전을 앞두고 있다. 한족이 세운 그들의 새로운 장성은 과거의 전쟁을 소강상태로 만들어 갔다.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겠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쓸모없어진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은… 내 아내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성이 영역을 나누기 전에 그곳을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의외의 사람을 만났다.


“그대는 누구인가?”


무덤에 꽃을 놓던 노파는 당황하여 도망치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고귀하신 칸이시여… 저는 그냥 한족의 노파입니다. 옛 은인의 무덤을 돌보러 왔습니다.”


“옛 은인의 무덤이라고? 의아하도다. 이곳은 내 아내의 무덤인데… 내 아내가 그대의 은인인가?”


“저는 이곳이 왕비마마의 무덤인지는 몰랐습니다. 언젠가 은혜를 받았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분이 우연히 연락을 주셔 이곳에 자신이 묻히면 돌봐달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족의 땅이 아니었던지라 오지 못하다가 이제 장성이 세워지며 늑대의 병사들이 물러났단 말을 듣고 온것입니다.”


“의아하군. 이곳은 확실히 내 아내의 무덤이거늘… 뭔가 착오가 있는 듯하다. 그대의 은인은 그대와 어떤 인연이던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분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저는 한족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혼혈로 배신한 늑대의 병사와 한족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한족의 땅에서 살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 살아왔는데, 늑대들의 공격으로 영원성이 점령당하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은인은 그곳에서 같은 포로로 만난 언니였습니다. 저는 부족하나마 아버지를 통해 들은 늑대의 사랑과 풍습을 알려주고, 언니는 제게 한족의 전통과 학문을 알려주며 고된 포로생활을 견뎠습니다.


그러다가, 고위급 포로의 포로교환이 결정되었는데, 거기서 교환되지 못한 여자들은 전부 교육소로 끌려가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재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고위 귀족의 딸이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그것을 마다하고 저를 대신 보내었습니다.

저와 신분을 바꿔서 저를 살려보내고 언니는 남았습니다. 저는 놀라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언니는 저에게 ‘나는 여기서 해야 할일이 있단다.’ 라고 말하고 저의 신분으로 그곳에 남았습니다.”


나는… 순간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두려운 생각이 있었다. 유달리 늑대의 관습에 충실해야 한다던 아내… 그리고 나에게 해맑게 보여준 한족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들… 이 노파가 말하는 은인의 정체… 뭔가… 아귀가 맞아돌아가고 있다. 나는 물었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면… 그 증거가 있느냐?”


“여기 있사옵니다.”


틀림없는… 아내가 좋아하던 수가 놓여진 천이었다. 필체는 알수 없다. 그녀는 내 눈앞에서는 문맹인척 했으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언니가… 혹시 병부상서 이호원의 여식이더냐?”


“어?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명백해졌다. 드디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그녀는…한족이었다. 그리고 나의 스승의 딸이자, 스승께서 사위가 되지 않겠냐고 농을 건내던… 어린 시절 내가 잠입했던 그 장원의 그녀였다. 그리고… 내가 죽인 스승의 복수를 위해 돌아온 복수귀였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늑대라는 정체를 숨기고 들어와 스승을 죽인 원수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도 나에게 돌려준 것이다. 한족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예전에 내가 동경하던 한족의 사랑에서 납득하기 힘든 고통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주군에게 넘겨져서, 그의 아내가 되고, 그 씨를 배는 것을 생존으로서 요구받는 늑대의 관습을 이용해, 그녀만을 사랑했던 나에게 복수한 것이다. 나는, 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파에게 말했다.


“그만… 돌아가라. 성묘를 마쳤다면… 그리고 더는 오지 않아도 좋다.”


“하오나…”


“돌아가라.”


그녀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녀의 무덤앞에 섰다. 그리고… 그 무덤을 보며 말했다.


“미안하오… 정말로 미안하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를 마음에서 놓을 수가 없구려. 용서받길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가는 길 쫓아가면 한번은 돌아봐주길… 바라겠소.”


배를 가른 상처에 나오는 피와 지평선 너머로 멀어져가는 내 말을 보며 나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기분이었다. 흐려지는 의식속에서 나는 소망했다. 부디, 이 긴 잠을 깨고 나면… 그녀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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