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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Aug 22. 2024

북방 이야기 : 악연 2

[소설]북방 이야기

항상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 나는 항상 그녀를 못마땅해하는 조카를 달래는 일이 가장 큰 숙제였다. 그래서 놀랐다. 언제부터… 그 녀석은 그녀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에게 거절당한 그녀는 왜 그 녀석에게 그 제안을 한걸까?

자신을 황제에게 보내지만 않는다면… 아무라도 상관없었던 걸까? 반역자의 일족으로 압송되어 가는 와중에도 나는 몸의 고신보다 그 일만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분노한 황제는 즉각 나를 체포하고 투옥한 다음 자신의 측근들을 보내어 반란을 진압하려 하였다.


그러나… 반란의 기세를 오히려 더 강해졌다. 어께너머로 내가 그녀를 가르치는 것을 본 것만으로… 그 녀석은 진압군을 연달아 참패시키고 황궁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결국, 황제는 마지막 수단만이 남았다. 나는 석방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반란군의 절반도 안되는 오합지졸들이 지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는 내가 정에 호소해서라도 조카의 공세를 늦추길 바란 모양이다.

그리고 협상을 원하는 건 조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교전이 아닌 협상으로 이 반란의 종결을 원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그녀의 의견을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습을 가했다. 생각할 수조차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공격을 당한 반란군은 와해되었다.

오합지졸들은 패배보다 승리에 더 취약하다. 나는 포로와 협력자의 학살에 환장해 날뛰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두 사람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다. 나는 빈손으로 승리를 거두고 황제에게 가서 경과를 보고해야 했다. 황제는 묵묵히 보고하는 나에게 열등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좌천이 결정되고 몇 달후였다. 그녀 스스로… 나에게 나타났다. 항상 그렇듯이… 보자마자 검을 휘두르며…

하지만 그 검은 이번에도 명중하지 못했다. 그녀의 불룩한 배가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고 있었다. 빗속에서 나뒹굴어진 그녀를 나는 부축했다. 그녀가 말했다.


“도와줘요… 아이를… 무사히 낳고 싶어요. 이곳밖에는… 생각나는 곳이 없어서… 제발…”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감정을 드러내었다. 거의 실신한 그녀를 끌어안고 오열하였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수많은 반란의 협력자들이 황제의 개들에게 숙청당하는 와중에, 황궁에 인접한 내 집에는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극진히 보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은 나날히 안좋아 졌다. 나와 만난 이후 의식이 바른 날도 드물 정도로 쇠약해져 갔다. 나는, 아이의 아빠인 조카를 찾아 데려오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유언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아무말 없이 힘을 다한 듯 숨을 거뒀다.


나는 그 아이를 키웠다. 내 딸로서…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나의 딸의 정체에 의아해 하기도 했지만… 딱히 나에게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관직도 가급적 한직으로 돌며 세상의 권력에 연을 끊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만 몰두했다.

세상은 폭군 황제에 의해 어지러웠지만,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아이는 엄마를 쏙빼닮은 소녀로 자라났다.


“검이 그렇게 좋으냐?”


“네, 아버지. 너는 가사를 하는 것보다 아버지처럼 무인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너에게 맞는 무기를 고르거라. 이렇게 너에게 맞지 않는 무게의 검을 고르면…”


“어? 아버지, 왜 그러시나요? 왜 눈물을?”


“아니다. 잠시… 옛 기억이 떠올랐구나. 다시 시작해보거라.”


그녀는 이렇게 자신과 닮게 자란 딸을 저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조금 볼 낯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군 황제의 황음무도한 짓으로 세상이 어지러워도, 나의 장원만은 그것과 무관하게 조용한 삶이 흘러갔다.

무자비한 황권을 갖춘 황제는 더 이상 나의 무력이 필요하지도, 나의 명망을 시샘하지도 않았다. 무시당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그의 무관심이 마음이 편했다. 그저 나의 삶에 남은 것은 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유일하다고 믿으며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가 찾아왔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숙부님…”


“일단… 안으로 들거라.”


나는 장원의 은밀한 곳으로 조카를 데려왔다. 다리와 눈이 하나 없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에 화상으로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모진 고생을 한듯 하였다. 하지만, 하나 남은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났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괜찮은 것이냐?”


“괜찮습니다. 이제… 막바지입니다.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되죠. 황제의 죽음을 봐야 하는데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되죠.”


반란의 조짐이… 조용히 드러나고 있다. 이 녀석은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건가? 조카가 물었다.


“그녀의 행방을… 아십니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 처참한 몰골처럼 생기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동안 고초가 심했는지 호흡이 가늘고 당장이라도 죽는게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나는… 말했다.


“죽었다. 내가… 죽였다.”


“왜… 왜 죽이셨습니까? 그녀는… 그녀는 숙부님을…”


“아이를 낳고, 너를 찾아가려 해서 죽였다.”


잔인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 그 녀석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전히, 나의 대신으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한 처연한 눈빛이… 안도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가 물었다.


“아이는… 아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설마 소문으로 들리던 숙부님의 딸이…”


“그래, 그 아이다. 그 아이는 이제 너의 딸이 아닌 내 딸이다.”


그의 숨결이 더 잦아들어갔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잔인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왠지 나에게 원망 대신 안도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황제의 죽음을… 봐야 눈을 감을 것 같은데… 역시 무리군요. 다행입니다. 숙부님이… 다 처리하신 모양이시군요. 다행입니다.”


“정신을 차리거라. 의원을 부르마.”


“그만 두십시오. 의원도 할 것이 없을 겁니다. 숙부님도 이미 아시지 안습니까? 그만… 끝내주시죠. 고통을 덜어주십시오.”


“……”


나는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그의 목에 대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더 버텨봤자… 고통만 심해질 뿐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목을 그었다. 피는… 많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 녀석의 숨이 끊어질때까지 끌어안았다. 그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부디… 이번 반란은… 개입하지 말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서…”


“약속하마.”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그 아이를 보고 싶었는데… 이 숨결이… 멈추기 전에…”


그리고 그의 팔이 늘어졌다. 나는 그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때…


‘덜컹.’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이? 설마… 그 아이가?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빗속에서 달려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소리쳐서 그 아이를 불렀지만, 그 아이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빗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마도, 그 아이는 들었을 것이다.

내가 그 아이의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보았을 것이다. 내가 그 아이의 아빠를 죽이는 장면을…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키워온 내 딸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반란이 성공했다.


황제의 목이 저자거리에 내다걸렸다. 새로운 황제는 온화한 선제의 먼 친척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폭군의 주구를 벌하는 것은 필수불가결의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황제의 병사들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그리고… 긴 유배 생활이 이어졌다. 더 이상 삶에 큰 미련은 없었다.

내 어리석은 삶에 더 이상의 큰 기대도 바램도 없이 나는 그렇게 살아갔다. 다만,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내 곁을 떠난 나의 딸, 그 아이가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석방되었다. 내 유배지에 쳐들어온 북방 민족들을 백의 종군으로 물리친 공으로 석방되었다. 황제는 나를 불러 나에게 포상하고 다시 관직을 주려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마다하고 낙향을 바랬다. 황제는 여러 번 나를 설득하였지만, 나는 그에게 불복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에게는 황제의 권유보다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난전중에 나에게 전해진 서신…

그것은 정말 오랜만에 딸로부터 온 서신이었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거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내 추억속의 그녀처럼, 그녀는 검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지독한 악연이다. 원수로 이어져 복수하지 못하고 먼저 져버리는 꽃들이여… 나는 그런 꽃들을 사랑하였고, 그 어리석은 미망에 빠져 삶을 낭비하였다.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지도 않는 악연이다. 이제는… 그만해도 좋을 것이다. 거기서 나의 회상이 끝났다. 나는 빗속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종종 아직 어린 아이였던 딸을 데리고 왔던 주루… 거기서, 나는 그녀의 복수의 완결에 동참해줄 것이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딸이 아니었다. 세명의 청년들이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저항할 생각도 없는데… 사람을 고용한 건가?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한번 더 보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는데, 쉽지 않을 모양이다. 나는 일어서며 그들을 상대하려 하였다.

그래도, 딸도 아닌 자들에게 그리 쉽게 내 목숨을 내줄수는 없겠지. 그런데 그때 그들이 먼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장군님이시죠?”


“그렇네만… 자네들은 누군가? 미안하지만 여기서 용건이 있다면 잠시 기다려주지 않겠나? 나는 지금 딸을 기다리고 있다네.”


젊은이들이 나를 보며 망설이다 포권하며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장군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영원성의 백성들입니다. 지금 그곳은 북방의 늑대들의 포위로 함락 직전입니다. 하지만, 선제의 주구였던 영원 태수는 조정에 구원을 청하지도 않고, 버티다 지원의 시기를 놓쳤습니다. 지금, 저희들을 도와줄 사람은 오로지 장군님 뿐이십니다.”


“아… 영원성. 그래, 요지인 곳이지. 하지만, 미안하네. 나는 방금 말했듯이 딸을 기다리는…”


그때 그들중에 가장 영준해 보이는 젊은이가 나서며 망설이며 말했다.


“따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 포위망에 갇혀있습니다. 따님은, 당신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을 절대 반대했지만,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어 저희가 목숨을 걸고 늑대들의 포위망을 뚫고 따님과 약속을 정했다는 이곳으로 장군님을 찾아 온겁니다.”


“자네는… 누군가?”


나는 그 젊은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육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녀석은… 딸과 관련이 있다. 그 젊은이는 죽을 죄를 지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따님과… 혼인하였습니다.”


예상이 맞았다. 나는 노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누구 허락을 받고?”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아비 앞에서 잘도 얘기하는군. 내가, 우습게 보이나?”


“책임지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책임을?”


“그녀가 가진 아이를… 제가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쥐고 있던 칼자루에… 손이 놓여졌다. 아마도 딸은, 자신의 운명을 절망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복수를 진행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이가 생겼고, 자신을 학대하던 딸을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젊은이… 마치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은 한심한 친구가 일을 떠맡은 모양이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악연이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안내해라.”


그들이 나를 보며 반색하였지만, 동시에 당황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장군님… 마리 말씀드리지만, 따님은 장군님을 뵙고 싶어하지 않을겁니다. 어쩌면, 다짜고짜 검을 휘두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아… 괜찮아.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겠구만. 오랜만에 재밌는 시간이 되겠군.”


“네? 무슨 말슴이신지?”


“그런게 있네. 어서 가세. 자세한 건 가면서 얘기하지. 우선, 자네들의 이름이나 알아두세.”


그러자 그 젊은이들이 하나씩 자기 소개를 하였다.


“대인, 저는 구양진이라 합니다.”


“장군, 저는 왕흔이라 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딸과 혼인하였다는 내 사위… 인것 같은 그 젊은이가 말했다.


“저는… 이호원이라 하옵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빗속을 돌아보았다. 죽을 날에 어울리는 날씨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날씨다. 하지만, 나는 가야한다. 그날 내가 만든 악연이 나를 부르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결론을 내든 나는 그곳에 갈 것이다. 비록 내 소망은 이뤄지지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삶에 의미는 있을 것이다. 나는 저 너머에서 나를 막아설 잔혹한 늑대들의 대군보다도…


오랜만에 만날 딸과의 해후를 기대하며 빗속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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