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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Aug 23. 2024

북방 이야기 : 계모 1

[소설]북방 이야기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아버지는 황제의 사촌이었다. 내 조부가 싹부터 글러먹어서 맏이면서도 황제가 되지 못하고, 무능한 덕에 한번 황위 쟁탈전에 끼어들지도 못한 덕에, 아버지는 황실의 일원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그래도 모자란 인간이라는 점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부친은 한가지 약은 꾀를 써서 일신의 보존은 흥하게 하였던 사람이었다.


“장성을 쌓도록 합시다. 늑대들의 침공을 막을 튼튼한 장성을 쌓아 그 간교한 자들을 막아내는 겁니다. 만약 그 소임을 제가 맡겨 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그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부친은 자신이 북방삼걸이라도 된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의 제안은 수용되었다. 그리고, 그 권리도 인정받았다. 그는 북방도독으로 임명되어 장성을 쌓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통수권과 행정권을 부여받았고, 군사도 받았다.

그리고 그 자신만만한 기대는 늑대들의 병사와 조우한 순간 순식간에 박살나버렸다.


과거, 북방삼걸의 필두인 이호원에게 제자로 숨어들어 그를 죽이고 한족을 공격할 병법을 배워간 늑대들의 장수… 그는 다른 두명의 북방삼걸도 패퇴시킨 그야말로 신이 내린 명장이었다. 그는 단 한번의 공세로 멍청한 아버지의 병사들을 박살내고 멀리 쫓아버렸다. 겨우 후방으로 퇴각한 아버지는 그후로 절대 적을 도발하지 않고 성을 쌓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그 축성도 실상은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북방에 통수권을 가진 것으로 그곳에서 온갖 부정을 다 저질렀다.

축성은 핑계였다. 수많은 상단들의 부정한 납품이 이어졌고, 가혹한 세금이 물려졌다. 그것으로 부친은 흥청망청하며 전방에서 황도의 세도가에 못지 않은 사치를 부렸다.


수많은 미녀들이 아버지의 처와 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갖가지 향응이 아버지에게 제공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것을 탐닉하며 인생을 즐기는 것에만 몰두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나는 아버지와 다름없이 항상 술에 취해 파락호들과 어울려 다니며 계집들을 범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으며 젊은 날을 보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북방의 늑대들의 공세에 신음하는 건 최전방의 병사들과 백성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안전한 후방에서 축성을 핑계로 제대로 지어지지도 않고 골조만 남은 그 흉물에 대가로 우리에게 뇌물을 받치는 상인들의 부를 탐닉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조정은, 북방삼걸도 죽인 그들 늑대들과 접근하는 것조차 두려워 하였으니깐. 그때쯤에 아버지가 후처를 들였다.


몇번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십여명이 넘는 후처와 세자리수는 될법한 첩과 노비들을 다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그냥 생각보다는 남루한 계집이라는 생각만 인상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계모라 할법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계모라 한들 모친으로 모시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두살어린 계집에게 어머니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와의 첫만남은 최악의 모습이었다.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계모라고는 해도 저는 당신의 모친입니다.”


“젖비린내 나는 거지 년이 어떻게 아버지가 술독에 제대로 빠진 틈에 잘도 꼬셨더니 눈에 뵈는게 없는 모양이군. 나는 이 집의 독자다. 너 같은 몇번째일지도 모를 후처년이 이래라저래라 할 존재가 아니다.”


어지간하면 이런 식으로 불량하게 나가면 다들 기가 죽거나 불편해 하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제게 무례하게 굴 이유는 없습니다. 군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예를 지킴이 아니라, 그것이 참된 도리고 바름을 알기에 예를 지킨다 하였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해도 나는 당신의 모친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그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당신의 모친으로서 저는 당신을 꾸짖을 의무가 있고, 당신은 제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되바라진 년… 어디서 그딴 걸 얻어듣고 다니나? 듣자하니, 피난민 출신의 기생년이라고 들었는데 풍월을 읊는군. 그렇다면 말이지 그 자리에 없다면 상관이 없겠군. 조금만 기다려. 골골거리는 아버지가 죽고 나면, 그 직위와 집안은 내가 물려받는다.

그날이 되면 네 년을 즐겁게 가지고 놀아주지. 듣자하니, 늑대들은 부친이 죽으면 생모를 제외한 부친의 처첩을 물려받는다지? 역겨운 풍습이지. 하지만, 네 년 같은 창녀들에게는 딱 어울리는 처사지. 언젠가 내 품에 안겨 울부짖게 해주지. 기대하라고.”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나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당신이 무엇이 되든, 결국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짊어진 의무에 대한 권리가 다입니다. 그 외에 것을 가지면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의 무게가 당신을 짖누를 것입니다. 그러니, 이뤄질 수도 없는 바보 같은 소리는 그만두세요.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들 당신의 앞에서는 굽신거리면서도 뒤에서는 손가락질하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하고 정신을 차리세요. 그러면 모친으로서 제가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비웃으며 자리를 떴지만, 왠일인지 화가 난 것은 나였다. 왠지 모르게 풀길이 없는 분노가 일었다. 그녀가 했던 나에 대한 지적… 어쩌면 나 스스로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내 주변에 파락호와 다름없는 나의 삶에 대한 정확한 지적에… 나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날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나는 지나가던 한 계집을 일행과 같이 납치했고, 범했다. 그리고 범하며 자칭 자신을 모친이라 칭하는 그 어린 년을 떠올렸다. 그건, 끝내주면서도 불쾌한 경험이었다.


나에게 범해진 여자의 집안은 병부 상서 이호원을 오래 모셔온 무가였다. 그 집안의 남자들이 항의를 하러 왔으나, 부친은 황족의 면책을 내세워 그들을 돌려보냈고, 그 집안의 남자들은 이를 갈며 뭔가 폭발하려 하였으나, 후처로 들어온 그 계집이 그들의 앞에 나섰다.

그리고 뭔가를 설득하자, 그제서야 그들은 조금 노기를 누그러뜨리고 침을 뱉으며 돌아갔다. 멍청한 것들… 최전방에 종군하는 놈들이 언젠가 늑대들의 손에 죽어 사라지겠지. 그런 파리 목숨들이 난리 치는 모습도 화가 나고, 그것에 대해 수습을 하려는 저 후처년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후로도 그녀는 항상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지겹게 찾아와 나를 귀찮게 하였다. 정말이지 내 아버지의 후처만 아니었다면 어디로 끌고가서 따먹어 버리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히 피난민 출신의 천한 것이 방계라고는 해도 황실의 피가 흐르는 나를 제재하려 하다니… 기도 차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내 아버지가 그토록 부정한 방법으로 북방을 틀어 쥐어도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았고, 내 어머니가 젊은 남자 여러명과 놀아나다 치정으로 칼을 맞아도 비난받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그 어떤 비난도 대가도 치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황족이니깐, 황족의 면책특권을 가졌으니깐… 그때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세상을 두려울 것이 없이 살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마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의사놈에게 욕을 퍼붓기도 전에, 의사는 슬슬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고, 나는 쓰러져 버렸으니깐… 온몸에 열이 오르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몸 전신에 곰보자국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돌림병이 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병은 삽시간에 세상을 흩었다. 그리고 그 병에는 신분 고하도 없었다.


살아남은 자는 도망쳤다. 병에 걸린 자는 자신의 옆에 쓰러져 죽은 가족의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도망치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바로 몇일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안의 가택에는 수많은 고용인들과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먼저 쓰러져 죽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연이어 내가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환자와 망자를 남겨놓은 채로…


고열 속에서 나는 사경을 헤매었다. 몸 전신에 퍼져나가는 수포로 인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자신의 살길을 찾아 떠난 집은 마치 버려진지 오래된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나는 절망했다.

집안의 부와 권세는 돌림병 앞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평소에는 그토록 나와 부친에게 아부를 떨지 못해 안달인 자들이 지금은 단 한명도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나는 절망에 휩싸여 몸도 가누지 못하고 소리쳤다.


“크아아아악!!! 누가 나를… 제발 나를 도와줘.”


하지만 대답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공자? 여기 있었군요.”


내 목소리를 듣고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후처,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미망인이 된 나의 계모였다. 아버지의 건강을 비는 제사를 준비하러 갔던 그녀… 다른 일행은 그곳에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만은 돌아왔다.

그것도 얼마 전에 임신한 부른 배를 안고선 말이다. 나는 고통속에 신음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왜 당신이…”


“기운을 차려요. 공자, 없는 틈에 상공이 돌아가신 걸 들었어요. 다들 말리는 가운데 서둘러 오려다 보니, 이렇게 늦어져 버렸군요. 잠시 기다려요. 물과 천을 가져올께요.”


“꺼져… 다른 개새끼들 처럼 당신도 꺼지라고! 이딴 죽음의 땅에서 무슨 개수작이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아뇨… 저도 죽는 건 두려워요.”


“근데, 왜 여기서 지랄이야. 꺼지라고!!!”


“하지만, 공자… 나는 당신의 모친이에요. 당신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내가 낳지는 않고,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랍니다. 사실은… 나도 도망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뱃속에 아기에게… 엄마로서 보일 모습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힘을 내세요. 어미는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곁에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그 시신과 죽음만이 가득한 땅에서 전염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고 머물렀다. 그리고 발광하는 나를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곁에서 있어 주었다. 그녀의 정성 덕분일까? 아니면 하늘이 내게 자비를 베푸심일까?

나는 다행히도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곰보도 뭉그러져 제대로 뭔가를 쥘수 없게 된 오른손과 몸에 흉측한 곰보 흉터를 남기고선 말이다.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내 삶의 내면과도 잘 어울리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원망하고, 아버지를 따라 걸었던 망나니 인생… 그 인생 속에 나는 허우대 멀쩡하고 잘생긴 얼굴에 부족함이 없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를 치는 개망나니였다. 그래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가진 핏줄의 가치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건, 지금 거울속에 비치는 괴물 같은 나의 내면의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버지가 죽고 내가 병에 걸리자 망설이지 않고 도망쳤다. 오로지 어머니만이… 나의 곁에 남아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나를 지켜 주셨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깨닭았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이별을 고했다.


“어… 어째서 떠나시는 겁니까?”


“이제, 상공도 돌아가셨으니… 제가 머물 자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병도 다행히 위세가 가라앉는 듯 하니 공자가 더 이상 고통받을 일은 없을꺼라 생각해요. 곧,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과 상의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으세요. 소첩에게 이곳에 머물 이유는 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을 지켜낸걸로 상공의 은혜에 보답은 되었겠지요. 공자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제가 떠남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럼 부디 안녕히… 공자?”


나는… 떠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리고…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공자… 이러지 마세요.”


“잘못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소자가 죄를 지었습니다.”


“공자,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서 이걸 놓고 일어서세요. 공자는 이제 아이가 아닙니다.”


“저는… 어린 아이 만도 못한, 아니, 금수만도 못한 놈입니다. 그런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오로지… 이 세상에서 오로지 어머님 만이 저를 지켜 주셨습니다. 저를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시키시는 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부디… 부디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통곡을 하듯 눈물을 쏟으며 어머니를 붙들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조금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자리에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에게 말했다.


“공자, 떠나지 않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겁니다. 저는… 당신의 계모입니다. 당신의 곁에 있다면 저는 어머니로서 당신에게 제 방식으로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당신이 넌더리를 내었듯이 말이죠. 당신은 그걸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무슨 말씀을 하시던…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개망나니로 살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가 명하시는 건 그 무엇이라도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어쩔수 없군요. 그러면… 내가 시키는 그 무엇이든 정말로 따를 건가요? 약속할 수 있나요? 어쩌면 그것은 마마에 걸린 것 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든 다 할수 있다고 약속하였다. 어머니는 잠자코 그런 나의 의사를 확인하시고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청산이었다. 처음 알았다. 흥청망청 하던 아버지의 사치는 의외로 지금 시점에서는 상당히 많은 재산을 탕진한 상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을 줄이지 않아 이미 빚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나에게 그 모든 빚을 조상의 전답과 가택을 팔아서라도 다 갚으라고 명하셨다.


“떳떳한 삶을 사세요. 황족의 면책 특권은 귀한 자를 귀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거지 천한 자의 죄를 감면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빚을 모두 청산하고 본인과 아버님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죄하세요. 그동안 장성을 세운다는 핑계로 가혹하게 내몰린 백성들에게 사과하고 그 책임을 지고 관직의 상속을 포기하세요.”


“하… 하지만, 그러면 앞으로의 생계가…”


“어미는, 당신이 사람답게 살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피를 빠는 괴물이 아니라요.”


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을 찾아갔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나의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망의 시선을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그들의 앞에 나서기 두려웠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의 뒤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시며 내 등을 밀어주셨다.


“가세요… 수치를 당하더라도, 떳떳하게 사과하고 오세요. 제 아들은 그래야 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과하였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화를 내는 자. 말이 없는 자.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 사과를 받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때,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왜 그런 일을 시키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이 끝났을때는 나에게는 별로 남은 것이 없었다. 어느 허름한 다 쓰러져가는 집과, 겨우 한 식구가 먹고 살 전답… 거대한 가택과 토지, 그리고 가솔들은 이제 더는 없었다. 나는 그런 허름한 곳에 어머니를 모시는 일에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쉬움이 큰가요?”


“아닙니다. 조금은… 어머님의 뜻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만삭이신 어머님을 이러 곳에 도와줄 하녀도 없이 모시는 건 마음이 편치가 않군요. 소자가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면 좀더 도와드릴 일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인 입장에서는 어머님을 모실 일에 어려움이 커서 고민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의 효도를 하면 되겠지요. 모든 부모의 기쁨은 자식이 좋은 규수와 혼례를 치루는 것입니다. 공자, 결혼하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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