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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Sep 02. 2024

북방 이야기 : 비밀 4

[소설]북방 이야기

“……”


“폐하?”


“지금… 지금 뭐라 그랬느냐? 붉은 호박 노리개? 가져와라. 지금 당장 내 앞에 대령하라!!!”


나의 분노어린 일갈에 병사는 당황하여 서둘러 증거품을 내 앞에 대령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나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틀림없었다. 그것은… 내 어머니의 물건, 그리고 내 아내에게 정표로 준 그것이었다. 비슷한 것조차도 아니다. 바로 그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그것을 명귀비가… 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스치는 그녀의 왠지 익숙한 말투가 떠올랐다. 아니다. 이건 말도 안 돼.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잖아. 10년 전에 10대에 불과한 그녀다. 그녀가 내 형의 모친인 명귀비와 어찌… 그때 나는 내 형의 존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 일어서 순식간에 형이 구금된 감옥으로 달려갔다.


“다들 나가라.”


내 명령에 간수들이 다 나가자 나는 창살을 두고 그와 마주했다. 이제는 결혼을 해서 자식까지 두었지만 여전히 가녀리고 병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맑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그리고… 명귀비는? 대체 누구입니까? 대답하십시오.”


그러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모았다. 그리고 나에게 큰 절을 하며 다시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 올립니다. 아버지…”


“……”


“쿨럭쿨럭…”


그렇게 말한 그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고 나는 황급히 달려가 그를 안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오랜 시간을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형제로 살아오면서,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었습니다. 아버지…”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지금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영원히 비밀로 남기기를 원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반군에 내 의지로 구금된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북방으로 망명을 해야 했었죠. 네, 맞습니다. 당신이 일생을 증오하며 살아온 나의 어머니 명귀비, 그분이 당신이 10년 전 만난 그 수련족의 새터니 소녀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이야기를 꺼내 나에게 들려주었다. 마치, 예전에 그녀가 내게 재미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듯이… 하지만 그건 너무나 슬픈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석태후의 일파에 비참하게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요. 그래서 어머니는 당신과 사랑에 빠지고 당신에게 청혼을 받은 다음, 다가올 미래에 절망하였지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어머니의 눈에는 너무나 암울한 아버지의 미래가 별을 통해 보였으니깐 요.”


기억난다. 그날별을 보며 울던 그녀… 그녀는 그날 나의 미래를 보았던 거구나.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결심하셨죠. 그래서 어머니는 수련족 새터니의 힘을 아버지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능력은 바로 시간을 건너뛰는 능력, 어머니는 그 능력을 통해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시간으로 건너가 운명을 바꾸겠다고 결심했죠.


그리고 그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승전을 보고하러 황궁으로 오시던 그 날 원래대로라면 석태후는 암살자들을 매복시켜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실패하면 또 연이어 모함을 해 죽일 계략을 세워뒀었죠. 어머니는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일생 단 한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셨죠. 그것은 쉬운 결단은 아니었죠. 불안정한 능력이고 시간을 건너뛰는 능력이기에 잘못하면 다시는 아버지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능력을 사용하셨죠.”


설마… 불 길속에 잠시 나의 막사에서 빛나던 그것… 그것이 그녀가 능력을 쓰는 장면이었던 건가? 나는 그냥 잠시 밝게 빛난 화광이려니 했더니…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생각도 못한 변수 덕분에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엄청난 표류를 하게 되었죠. 그건, 바로 저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설마?”


“네, 그때 어머니의 뱃속에는 이미 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명이 가야 할 시공을 뛰어넘는 신력이 두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방향을 잃어버린 거죠. 어머니는 결국 어느 시대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그 시대를 보고 절망했다고 하시더군요. 그건, 아바마마… 실제로는 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인 먼 과거의 시간이었던 거죠. 어머니는 시공에 여행 중에 불시착해버리고 만겁니다. 절망하셨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계속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먼 과거에서 아버지의 시간을 바꿀 수 있게 운명을 바꾸는 행보를 걸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아바마마의 귀비가 되신거였나?”


“네… 저를 가진 것을 숨기고 접근해 귀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궁중에서 석태후에게 저항할 세력을 키우셨죠. 만약에 어머니가 개변한 역사가 아니었다면 오로지 아버지에게 쏟아졌을 석태후의 악의를 대신 받아내기 위해 어머니는 궁중에서 석태후에 대적하는 돌출된 세력으로 행보를 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태어나셨다고 하더군요.”


“크흑… 어이가 없군. 사랑하던 남자를 아이로 다시 만나게 된건가?”


“네에… 그것도 자신의 아들보다 어린 상대로 다시 만 난거죠. 그날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는 아버지와 이어지지 못할 운명임에 슬퍼하며 많이 슬퍼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이후로 마음을 접고 냉정하게 아버지를 위해서 살기로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어머니는 명귀비로서 여러 차례 아버지를 위험에서 구하셨습니다.”


“아아… 알고 있다. 이제서야… 그녀의 진심이 내 가슴에 느껴지는 구나.”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세운다는 핑계로 나에게 때로는 위해를 가하고, 때로는 도발하고, 때로는 손을 잡았던 그 행동들… 생각해보면 다들 석태후와 그의 일가와 연관하여 나를 위험에서 피하게 한 행동들이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오로지 명귀비인 그녀가 나의 적으로 생각하고 그녀의 모든 일련의 행동을 악의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구하기 위한 그녀의 위악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구하기 위한 그녀의 슬픈 헌신이었다.


“네, 기억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혹독하게 단련하여 자신이 없어도 강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셨죠.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부디 자신을 잊고 살아가기를 기원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원망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은 어머니에게 너무도 가슴 아픈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마치고 더 이상 아버지가 위험해지지 않은 미래만이 남자,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셨죠.”


“하지만 왜…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왜 죽음을 택한 거냐? 왜? 대체 왜?”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리입니다.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는 25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두려워하셨죠. 이미 늙은 자신이 다시 돌아와 젊은 당신의 삶에 화상을 남기고 먼저 떠나는 민폐를… 그리고 떠난 이후 아버지의 남은 삶이 망가져 버릴 것을 납득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선택하신 겁니다. 모든 것은 비밀로 하고 떠나기로… 당신을 사랑하기에 비밀로 남긴 겁니다.”


나는 결국 형… 아니 사실은 나의 아들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드디어 알게 되었다. 사랑하기에 비밀이라던 그녀의 말의 의미를… 그녀의 비밀… 그것이 그렇게 슬프고 힘겨운 것인지 나는 상상조차 못했다. 잠시 스치듯 만나 호감을 가진 나를 위해, 그녀는 왜 그토록 헌신해야 했던 걸까? 나의 아내여… 나의 아내여… 어리석은 남편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준 당신에게 이 못난 남편은 그저 오열할 뿐이라오.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만난 나의 아들을 끌어안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니깐 비밀입니다.


그랬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에 일생동안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 했던 슬픈 비밀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 회상에서 깨어나 여전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등잔에 비친 연못에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실을 알게 된 그 날 이후로도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못에 비친 내 모습은 그때보다 많이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날 황후전에서 내 손으로 죽인 나의 아내의 나이를 뛰어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단순히 늙어서가 아니라, 추억의 미망이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니, 왜 그녀가 그토록 나를 다시 만나 진실을 말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는지 알 것 같다. 시간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만만치 않다. 나는 다시 한잔을 더 들며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황제가 되었다. 내 군사들의 위용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즉위한 내가 제일 처음 한 것은 폐위된 나의 아들을 사면하고 극진히 병구완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는 내 품에 안겨 평온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나의 오열에 혹자는 나의 형제애를 칭송했고, 혹자는 나의 정치적 가식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진실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을 아는 두 사람 중에 한명이 죽었으니깐…


세상은 평화로웠다. 나는 삶에 모든 미련을 버리고 오로지 좋은 군주가 되는 일에만 매진했다. 전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백성들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정책은 나름 실효를 거둬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15년간의 태평성대를 보내는 동안 나는 중신들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혼인을 하지도 여자를 가까이 하지도 않고 오로지 국정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후계에 대한 문제를 걱정하는 중신들에게 나는 간단히 결과를 고했다.


“나의 형님이신 폐제가 남긴 장남을 나의 후계자인 태자로 삼는다.”


그것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사서에 위대한 화해로 기록된 나의 결정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나의 파격적인 행보는 다시 이어졌다.


“양위하겠노라. 내 항상 형님의 자리를 빼앗은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내 그 마음을 담아 조카에게 선위하고 물러나겠다.”


엄청난 상소와 반발이 이어졌으나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제 갓 스물이 된 나의 조카, 실제로는 나의 손자는 영특하고 온화하며 아버지의 병약함은 닮지 않은 아이였다. 나는 아직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야인으로 교외에 저택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 나의 마지막을 지켜보러 올 사람을…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빗속에서 한 사람이 내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방문객에게 의자를 권했다.


“앉거라. 네가 와서 다행이구나.”


“제가 오실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이 나이가 되면 정치적으로 둔한 인간도 예측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지. 몽상가들은 위대한 화해니 하며 칭송하지만, 권력은 양분할 수 없는 것이지. 곧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내 밑으로 모여 뭔가를 하려고 하겠지?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위화감 없이 사라져줘야 하지. 그런 일을 시키려면, 나를 보내고 마찬가지로 입을 막을 존재나 아니면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보내야 하지. 네가 와줘서 다행이다. 전자가 왔다면 사람 목숨을 너무 하찮게 여기는 네 오라비에게 조금 실망했을 것이다.”


방문객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초립을 벗었다. 그러자, 예전에 그녀와 닮은 앳된 소녀가 나타났다. 그 아이는 지금의 황제의 여동생, 그러니깐… 나의 손녀이다. 아마도, 황제는 곱게 선양을 받았다고 해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나를 제거하기 위해 자기 여동생을 보낸 것일 것이다. 아마도, 실상을 모르는 상태에서 부친과 조모의 복수를 겸해서… 바라던 바다. 큰 미련이 없는 삶에 마무리가 이런 방식이라면 그것도 납득할만한 최후라 생각했다. 공주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각오를 하신 모양이시군요. 미련이 없으신가요?”


“그래… 그랬다면 추하게 저항했겠지. 하지만 정말로 미련이 없구나. 나를 어떻게 의심사지 않고 자연스럽게 저 세상으로 보내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협조해 줄 테니 얼른 마치고 가거라. 복수를 마무리 해야지.”


“저 세상이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 제가 하려는 행동을 생각해보면…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시나요? 정말로 아쉬움이 없으신 건가요? 이대로 그냥 끝나도 좋으신 건가요? 저는 왠지 그렇지 않기를 바랐습니다만.”


“이제 더 무슨 미련을 남기겠느냐? 어차피,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담보 받은 삶이다. 더 이상의 삶은 여분에 불과하지.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번 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이미 그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다. 대신에 그녀를 닮은 너를 보니 그나마 아쉬움이 사라지는구나. 그러니 그만 됐다. 손을 쓰거라.”


나는 정말로 마음을 비우고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태도가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포기하는 건가요?”


순간, 나는 굳어버렸다. 그녀와 닮은 얼굴로 내뱉은 그 말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포기하지 말아요. 겨우 그런 결말을 내고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당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걸고 시간을 뛰어넘어 헌신한 할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너… 너 그걸 어떻게?”


“잊으셨나요? 할머니는 수련족의 새터니였죠. 그러면, 그 피를 이어받은 저도 수련족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마침 저에게 새터니의 자격도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보았습니다. 하늘과 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람과 밤이 들려주는 노래를… 어린 시절에는 그냥 환청과 환각이려니 했는데 지금은 그 능력은 인지하고 이해하며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 수없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새터니들의 사랑의 이야기도 모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였죠. 그 사랑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을 도와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무슨… 무엇을 도와준다는 말이냐? 어? 설마…”


그때 나는 오래전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새터니의 능력을 두 번 보게 될꺼라는 그녀의 점괘… 순간 손녀의 손이 허공을 휘젓고 그 공간에 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관문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그녀가 말했다.


“오라버니에게는 고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와서 일생을 증오한 상대를 사랑하기엔 황제로서 고뇌가 과합니다. 이건 저만의 비밀로 남겨두도록 하죠. 다행히도 할머니처럼 실수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깐, 이번에는 놓치지 마세요. 그 손을 꼭 잡고 달리세요. 할아버지.”


“맙소사… 믿을 수가 없구나. 어떻게…”


“이만 작별하죠.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만, 부디 행복하세요.”


그리고 내 눈앞에 거대한 섬광이 덮쳐졌다. 나는 주변이 온통 하얀 빛무리를 통해 어딘가로 날려졌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알 수 있었다. 도착하는 그곳에 그녀가 있다. 그리고 손녀의 말처럼 이번에는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빛무리가 사라졌다. 내 눈앞에는 불타는 건물이 주변에 가득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 그래 기억난다. 불타는 황후전. 여기였구나. 그러면 아마도 그녀는… 내 예상대로 중정의 정면에서 체념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란 토끼눈을 한 그녀가 있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아아… 다행히도 우리 귀여운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 백년해로 하라고 보내주더군. 오랜만이야… 명귀비… 아니, 나의 아내… 이제는 그대보다 연상이 되었군. 25년의 시간의 강을 건너 이제야 그대를 만나러 왔네. 너무 늙은 꼬부랑 영감이 되어 늦게 돌아와 미안하구먼.”


그녀가 나에게 안겨왔다.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그저 표독스러운 미모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에서 그 시절 그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서로 25년이라는 시간을 떨어진 후에야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괜찮아. 이해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내가 더 미안해.”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얼싸안고 불 길속에서 해후를 하였다. 그러나…


‘와장창… 콰광!!!’


전 너머에서 대들보가 불길에 약해진 기둥을 못 이기고 넘어졌다. 아아… 이제는 좀 위험하구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갑시다. 일단은 이곳을 피하는 것이 먼저겠지? 듣자하니 비밀통로도 있는 듯하니 그곳으로 서둘러 달려가자고.”


“아, 네… 어멋!”


“왜 그래?”


“저기 전에 정표로 주신 노리개를 떨어뜨렸어요.”


“아… 그게 그렇게 된 거였나?”


“네?”


“아니야. 그건 과거의 우리와 함께 두고 가자고.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깐.”


“아, 네에… 알겠습니다.”


하지만 비밀통로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황후전이 전소할 정도로 엄청난 화재였으니깐. 나는 이제 좀 늙은 몸으로 그녀를 끌며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우리… 무사히 여기서 빠져나가 여생은 평안히 살 수 있는 걸까? 그런걸. 점쳐볼수 없나?”


“아, 잠시 만요…”


잠시 화마를 피해 달리면서도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은 그녀는 곧 눈을 뜨며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가? 우리는 사는가? 죽는가?”


나의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마치 25년 전 그때의 미소를 다시 보여주듯이 대답했다.


“그 결과는 비밀입니다. 하지만…”


아아… 그 다음 말은 이미 알고 있다. 내 예상과 한 치도 틀림없이 그녀가 말했다.


“포기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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