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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Sep 04. 2024

북방 이야기 : 절망 2

[소설]북방 이야기

황궁은 술렁였다. 수십년간 북방을 평정하고 영원성에 주둔하며 제국에 평화를 가져온 거인. 그가 죽었다. 그것도… 늑대들의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해서. 그것은… 크게는 오랜 제국과 늑대들의 평화가 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에… 작게는 나의 장인이 될 사람이자 그녀의 부친인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가 막히게 우리에게 절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혼례가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 혼례를 보기 위해 도성으로 오는 길에 기습당해 죽었던 것이다.


혼례의 축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화려하게 수놓인 대례복은 상복으로 바뀌었다. 오랜 시간, 북방의 늑대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을 여러 차례 대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책략으로 그들을 구슬려 북방의 평화를 가져온 영웅이기에, 늑대들의 그런 만행은 규탄받아 마땅하였고, 제국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보다는 남자 형제 조차 없어서 홀로 상복을 입고 부친의 장례를 치뤄야 하는 그녀의 모습이 가슴아팠다.


나는 이제 혼례를 통해 태자비가 될 날을 앞두고 그런 변고를 당한 그녀를 어찌 달래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참수당해 목조차 돌아오지 않은 부친의 시신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며 묵묵히 장례를 주관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부황과 유림 장군의 시신을 수습해온 유씨 일가의 오랜 정적인 석씨 일가들 마저 숙연하게 할만큼 무게가 있었다. 그리고 장례가 마무리 될 무렵에 앞으로의 일에 대한 처리기 진행되었다. 그 첫번째는 인질의 처형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 늑대 새끼는 이미 심하게 고초를 당했는지 엉망인 상태로 처형장에 끌려왔다. 그 모습이 처참했지만, 동정이 가진 않았다. 이번 유림 장군의 기습의 배후로 지목되는 것은, 다름아닌 그 늑대 새끼의 친부가 이끌었던 늑대의 주전파가 가장 유력했으니깐. 그들의 우두머리의 자식인 그가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미, 제국과 늑대들의 전쟁은 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수는 반드시 치뤄져야 할 그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나… 그 자식은 여전히 시건방졌다.


“죄를 인정하는가?”


“죄? 무슨 죄? 만리 밖에 자기네 앞마당에 묶어둔 늑대 새끼에게 다른 늑대가 물고간 번견의 죄를 묻는건가? 어이가 없군. 너희들 한족의 학당에서 나는 연좌제가 역모를 제외하면 불법이라 배웠는데, 대체 난 무슨 근기로 죄인이 되고 그 대가를 치르는거지?”


그의 그런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모두를 공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분노한 이는 당연히 그녀였다.


‘챙!’


그녀가 검을 뽑아들고 내려가 그의 목에 겨눴다. 그것은… 허락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그런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들이밀고 결박된 늑대새끼에게 말했다.


“내 아버지는… 너희들 늑대들도 인간으로서 다가갔다. 너는 그런 나의 아버지에게 무엇이라 변명할 것이냐?”


그 늑대새끼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듣자하니… 유림은 목이 없는 시체로 돌아왔다지? 그것 참… 걸작이군. 우리 늑대는 귀인을 죽일 때 함부로 피를 땅에 흘리지 않아. 그러니… 시체가 목이 없이 돌아왔다면… 유림은 아마도… 큭큭큭… 뭐, 그 정도로 해두지.”


그 말에 모든 이가 격분했다. 귀인이라 여길 가치도 없다는 것이냐? 그토록 너희들과 평화를 호소했던 영웅에게 네 놈들이 지껄일 수 있는 말이 고작 그것이냐? 나 역시도 격분했다. 그리고, 당연히 가장 분노한 이는 그녀였다. 그녀는… 그 분노에 입술마저 파르르 떨며 칼을 거뒀다. 그리고 부황에게 와서 모두가 듣는 가운데 고했다.


“폐하, 소녀 청이 있나이다. 이 늑대를 처형하지 말아주십시오.”


“뭐라? 어째서 그런 청을 하느냐?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을…”


“소녀는… 복수를 원하나이다. 단순히 여기서 저 자를 죽이면, 저 자는 늑대들에게 우리 한족의 핍박을 받아 죽은 영웅이 될 것입니다. 저는… 저 비겁한 늑대 새끼가 그런 영광을 누리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 잔혹한 최후를 맞이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들어보니, 지금 칸의 총애받는 서자가 저희 혼례의 축하 사절로 왔다가 이번 일로 인해 구금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인질이 아니고 사절이니 응당 그 대우가 달라야 하겠지만, 이미 전쟁이 확정된 상황에서 둘다 적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 자 대신에 그 자를 죽이십시오. 그리고 이 자에게 그 자와 그와 동행한 사절들의 시신을 들고 그들의 칸에게 돌아가게 하소서. 칸에게 자신의 총애받는 자식의 시신을 저 자로 하여금 들고 가게 하여, 늑대들의 좀더 잔혹한 방식으로 혼자 살아온 비겁자로서 그들에게 매도당하고 죽게 하소서. 그것이… 제가 바라는 제 아비에 대한 복수이옵니다.”


그녀의 잔혹한 방식에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청은 수락되었다. 축하 사절을 비롯한 도성에 있던 수백명의 늑대들이 처참하게 죽었고, 그는 시신을 담은 수레와 함께 늑대들에게 인도되었다. 나는, 그것으로라도 그녀가 마음에 여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복수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일이 끝나고 그녀는 다시 부황에게 청하였다.


“제 아버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늑대들의 무주공산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그곳에 가서 제 아버지를 대신하여 늑대들의 남하를 막아내어야만 합니다. 제 아버지는 아들도 형제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성의 주둔 병력은 전부 다 유가군이라 불릴 정도로 아버지와 연이 강한 자들입니다. 그들을 이끌려면… 아버지의 후계자가 필요합니다. 부디, 청하건데 저를 보내주십시오. 천한 계집이오나 부모의 원수에 복수하여야 함을 알고, 나라에 기여하여야 함이 혼례보다 중함을 아옵니다. 부디… 제게 그 소임을 주셔서, 제 아버지의 군을 제가 이끌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청원으로 한동안 조정이 시끄러웠다. 부황은 물론이고 석씨 일가, 그리고 대소 신료들… 심지어는 나 조차도 그것에 반대했다. 황후의 자리에 올라 금당각에 여주인이 되어야 할 나의 정혼녀를 그런 부친의 수묘살이에 가까운 부역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강경했고, 그것에 호응하는 유가군의 반응과 늑대들의 남하 조짐은 결국 그녀의 의지를 수용하게 하였다. 나는, 혼례마저 뒤로 미루고 아버지의 복수와 북방을 지키기 위해 떠나가는 그녀를 가슴아프게 배웅해야 했다.


“부디… 건강하시오. 부황께서 약조하신 시간은 3년… 그 안에 모든 것을 마치고 부디 도성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오.”


“네, 마마… 무례한 소녀의 청을 들어주셔서 이 은혜 갚을 길이 없습니다. 아버님의 여한이 풀어지면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 날이 다시 얼른 오기를 기대하겠소. 나의 사랑하는 그대여.”


그리고 그녀는 북방으로 떠났다. 세월은 나의 초조함도 무색하게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 사이, 석씨 일가가 어떻게든 자기네 딸을 내 정실로 들이미는 것을 모욕을 주며 뿌리치며 그녀를 기다렸고 무사하기를 빌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믿을 수 없을만큼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여자의 몸으로 어려우리라 생각한 군의 일을, 그녀는 순식간에 장악하고 적극적으로 늑대들의 공세를 막아내었다. 그것은 전성기의 유림의 업적을 상회하는 기세였다.


늑대들은 자기들이 먼저 선공을 걸고도 왠일인지 대비가 안된 모양이었다. 뭐, 내부에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이 내전에 가까운 양상이어서 무리도 아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공을 바래기는 어려웠다. 결국, 석씨 일가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국의 국경은 북상했고, 그런 유가군을 지원하기 위해 제국의 주력들도 북상을 개시했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태자 마마께서 이리 전방에 오시니 영원성에 영광이옵니다. 유화, 오랜만에 마마를 뵈옵습니다.”


“그대는…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답군.”


나의 감상은 거짓이 아니었다. 예전에 소녀 같은 느낌이 남아 있는 그녀가, 이제는 무르익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제국의 최정예인 유가군의 병사들과 우수한 장교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실로 황제의 반려로 어울리는 여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3년간 북방의 분란을 진정시키고 다시 제국의 패권을 떨친 그녀를 치하했다.


“이제, 늑대들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겠군. 다, 그대의 공이다. 이제서야 유림 장군도 저 세상에서 편히 눈을 감으시겠군. 이제는 그분에게 그대의 혼례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 남았군.”


“네… 하지만 아직 평화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늑대들이 그동안 많이 약화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가군에 패전한 부대들은 대부분 칸과 그를 지지하는 주화파의 군사들입니다. 이 소요를 일으킨 주전파는 오히려 전장에서 드러나지 않고 더 먼 북방에 주력을 물려서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안심하기에 이릅니다. 소문으로 듣기로는, 현재 주전파를 이끄는 새로운 지도자가 범용하지 않은 자라고 합니다. 경계를 늦추면 안됩니다.”


“하하하… 그래, 그대의 말이 맞다. 하지만… 주변을 봐라. 제국의 주력들이 다 북진 배치를 시작하고 있다. 유가군만으로도 제국의 경계를 넘지 못하던 늑대들이 감히 제국의 주력들이 보강된 우리를 어찌 할 것인가? 이제, 전쟁은 우리에게 절대 우위로 흐르고 있다. 이토록 간단한 일인줄 알았다면 화평 정책으로 유림 장군이 그들의 간악한 손에 그리 가지도 않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더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야. 철저하게 조여서 그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을 가지고 개선하여 황위에 오르고, 그대는 나의 곁에 황후가 되어 오래도록 제국을 통치할 것이다. 어떤가?”


그녀는 미소로 나의 그런 장대한 포부를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추격당하던 늑대들의 칸은 부하들의 손에 살해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것으로… 전쟁은 끝났다. 나는 뿔뿔히 흩어진 늑대들의 잔당들과 포로들을 추격하라 명하고, 그들의 포로를 끌고 남하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즈음에 그토록 북진을 반대하던 석씨 일가의 석가군도 슬그머니 발을 걸쳐서 지원을 나섰다. 그런다고, 그들의 딸이 황후가 되는 일은 없는데도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한다 비웃음을 사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변고는 뜻밖의 곳에서 발생했다.


“황상께서… 붕어하셨다고?”


갑작스러운 부황의 죽음으로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제 개선을 얼마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침착해야 했다. 다행히도, 제국의 주력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 도성에 남은 나와 사이가 나쁜 아우들이 어설프게 흉한 마음을 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군을 이끌고 남하 하신다고요? 아니, 이미 이동이 시작되었더군요.”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보는데. 이미 늑대들은 평정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급작스러운 남하로 인해 일부 방어선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이러면 일부 약탈을 노리고 깊게 들어간 부대들의 후방이 위험해집니다. 서둘러 그들에게도 귀환을 명해야 할 듯 합니다. 시급을 요하는 일임은 맞으니 폐하는 먼저 도성으로 돌아가십시오. 제가 그들이 귀환하는 것을 호위하여 무사히 우리 측 영역으로 넘어오게 하겠습니다.”


“그대는… 나와 함께 도성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은가? 즉위식에 이어 혼례와 황후 책봉도 이어질 예정인데… 나와 그대의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 입성하여 보지 못해서야…”


나의 걱정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디 무사히 도성에 돌아가시는 일에만 전념하소서.”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이 되리라고는… 한참을 남하하던 나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었다.


“유가군이… 참패했다고? 그리고 그녀는 행방이 묘연해? 이게 무슨 헛소리냐!!!”


나는, 구출되어 뻔뻔하게 살아 돌아온 석가군의 지휘관에게 죽일듯이 다그쳤다. 그러나… 그것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너무나 어이없이 유가군이 참패했다. 그것은… 외부에 고립된 석가군을 데리러 가던 행군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석가군의 주둔지에 다다른 그들은 예상치 못한 야습을 당했고, 그 소리조차 없이 은밀히 매복하고 있다 들이친 야습에 유가군은 어처구니 없이 붕괴해 버렸다. 그리고, 소요를 본 석가군도 서둘러 그들을 구하러 갔으나… 기세를 몰아 공격하는 의문의 적들에게 밀려 처참하게 당하고 도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태를 야기한 석가군의 지휘관을 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당장, 그녀를 구하러 가야 한다. 말머리를 돌려라.”


“안됩니다. 폐하.”


“이놈이 감히!!!”


“진정하소서. 폐하… 지금 가도 늦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전장에서 이탈한지 오래입니다. 유화 장군을 구하기에는 늦었습니다. 진정하소서. 지금은… 그것보다는 도성으로 가시는 것이 급합니다. 2황자께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선황의 유지가 어떤 식으로 왜곡될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지체하셔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큰 책임과 작은 감정… 어느 것을 고르시겠나이까? 폐하는 만백성의 어버이옵니다.”


결국… 나는 말머리를 돌리지 못했다. 처절한 절망감을 씹으며… 나는 도성으로 돌아와 황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짜리에 불과한 영광이었다. 나의 곁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가 없었다. 영원히 함께하리라 생각한 반려가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영광이 아닌 참혹한 절망이었다. 나는 황좌에 앉아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뭐라… 다시 말해보라. 지금 누구라고?”


“그 자였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쿠타이… 칸의 사절들의 시신을 들고 보내진 그 어린 늑대가 거기 있었습니다.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성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던 주전파의 주력을 이끌고 유가군을 급습했습니다. 그 자가 우리들의 적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그 비아냥거리던 낯짝을 떠올리자 위화감이 없었다. 그래… 그 자였어. 그 놈이 살아 있었어. 그리고 복수하러 돌아온 거야. 제국과 나와… 그리고 그녀에게… 나는 머리 속에서 그 자식과 그녀의 악연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 나무에 매달아 버리라고 지시한 그녀… 아마도 그는 틀림없이 그 모욕에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족이 저지른 유림 장군에 기습 살해… 그 자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유림 장군을 모욕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녀가 청한 그에 대한 처분… 후에 들리기로는 그 시신을 들고 간 그는 칸의 진노를 사서 북방에서도 더 극한의 땅으로 유배를 갔다고 들었다.


그 자식이… 돌아온 것이다. 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부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내전을 야기하고, 그것에 승세를 굳히기 위해 칸과 제국의 전쟁을 지속하게 하여 주화파의 힘을 소진시키고, 기회를 틈타 늑대들의 대권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북방에 지나치게 깊숙히 들어가 고립된 석가군을 미끼 삼아 유가군을 전멸시켰다. 빌어먹을… 그 자식과의 악연은 정말 끊어지지 않는군. 그러면서, 나는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에… 그녀가 살아서 그 자의 포로가 되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복수심에 불타는 그 자의 손에 혹독한 고초를 겪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정인이 그런 고초를 겪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그녀를 구할 방책을 찾으려 하였으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제국에 최정예인 유가군이 참패하여 전력의 절반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다시 북상을 할 부대는 찾기 어려웠다. 이는 단순히 그녀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북방의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도 의미했다. 그래서 그 대책을 찾지 못해 절망하던 차에… 나는 더 아연해지는 소식을 들었다. 늑대들이, 유가군의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초원에 내팽개치고 버리고 가버렸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그 자의 행동에 진의를 따지는 동안 포로들이 도성에 도착했고…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전했다.


“그녀가… 포로로 잡혔다고?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그들의 새로운 칸… 쿠타이칸의 노예로?”


포로들은 그저 비통해할 뿐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나는 머리속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본 충격적인 광경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포로로 지내면서, 의외로 대우가 혹독하지 않고 먹을 것도 그럭저럭 챙겨줘서 조금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그들이 우리를 내몰아 한 연단 위에 모아두자 두려움이 퍼져갔습니다. 포로들을 경계하며 긴장한 늑대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제 모두 처형하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를 처형하기 위한 긴장감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보여줄 광경에 우리가 발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한 긴장감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 자, 쿠타이칸이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사슬을 끌고 있었고, 그 끝에는 한 사람이 걸레조각 같은 넝마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은… 팔이 뒤로 결박되어 수갑을 차고, 발목에도 사슬이 채워져 있는 상태로, 목에 조여진 칼에 연결된 사슬로 끌려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연단에 서서 그 사슬에 엮인 사람의 넝마를 벗겨내자… 그 안에 그 분이 계셨습니다. 유화님이… 우리 아가씨가 거기 계셨습니다. 비통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시며, 비참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정신이 아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뭐라고? 나의 유화가… 개처럼 목에 줄이 묶여서 끌려나와? 제국의 황좌의 옆에 앉아야 할 지고의 여인이… 한낱 늑대의 노예가 되어 그런 모습으로… 그러나,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자는… 비열하게 웃으며 유화 아가씨의 목에 엮인 사슬을 연단의 기둥에 묶었습니다. 너무 높이 걸어서 발돋음을 해도 목이 쪼일만큼 숨이 가빠하는 아가씨를 보며 그는 조롱하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며 소리쳤습니다. 천자의 암캐는 이제 자신의 종년에 불과하다고요. 그것을 보고 병사들의 위협에도 발광하며 난리치는 우리에게… 보란듯이 말했습니다. 이제 이건 자신의 것이라고.


그 처참한 광경에… 우리들 포로들은 할말 조차 잃고 절망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자, 더 의기양양해진 그 자는 아가씨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아가씨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자신은… 쿠타이칸의 노예이며, 그의 가축이자 소유물에 불과한 이름없는 계집이라고요. 그리고, 과거 자신 같은 것이 감히 쿠타이칸에게 해를 가한 대가를 받아야 하며, 그 대가로 영원히 그의 것으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의 뜻에 달렸다고요. 


결국… 몇몇 병사들이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려 했고, 그런 그들에게 아가씨가 소리쳤습니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요. 왜 내가 이러는지 모르겠냐고요. 크흑… 아가씨는 우리들의 목숨을 구하시려고…”


그래… 그녀는 그런 여자다. 그 고결함에 나도 반했었지. 하지만… 하지만 그런 수모를 어찌 감당하려고… 그리고 이미… 그 자에게 당했단 말인가? 이 비열한 놈… 그 알량한 복수심으로 그토록 선한 여인을 어찌 그리 참혹하게.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의 앞에 세워 모욕을 주고 조롱한단 말인가? 그게… 네놈이 바라던 복수인가? 나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자, 더 기세가 등등해진 그 자는 분을 참는 우리들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이 계집은 자신의 입으로 제가 내 것이라했으니 나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마음대로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오늘 과거에 이 년에게 당한 모욕에 대한 복수를 하겠노라. 한 때 이 계집의 부하들아 잘 보아라. 이게 바로 너희들이 그토록 경외하던 북방의 여신의 오욕이다. 지금 보고 들은 것을 똑똑히 눈에 새기고 너희들의 황제에게도 전해라.


그리고… 그는 채찍을 들어 아가씨를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등에 채찍 자국이 선명하고 살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겨 아가씨가 정신을 잃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때렸습니다. 그래서… 거의 넝마처럼 되서 늘어져서야 채찍질을 멈추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살려 보내 줄 테니, 돌아가서 오늘의 일을 세상에 전하라고… 그래서, 저희들은 석방된 겁니다.”


“그녀는…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멀리서… 연단에서 묶인 결박이 풀리자 바닥에 쓰러져 기절한 것을 그 자의 손에 머리채가 잡혀 질질 끌려가는 것만을 마지막으로 더는 보지 못했습니다. 폐하… 간청드리옵니다. 아가씨를 구해주소서. 그리고… 복수를 해주옵소서. 그 늑대의 손에 그토록 비참하게 고초를 겪은 아가씨의 복수를 청하옵니다. 이 목숨을 받쳐서라도 반드시…”


목숨을 받쳐서라도 그녀를 구해야 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유는 내가 더 절실했다. 그녀는… 나의 연인이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지고의 자리가 당연한 귀인이다. 그런 그녀를 과거의 복수심으로 더럽힌 그 늑대 새끼… 나는, 그 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곧바로, 나는 중신회의를 소집했다. 의제는 당연히… 북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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