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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Nov 02. 2023

지구가 위험해! 내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3번째 책 |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특이하게도 지난 회사에서는 퇴사 선물로 책을 받았다. 그렇게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만났다. 사실 앤디 위어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을 쓴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정말 이렇게 그의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왜일까? 성인이 되면서 SF와 점점 멀어졌다.


공상과학소설은 두께가 두꺼운 책이 많은 것 같다. 현실과 닮아 있는 인간들의 무언가를 묘사하기보다는, 어떠한 세계를 통째로 새롭게 창조해내야 한다. 그 세계가 잘 작동되게 하기 위해서 작가는 질서를 부여해야 하고, 규칙을 정립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설명할 때는 많은 생략이 가능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알려줄 때는 매우 자세하게 모든 것을 순서에 맞게 알려줘야 한다. 일반 소설에서는 ‘법에 따라 재판이 이뤄진다’는 것만 설명해 줘도 된다. 받아들이는 독자가 자신의 국가의 법, 재판에 대한 생각에 근거해 알아서 받아들인다.


하지만 SF소설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법이라는 걸 갖고 있는지, 그 법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문자언어? 음성언어?), 그 언어는 또 무엇인지, 재판의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처벌은 어떤 방식으로 행하는지, 기타 등등 모든 것들을 설명해줘야 한다. 새로운 세계이니까. 어쩌면 그래서 SF 소설들이 두꺼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동안을 두꺼운 SF소설이라는 이유로 읽기를 피해왔지만, 선물로 받은 만큼 꼭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다. 책을 선물 받으면 꼭 그 책을 읽으려고 한다. 책을 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골랐을지, 어떤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는지가 궁금해서라도, 시간이 오래 걸려도 꼭 읽으려 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주인공 그레이스가 눈을 뜬다. 온몸에는 정체 모를 온갖 줄이 꽂혀 있었고,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에는 건강하게 근육이 붙어 있다. 오랜 기간 잠들었다면 근육이 모두 빠져있어야 정상일 텐데? 그레이스는 어리둥절하다.


자신을 휘감고 있던 모든 줄을 제거하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돌아다닌다. 놀랍게도 그가 있는 곳은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선 안이었다. 게다가 우주선과 비행에 대해 그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과학자구나!”라고 그레이스는 문득 깨닫는다. 우주선의 장치들을 만져보고 이곳저곳 탐색해보기도 하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쓴다.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고, 우주선의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찾아내면서 기억들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럴 수가. 단세포 우주 해조류 ‘아스트로파지’가 햇빛을 잡아먹고 있다. 지구 인류 전체가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레이스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유일한 희망이다. 이 여행은 편도다. 지구를 살리고, 나는 여기 우주에서 죽는다.



아스트로파지와 과학 수업
독서 메모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건 아스트로파지다. 아스트로파지는 새롭게 출현한 단세포생물로, 열에너지를 먹고 자라서 이산화탄소를 만나 분열하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아스트로파지 무리가 태양에서 금성으로 향하면서 생긴 선 모양의 스펙트럼을 페트로바선이라고 한다. 햇빛을 좀먹고 있는 이 녀석들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내, 지구에 알려줘야 한다.


그레이스 박사는 우주선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내 아스트로파지를 채취하고 계속해서 연구한다. 뭐 하나 쉬운 과정이 없다. 채취하고, 연구하고, 실패하고,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고, 또 실패한다. 새로운 생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게다가 아스트로파지는 ‘우주’생물이다- 그 생물을 파괴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쉬운 것도 어쩌면 이상하다. 우리(독자)는 그레이스 박사의 실패-시도-가설-실패-시도의 무한 반복을 책을 읽으면서 함께한다.


학창 시절에 과학 수업을 좋아했다면 이 책이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작가가 공학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 과학과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레이스 박사의 우주여행의 90%는 바로 과학 연구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실패에서 하나의 조그만 인사이트를 얻고, 그 인사이트로 다른 결론을 도출해 보고, 실패하고, 다시 실험한다.


그레이스의 실험 과정에서 나오는 공식들이나, 가설들의 빌드업 역시 치밀하다. 내가 조금만 더 이 책에 애정을 가졌다면, 작가가 책에서 보여준 아스트로파지 관련 내용들을 정리하고 공식화해서 검증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원인과 결과, 숫자와 검증을 하는 것이 취미라면, 스스로를 뼛속까지 과학자(또는 공학자)라고 생각한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호만 궤도, 분광신호, 행성과 항성의 자전 등 각종 천문학적인 용어에 대한 지식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나의 친구, 로키

주인공의 옆에는 언제나 감초 역할의 조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조연이 주인공보다 기억에 강하게 남을 때가 있다. 여기에서는 외계인 로키가 그렇다. 로키는 마치 거미의 모양으로 묘사되는 에리디언 행성의 외계인이다.


아스트로파지가 에리디언 행성 또한 위험에 빠뜨렸기에, 로키는 그레이스와 같은 이유로 우주선을 타고 태양에 왔다. 아스트로파지를 파괴할 방법을 찾아 에리디언 행성을 구하기 위해서. 지구 중력의 2배 이상을 받고 있고, 눈이 없어 청각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며 두뇌가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로키는 그레이스와 함께 ‘우주에서 살아남기’를 함께한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언어도 달랐기에, 그들은 소통하는 법부터 배운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충분히 학습할 시간을 가진다. 서로의 문화와 관습을 보고 배우며 존중하고, 기꺼이 서로의 일부가 되어준다. 그레이스와 로키 사이에 정치는 없다. 이해와 존중, 우정과 의리만이 있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관계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소설에서 그려낸 지구에서의 모든 관계는 정치적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따듯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행동은 차갑다.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들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과제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고 망가지는 것들, 그리고 사람들을 외면하려 한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차갑고 냉혹한 현실에 지쳐, 로키로 하여금 그레이스와 순수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력도, 권력도,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우주에서만큼은, 우리 아무런 욕심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하고, 연대하고 우정을 가꿔보자고. 지구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아름다운 관계를 이렇게라도 느껴보자고.



추천사

두꺼운 책을 추천할 때는 상당히 부담을 갖는 편이다. 우선 두꺼워서 읽기 힘들 수 있고, 또 무거워서 휴대성이 떨어진다. 읽는 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에 그 책을 재미없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큰 시간낭비와 에너지 소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얇은 책은 휘리릭 읽고 재미가 없더라도 ‘재미없네’라고 가볍게 평가할 수 있지만, 두꺼운 책은 얘기가 다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경우, 확실히 마니아층이 좋아할 만한 책인 것 같다. 세계관을 정리하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설정들을 분석하고, 그 설정들이 마치 정교한 블록처럼 맞아떨어졌을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1분도 지체할 바 없이 바로 서점에 가서 이 책을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 게다가 과학과 천문학, 공학 지식에 흥미가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잘 맞을 것이다.


순수 100% 문과체질인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끝없는 문제집을 푸는 느낌이었다. 아스트로파지의 생태 주기를 애써 정리하고 나면 아스트로파지의 열 변환에 관해 알아야 하고, 우주선의 운항 방법, 질량과 무게의 관계, 로키의 숫자와 언어 체계, 로키가 살고 있는 행성의 시간과 중력, 행성 간 시간과 중력의 비교, 단위 변환, 행성과 항성, 지구의 공전과 자전, 태양과 금성 등 기본적인 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그 세계와 실제 지구와의 공식 변환 등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정리를 해야 한다.


작가는 이 세계관의 모든 물리법칙을 정말 섬세하게 제시했지만,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들 하나하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데는 설득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애써 글로 쌓아 올려야 했을 것들을 사진 한 장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때가 있다. 글을 읽으며, 동시에 머릿속으로 시각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눈앞에 제시된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때서야  그 사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비로소 그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볼 준비가 되는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충분히 연구하고 각색해 영상으로 구현한다면, 그 탄탄한 설정들이 글로 누워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빛을 발할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에세이 <100권의 책을 읽으면 달라질까?>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by. 작가 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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