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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Nov 07. 2023

지금 여기, 잠시 머무르다 가셔요.

4번째 책 |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누가 삶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우리는 대부분 생존을 위해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음식을 먹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삶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엄청나게 많을 필요는 없지만,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 당장 내가 굶주리고 있는데 삶이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가. 대단한 성인(聖人)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거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모두 자신만의 칼춤을 추고 있다. 그 춤의 움직임은 바로 다음 순간의 자신을 정의한다. 움직임은 그 주체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움직임에 의해 춤꾼은 변하고, 춤꾼은 움직임을 변화시킨다.


하나의 춤을 보고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무섭다며 피하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보고 판단하는 시선과 같다. 타인의 시선은 불편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평가를 동반하고, 평가는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모여, 우리의 삶

너와 나의 살아남기 위한 칼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 누군가는 칼을 애써 날카롭게 갈아내 보는 이들에게 해를 입힌다. 누군가는 칼집을 입혀 칼을 뭉툭하게 만들거나, 주위에 예쁜 꽃들을 달아 부드러운 동작으로 춤을 춘다. 어떤 춤을 출지 선택하는 것은, 즉 살아가는 모습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불편한 편의점>은 염 여사가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도둑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노숙자가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 돌려준다. 염 여사는 자신의 이름이 '독고'라고 하는 노숙자에게 어떻게든 사례를 하려 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독고를 데려가 도시락을 주고, 매일 도시락을 먹으러 오라고 한다.


염 여사의 편의점에는 각자의 이유로 돈을 벌어야 하는 3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공시생 시현, 두 아이와 아내를 지켜야 하는 50대 실직 가장 성필, 남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집을 나가버리고 아들과는 대화가 단절되어 버린 선숙. 그들 모두는 인생을 아름답게 지켜내기 위해 편의점에 나와 일을 한다.


성필이 재취업에 성공하며 야간 알바를 염 여사가 대신하던 어느 날, 편의점에 소동이 일어난다. 청소년 진상 손님들이 찾아와 난동을 부린 것. 생명을 위협받던 염 여사를 구해준 건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독고였다. 염 여사가 야간 알바로 일을 한다는 걸 듣고 나서부터 걱정이 되어 주변을 순찰했다고 한다.


염 여사는 독고에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단, 술을 끊는 조건으로. 한사코 거절하던 독고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다. 독고는 진심을 다해 손님들을 대하지만, 특유의 더듬는 말투와 서투른 행동으로 염 여사의 편의점은 '불편한' 편의점이 되어버리고 만다.



삶은 불편하다

독고가 편의점에 오면서 편의점은 불편해졌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며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가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편의점을 불편하게 만든 건, 손님들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해는 관계 맺기의 시작이다. 관계는 불편하다.


독고는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옆에서 조력을 해줄 뿐이었다. 각박한 삶 속에서, 여기 이 편의점에서만큼은 잠시 쉬며 스스로를 재충전하고 떠날 수 있도록 독고는 손님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관계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나고, 괜히 한번 더 눈치를 보게 된다. 하지만 결국 삶을 아름답게 하고,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 또한 관계이다. 불편함 속에서 힘과 용기를 얻어내 또 다른 불편함 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러니. 그게 바로 삶이고, 우리가 추는 춤이다.


불편한 편의점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독고와의 관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나다움'을 찾아간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나다움'을 깨달아가는 삶의 아이러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아마 그런 맥락이 아닐까.


추천사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는 게 싫어졌다. 특히 내 이야기는. 말이라는 게 모두 무의미하고 흩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가공되고 평가받는 것도 끔찍했다. 말을 해서 좋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에너지만 쓰는 행위를 뭐 하러 하지?'


누구보다 진지한 내 이야기를 잘하던 나인데, 말을 할 때의 효용을 따지기 시작했다. 꼭 해야 하는 말인지, 이 말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리액션을 얻어낼 것인지, 감정 또는 사실 어떤 것을 전달할 말인지, 상대방은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이 말이 상대방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갈 것인지.


말을 꼭 해야 할 때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이야기나 아무 말을 선택했다.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말들. 무의미하고 텅 비어있는 말들. 해도 안 해도 똑같고, 다른 사람들도 이미 상식으로 알고 있는 말들. 그런 빈 껍데기 같은 말들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우리가 될 수 없다.


그래서일까. 학생일 때는 친구가 되는 것이 참 쉬웠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언제까지 만날지도 모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지가 않았다.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는 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더더욱 싫고.


나처럼 말과 관계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편의점>을 권하고 싶다. 8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는 이 책에서는 각 챕터마다 주인공이 바뀐다. 각 주인공의 시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경험한 편의점, 자신이 경험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같은 시공간을 다르게 해석한다. 똑같은 사람의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다르게 평가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소설 속 인물들끼리만 나누는 게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담담히 말해준다. 이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교류의 참모습을 파악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불편한 편의점'은 관계가 일어나는 삶의 현장, 관계의 교집합이지만, 관계의 주체들은 모두 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제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묶어주는 건 배려이다. 배려 섞인 말과 관계는 마음속에 남아 오래도록 따듯함을 간직한다.


<불편한 편의점>은 추워진 마음에 미약하게나마 따듯함을 주는 그런 책이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마음도 더 얼어붙었다면, 가볍게 잘 읽히면서도 훈훈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불편한 편의점>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건 어떨까.



에세이 <100권의 책을 읽으면 달라질까?>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by. 작가 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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