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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Oct 26. 2023

가장? 그거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1번째 책 |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가장? 누가 하면 어때!


주인공 슬아는 할아버지로부터 가부장제도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가부장제도는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로 정의되는데, 슬아는 여기에 '남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남성의 권위를 강조하는 할아버지에게 어린 슬아는 그저 "저는 사장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어 작가이자 낮잠 출판사의 대표가 된 슬아는 사회적인 위치와 경제적인 벌이를 획득하고, 가장으로서,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을 통솔한다. 그런데 슬아는 여성이었으므로 이러한 가족 형태를 "가녀장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응용한 셈이다.


슬아가 책임지는 가족 구성원이자 낮잠 출판사 직원이자 슬아를 태어나게 한 모부(부모)님인 복희와 웅이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서 그에 따른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 가녀장제도로 굴러가는 슬아의 세계에서, 노동은 성별에 의해서 정해지지도 않고, 그 형태에 따라 귀천을 가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줄 수 있으면서도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의 반복, 딱 거기까지다.


이처럼 슬아, 복희, 웅이는 사랑으로 묶인 가족이자 경제 공동체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서 불편하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너무도 깊은 소중함을 느끼기도 한다. 가녀장인 슬아는 오늘도 그들을 보며 무거운 책임감과 현재의 행복을 동시에 느낀다.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을 한다. 낮잠 출판사와, 슬아 가족의 이야기는 매일 이렇게 흘러간다.



작가 이슬아, 주인공 슬아


문학에서는 작가와 서술자를 구분한다. 작가는 작품의 바깥에, 서술자는 작품의 안에 존재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시리즈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듯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요 인물이 작가가 아닌 성나정(고아라 역)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다.


작가는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서술자를 문학 속에 내세워, 그들의 입을 빌려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는 서술자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독자가 서술자를 믿을 수 없게끔 만들기도 하니까.


이슬아 작가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인물인 '슬아'가 주인공인 <가녀장의 시대> 역시 그렇다. 주인공 슬아는 자신이 만든 작품 속의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의식한다. 액자식 구성 속 액자식 구성이랄까.


한 인물이 소설 속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서술자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고, 정작 실제 작가는 작품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주인공 '슬아'는 작가 이슬아와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주인공 '슬아'의 고민은 모두 작가 이슬아가 경험한 고민일까.


덧붙여, 이슬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책 속 캐릭터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문학 속 인물과 현실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 섬세함까지 보여준다.



완벽주의 창작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첫 문장을 쓴다. 쓰자마자 모두가 실망할 거라고 생각하며 지운다. 그리고 다른 첫 문장을 쓴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금세 지운다. 그러기를 반복한다. 아주 익숙한 반복이지만 때로는 울고 싶어 진다.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내가 만난 주인공 슬아는 완벽주의 창작자다. 강연을 할 때도 강연장 환경까지 신경 쓰고, 어떤 일을 할 때도 대충 넘겨버리는 경우가 없다. 모든 일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자신의 생활에서도 엄격함을 유지한다. 하지만 완벽주의처럼 모순적인 단어도 없을 것이다.


완벽주의, 어떠한 지향점을 제시하는 듯 보이지만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탄탈로스의 저주. 슬아의 경우에는 그것이 '가격 오류 사건'으로 드러났다. 글의 내용과 오탈자를 수백 번 점검했지만, 정작 책의 가격이 15,000원이 아닌 1,500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 완벽주의 가녀장 슬아는 복희와 웅이의 애정과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자신의 실수를 처리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또, 슬아는 자신의 마감에 대해 '놓아주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말은 "다 했다."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일이 보고, 보고, 봐도 끝이 없기 때문에 그저 시간이 되었으니 '놓아준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기가 어렵다. 완벽주의는 애초에 실현될 수 없고,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고, 그 실수는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와 더 큰 노력과 시간을 자신에게서 착취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에 슬아는 완벽주의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엄격함을 사용한다.


자신의 생활을 규칙적이고 엄격하게 유지함으로써, 슬아는 완벽주의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 한다. 소설 속에서 슬아가 규칙적으로 요가를 하고, 식사를 절제하고, 친구에게 '자기 자신을 감독하는 하나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 나 스스로를 감독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추천사


K-장녀(장남)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한국의 장녀(장남)들이 흔히 겪어온 말들과 상황들을 하나로 모아보니,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나 또한 공감을 했지만, K-장녀(장남)로서의 책임감과 그로 인한 압박감은 외부의 말과 상황 때문이라기보다는 내부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조금 달랐다.


주인공 슬아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녀처럼 멋진 '가녀장'은 아니더라도 내가 이 가정을 이끌어갈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때문인지 가족들에게 해맑은 웃음을 보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을 지켜낼 무엇이 내게는 아직 없는데, 그걸 들킬까 봐, 끝내 무언가를 찾지 못해 그들을 끝끝내 지켜내지 못할까 봐. 책임감은 일종의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 같다.


주인공 슬아 역시 가족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온기가 있는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사랑은 걱정과 배려로 표현된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어머니가 그토록 귀찮아하는 운동을 함께한다. 그들과의 건강한 일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슬아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슬아의 얼굴이나 표정은 묘사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지 슬아의 얼굴에 계속해서 나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을 걱정하는 마음, 또 그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전하는 방식까지 마치 나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 책, 세상의 모든 가장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지켜주고 싶다는 소망, 소중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모두 담긴 따듯하고도 씁쓸한 행복을 보여주는 한 편의 가족 드라마다.


에세이 <100권의 책을 읽으면 달라질까?>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by. 작가 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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